[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허영준(許榮俊)/ 제주 대정출신, 서울시 초대공보관, 이사관, 수필가, 시인 풍시조문학상(2012) (현)제주국제협의회 부회장, 가락회보 편집장

공직에서 퇴임한 후 종친회업무를 보면서 괴로운 일도 많았고, ​한편 보람있는 일도 나타난다.

​독자 제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선대 족보를 먼저 기술해야겠다.

​필자는 양천허씨 후손으로 시조 허선문의 34세손이다. 제주 입도조(1392) 허손은 ​시조의 15세손이시다. 구좌 종달리에 능소가 있다.

​허씨는 양천허씨를 비롯, 김해허씨, 하양허씨, 태인허씨 그리고 함창 등 5개 본으로, ​모두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왕후의 후손이다.

​여기에서 승 일련이 지었다는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을 다시 살펴본다.

​서기 42년 김해 구지봉 아래에서 마을 지도자 9간(干) 들이 백성들과 함께 '구지가'를 부르자, ​김수로가 탄강하여 왕위에 추대되는 과정이 참 흥미롭다. 그리고 6년 후 인도 왕실의 ​공주 허왕옥(16)은 먼 항해 끝에 '동방의 나라' 가락국에 도래한다.

​수로왕은 공주를 맞아 혼인을 올렸다. 허왕후께서는 천수(157세)를 다하시고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순간 남편 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국에서 먼 나라에 시집을 와서 ​이제 떠나려 합니다. 이 땅에 나의 허씨가 이어지지 못함은 서글픈 일입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왕께서는 열 왕자 중에 장남은 김해김씨로 대통을 승계토록 하고 두 왕자를 ​허씨로 사성(賜姓)하셨으니, 우리나라 500성씨 가운데 허씨는 어머니 성을 따른 유일한 ​성씨가 되었다. 그래서 김해김씨와 허씨는 곧 형제이니 결혼을 안 하는 것이다.

​ 김해김씨, 허씨 그리고 허씨에서 분적되어 나간 인천이씨 모두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혈연 후손으로 '가락종친회'를 구성하여 선조를 숭봉하며, 가야문화의 선양을 위해 ​함께 힘쓰고 있다.

근간 관심이 큰 가야史의 연구와 복원이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데, 전국 700만 가락인들의 소망이기도하다.

​필자의 시조할머니의 고국은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印度의 북부 아요디아다.(인구 5만의 성지) ​2000년에 전국의 후손들은 성금을 모아 국내에서 대형 <허왕후 기념비석>을 제작한 후

​인도로 탁송했다. 인도 지방정부에서 기념비 건립 부지 1,000평을 무상으로 내놓고 기념비를 세웠다.

​2001년 3월 6일, 인도 지방정부와 가락종친회 공동으로 <허왕후 유허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의 헌화와 축사를 주인도 한국대사가 참석하여 대행할 정도로 종친회 차원을 넘어 ​한국-인도 두 나라의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필자는 당시 종친회 실무총괄을 맡아 종친 91명을 안내하고 7일간 허왕후 고향 아요디아를

​순례했다. 인도 순례단에는 인천시 종친회 김회장 내외분이 참여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김회장은 강화 온수리가 고향인데, 지난 2월 토요일에 김회장의 안내로 그의 고향 집을 찾아갔다.

도착하자마자 김회장은 집 근처 선조님의 능소(묘소)에 올라가 배례를 올린다. 그리고는 ​나를 <선조왕릉 취토 봉안비> 앞으로 안내한다. 내외분이 17년 전 ​허왕후기념비 제막식에 참가했을 때 비석 근처의 흙을 정성껏 봉지에 담아 왔다는 설명이다.

​여기 능소에는 김회장의 증조부님, 조부모님, 부모님을 모셨고, 선대 추모비 옆에는 ​시조할머님 고향 인도에서 취토한 흙을 묻고 봉안비를 건립한 것이다.

​ 그리고 김해 가락국시조왕릉, 허왕후 능소의 흙 한줌, 산청 10대 양왕 능소의 흙 한줌, 경주 수로왕의 13세손 ​김유신(흥무대왕) 능소의 흙 한줌, 가락선조 다섯 분의 흙을 봉안비 아래에 잘 넣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감복했다. 필자는 인도 아요디아 시조할머니의 고향을 여러 차례 ​방문했음에도 김회장처럼 흙 한줌을 담아오지 못했으니, 허씨 후손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取土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장사 지낼 때 , 壙中 네 귀에 吉한 方에서 떠 온 흙을 조금씩 ​놓는일' 또는 그 흙' 이라 해설한다. 김회장은 인도의 길한 곳에서 가져온 흙을 선조님 능소에 ​놓았으니, 그 깊으신 崇祖정신은 손손 대대로 전승될 것이다. 그의 혜안에 놀랍기만 하다.

필자는 언제 다시 시조할머님의 고향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길한 인도의 흙 한줌을 정성껏 ​담고 와서 향리 천주교회 공원에서 영면하시는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고 '취토'할 수 있을는지. ​강화도를 떠나며 상념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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