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공직에서 퇴임한 후 종친회업무를 보면서 괴로운 일도 많았고, 한편 보람있는 일도 나타난다.
독자 제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선대 족보를 먼저 기술해야겠다.
필자는 양천허씨 후손으로 시조 허선문의 34세손이다. 제주 입도조(1392) 허손은 시조의 15세손이시다. 구좌 종달리에 능소가 있다.
허씨는 양천허씨를 비롯, 김해허씨, 하양허씨, 태인허씨 그리고 함창 등 5개 본으로, 모두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왕후의 후손이다.
여기에서 승 일련이 지었다는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을 다시 살펴본다.
서기 42년 김해 구지봉 아래에서 마을 지도자 9간(干) 들이 백성들과 함께 '구지가'를 부르자, 김수로가 탄강하여 왕위에 추대되는 과정이 참 흥미롭다. 그리고 6년 후 인도 왕실의 공주 허왕옥(16)은 먼 항해 끝에 '동방의 나라' 가락국에 도래한다.
수로왕은 공주를 맞아 혼인을 올렸다. 허왕후께서는 천수(157세)를 다하시고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순간 남편 수로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국에서 먼 나라에 시집을 와서 이제 떠나려 합니다. 이 땅에 나의 허씨가 이어지지 못함은 서글픈 일입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왕께서는 열 왕자 중에 장남은 김해김씨로 대통을 승계토록 하고 두 왕자를 허씨로 사성(賜姓)하셨으니, 우리나라 500성씨 가운데 허씨는 어머니 성을 따른 유일한 성씨가 되었다. 그래서 김해김씨와 허씨는 곧 형제이니 결혼을 안 하는 것이다.
김해김씨, 허씨 그리고 허씨에서 분적되어 나간 인천이씨 모두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혈연 후손으로 '가락종친회'를 구성하여 선조를 숭봉하며, 가야문화의 선양을 위해 함께 힘쓰고 있다.
근간 관심이 큰 가야史의 연구와 복원이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있는데, 전국 700만 가락인들의 소망이기도하다.
필자의 시조할머니의 고국은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印度의 북부 아요디아다.(인구 5만의 성지) 2000년에 전국의 후손들은 성금을 모아 국내에서 대형 <허왕후 기념비석>을 제작한 후
인도로 탁송했다. 인도 지방정부에서 기념비 건립 부지 1,000평을 무상으로 내놓고 기념비를 세웠다.
2001년 3월 6일, 인도 지방정부와 가락종친회 공동으로 <허왕후 유허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의 헌화와 축사를 주인도 한국대사가 참석하여 대행할 정도로 종친회 차원을 넘어 한국-인도 두 나라의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필자는 당시 종친회 실무총괄을 맡아 종친 91명을 안내하고 7일간 허왕후 고향 아요디아를
순례했다. 인도 순례단에는 인천시 종친회 김회장 내외분이 참여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김회장은 강화 온수리가 고향인데, 지난 2월 토요일에 김회장의 안내로 그의 고향 집을 찾아갔다.
도착하자마자 김회장은 집 근처 선조님의 능소(묘소)에 올라가 배례를 올린다. 그리고는 나를 <선조왕릉 취토 봉안비> 앞으로 안내한다. 내외분이 17년 전 허왕후기념비 제막식에 참가했을 때 비석 근처의 흙을 정성껏 봉지에 담아 왔다는 설명이다.
여기 능소에는 김회장의 증조부님, 조부모님, 부모님을 모셨고, 선대 추모비 옆에는 시조할머님 고향 인도에서 취토한 흙을 묻고 봉안비를 건립한 것이다.
그리고 김해 가락국시조왕릉, 허왕후 능소의 흙 한줌, 산청 10대 양왕 능소의 흙 한줌, 경주 수로왕의 13세손 김유신(흥무대왕) 능소의 흙 한줌, 가락선조 다섯 분의 흙을 봉안비 아래에 잘 넣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감복했다. 필자는 인도 아요디아 시조할머니의 고향을 여러 차례 방문했음에도 김회장처럼 흙 한줌을 담아오지 못했으니, 허씨 후손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取土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장사 지낼 때 , 壙中 네 귀에 吉한 方에서 떠 온 흙을 조금씩 놓는일' 또는 그 흙' 이라 해설한다. 김회장은 인도의 길한 곳에서 가져온 흙을 선조님 능소에 놓았으니, 그 깊으신 崇祖정신은 손손 대대로 전승될 것이다. 그의 혜안에 놀랍기만 하다.
필자는 언제 다시 시조할머님의 고향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길한 인도의 흙 한줌을 정성껏 담고 와서 향리 천주교회 공원에서 영면하시는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고 '취토'할 수 있을는지. 강화도를 떠나며 상념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