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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행] 습지를 품은 마을 '선흘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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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행] 습지를 품은 마을 '선흘1리'
  • 고은희 기자
  • 승인 2018.03.30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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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선흘1리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북방향 중산간에 위치한 중산간마을이다.

선흘의 '흘'은 깊은 숲을 의미하며 제주의 숲 곶자왈이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감귤, 키위, 콩, 메밀 등이 생산되고 

용암동굴, 4.3유적지, 람사르습지 동백동산 등

다양한 생태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되어

2013년 환경부 지정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선흘마을은 람사르마을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주민들은

습지보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생태관광에 참여하고 있다.

 

낙선동 4.3유적지를 시작으로 선흘곶자왈 속의 동백동산까지

숲과 마을의 소통길 선흘로의 여행을 떠나본다.

제주4.3사건이 한창이던 1948년 11월부터

중산간 마을들이 토벌군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이곳 선흘리도 11월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수많은 인명희생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은 1949년 봄, 당국의 재건명령에 의해

길이 약500m의 사각형 모양의 성(城)을 쌓고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제주도 전역에 쌓았던 성은 무장대습격 차단이라는 명분과 함께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주거지는 허름하고 좁은 함바집(가건물)이 전부였고 성 안에서의 집단생활은 힘들었다.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보초를 서야 했는데

특히 젊은 남자들이 대거 희생되어 성을 지키는 일은

부녀자와 노인들의 몫이었다.

이제 이곳 낙선동에 4.3의 폐허를 딛고

재건의 토대로 삼았던 전략촌성의 일부를 복원하여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성곽-292m, 함바(가건물)-1동, 초소, 막-5동, 지서-1동,

통시(화장실)-4동을 복원하였다.

이 폭낭(팽나무)은

선흘리의 4.3역사와 함께 설촌 60여년이 된 낙선동 마을을 상징한다.
이곳에 성을 두르고 함바집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던 1949년 봄,

한라산에 토벌을 나갔다가 캐서 당시 성의 정문 앞에 심었던 것이다.

 

정문초소는 사각형 모양의 성 모서리마다 보초막을 지어

남녀노소 구분없이 보초를 섰던 곳으로

주민들의 성 밖 출입시 양민증이나 통행증을 검사하고

야간에는 통행금지였다.

1949년 봄,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페허가 된 선흘리를 재건할 당시

주민들과 무장대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한

전략촌을 조성하며 이곳에 성을 쌓았다.

축성작업은 함덕리 수용소 등지에서 생활하던 선흘리 주민들과

조천면 관내 주민들을 동원하여 1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밤낮없이 보초를 서는 역할은 16세 이상의 여성과 노약자의 몫이었다.

 

성담 아래에는 계절을 잊은 듯

시간을 거꾸로 사는 들꽃들이 작은바람에도 춤을 춘다.

성벽 중간에 안과 밖이 보이는 조그만 창은

밖으로 총구를 겨누었던 총구이다.

말라버린 하늘타리 너머로 귤나무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사각형 모양의 성 모서리마다 2층 구조의 경비망루를 지어

남녀노소 구분없이 보초를 섰다.

하룻밤에 5명씩 배치되어 1명씩 교대로 경비를 섰는데

낮에 힘든 밭일을 마치고 서는 야간경비는 졸음과의 힘겨운 싸움이었다.

약 500m에 달하는 성의 외각으로

깊이 2m 정도의 도랑을 파서 해자를 만들었다.

해자 안과 바깥쪽 성벽에는 가시덤불을 놓아 무장대의 침입을 막으려했다.

성담 밖에는 활짝 핀 애가동백나무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선흘리는 초토화과정을 겪으면서 당목은 불타고 당은 훼손되었다.

선흘리 본동 동쪽의 마을 안에 있는 불칸낭(후박나무)은

'불에 타버린 나무' 라는 뜻으로

설촌 당시부터 심어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노거수다.

높이 20m에 달하는 상록활엽수로 수령은 5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계절 싱그러운 초록의 후박나무이지만 가까이보면 상처투성이 아픔을 간직한 나무다.

중산간마을이 초토화작전으로 인해 마을이 불타고 나무도 불탔지만

이 불칸낭은 생명의 절반을 안고 살아간다.

슬픔과 아픔을 느낄줄 알고 분노를 참으며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

제주4.3의 아픔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여느 마을과 달리 팽나무가 아닌 후박나무라 더 애틋하다.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는 '탈남밭' 숲 속에 위치해 있다.

 

동백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선흘곶의 한부분인 동백동산은

크고 작은 용암 덩어리와 나무, 덩굴식물이 뒤엉켜 숲을 이루는 곶자왈이다.

원시 숨소리가 느껴지는 생명이 시작되는 곳

난대상록활엽수의 천연림

자연과 화산섬 제주가 만든 생태계의 보고다.

