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봉현/ 16회 외무고시 합격, 전 호주대사, 국립외교원 겸임교수, 제주대학교 초빙교수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월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선언하였다. 당시에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국제사회는 그 말뜻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봉’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미국을 이용해 왔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순진하게 자유무역의 가치를 지켜가면서 미국 시장을 내 주었는데, 다른 나라들은 미국 제품에 대해서 문을 닫아걸었을 뿐만 아니라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르쳐 준 대로 국제규범을 살짝 살짝 어겨가면서 최대한의 이익을 취해 왔다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 모든 국가들은 미국 시장을 파고들기 어렵게 되었다. 관세폭탄을 비롯하여 환율 폭탄으로 무장한 미국은 미국 내 투자를 촉진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계시장에서 미국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앞에 자유무역의 최후의 보루인 WTO도 무력하게 되었고, 동맹국가인 한국, 일본도 폭탄세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미국의 정책을 ‘가치여 안녕’(goodbye to values)이라는 제목으로 압축 표현하였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 40여 년 동안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국제협조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를 대외정책으로 삼아왔다. 이 정책은 공화당, 민주당할 것 없이 모든 미국 집권당이 채택하였던 초당적 정책이었다. 이 정책으로 인하여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권위를 세우고 미국의 활동은 정통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중요한 가치로서 표방하는 자유무역과 인권, 그리고 국제적 협조는 국제사회의 주류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절대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었다.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는 보편적 가치로서 모든 국가들이 채택해야 하는 규범으로 인식되었고, 미국은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여 왔다.

특히, 인권이라는 가치는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련이 비록 미국에 대항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 문제에 부딪히면서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1975년에 소련과 서구 국가들이 합의한 헬싱키 협약에는 인권조항이 들어 있었고, 이는 소련 내 인권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소련 체제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게 되었다. 솔제니친은 국제적 명사가 되었고, 1991년에 소련 체제는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소련이 인권이라는 가치 하나 때문에 붕괴된 것은 아니지만, 인권은 자유주의와 분리될 수 없는 가치라는 점에서 보면 결국 인권과 자유주의라는 가치로 인하여 소련은 붕괴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냉전 이후에 미국은 세계 유일 강대국이 되었으며, 세계는 미국의 대외정책인 자유주의와 인권, 그리고 국제협조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민주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은 없다(democratic peace theory), 또는 세계는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있다(democratic transition theory)라는 학설들이 등장하면서 세계는 