혹통은 혹처럼 튀어나와 있다는 뜻으로

오래전에 마을 주민들이 빨래와 목욕탕으로 이용하거나

말과 소들이 음용수로 이용되었던 곳이라 한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여자들이 목욕을 하고 자연 물통은 남자들이 목욕을 했다고 한다.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겨울딸기는 다 떨어져 겨울을 아쉬워하고

빨간 열매를 드러낸 초록덮개 자금우는 겨울을 즐긴다.

예전에는 식수로 길어다 먹었던 깨끗한 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말라버린 습지 위로 수북이 쌓인 낙엽만 있을 뿐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숲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선흘곶(동백동산)은

용암이 굳어 깨진 돌무더기 요철지형에 보온·보습효과가 높아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의 난대상록활엽수의 천연림이다.

울창한 숲과 크고 작은 습지들이 잘 보존되어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다양한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의 '먼물'과

끄트머리라는 의미의 '깍'에서 먼물깍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백동산의 먼물깍습지는

지하수 함양률이 높고 암반 위의 습지가 형성된 산림습지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곶자왈지역으로 인정되어

2011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되었다.

생활용수나 가축 음용수로 이용하던 이곳은

물을 잘 통과시키지 않는 넓은 용암대지의 오목한 부분에

빗물이 채워져 만들어진 습지라고 한다.

 

습지에 사는 식물은

송이고랭이, 올방개, 통발, 고마리, 남흑삼릉,

마름, 순채, 청비녀골풀, 좁은잎미꾸리낚시 등을 볼 수 있는데

수중발레리나 '순채'와 더블어 초록세상을 만들었던 여름날의 먼물깍에는

수생식물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고 '석위'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동백동산 람사르습지는

선흘곶을 흐른 용암이 파호이호이 용암으로

기저에 물이 고일 수 있는 판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먼물깍을 포함해서 혹통, 새물, 새로판물, 봉근물, 구덕물 등 수십 개의 습지가 있어

동백동산 전체가 커다란 습지인 셈이다.

선흘곶자왈 내의 경작지는 산전과 강못으로 구분하는데

산전은 보리, 조, 산듸 등을 재배하고 강못은 주로 벼를 재배하기 위해

습지를 선택해서 조성했다고 한다.

용암언덕은 흐르는 용암의 앞부분이 굳어지면서

가운데 부분이 빵껍질처럼 부풀어 올라 만들어진 지형이다.

상돌언덕은 용암언덕(투물러스)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보이고

동백동산에서 가장 높은 동산으로

주민들이 올라가 숲 주변을 조망했던 곳이라 한다.

척박한 땅이라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돌과 뒤엉켜 뿌리가 판자 모양처럼 납작하게 땅 위로 돌출되어

생명의 끈질김을 일깨워준다.

곶자왈 깊숙한 곳으로 들어 갈수록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들이 많이 보인다.

동백동산 곶자왈의 크고 작은 암석 사이, 함몰지 등 곶자왈만의 갖는 독특한 환경조건은

석위를 비롯해 도깨비고비, 큰봉의꼬리, 더부살이고사리, 관중, 콩짜개덩굴 등과

활엽수림 아래에는 가는쇠고사리가 군락를 이루고

푹신한 낙엽길은 삭막한 겨울을 잊게 해준다.

숯막은 숯을 굽는 곳에 지은 움막을 말하는데
동백동산 숲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숯막 터가 남아 있다.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동백동산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동백동산에는

동백나무, 조록나무, 구실잣밤나무, 참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종가시나무, 황칠나무, 새덕이 등 난대성 상록수가 푸른 숲을 만들어 주고 

참빗살나무, 때죽나무, 호자나무, 남오미자, 마삭줄, 된장풀 등도 보인다.

오며 가며 만났던 백서향은 좀처럼 볼 수 없어 애를 태운다.

4·3사건 당시 피신했던 흔적과

유품들이 발견된 유적동굴로 보존관리하는 동굴이라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글이 보인다.

도틀굴 외에도 대섭이굴, 목시물굴, 벤뱅듸굴 등 난대림 속에 산재한 자연동굴은

소개령이 내려졌을 때 숨기에 알맞은 은신처가 되었다.

포제는 전 마을 주민이 지내는 대제이며 천제이다.

제 신위는 포신지령(脯神之靈)은 상단, 토신지위(土神之位)는 하단에 모시고 있다.

반못은 커다란 암반 위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자연연못으로

연못의 봉천수로 식수와 우마급수용으로 사용하였고

4.3사건 당시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통의 세월을 짊어진 채 제주4.3은 70주년을 앞두고 있다.

제주4.3사건은 제주도민에게 참담한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사건으로

조천읍 역시 제주4.3의 많은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

세월 속에 묻혀 있는 줄 알지만 뼈 속 깊숙이 박혀

아물지 않는 선흘의 아픈 상처를 보며 걸었던 마을길...

하지만 용암대지 위에 뿌리을 내린 숲 '선흘곶자왈 속의 동백동산'은

자연이 준 선물이며 마을이 지킨 국내 최대 상록수림으로

'생태관광마을'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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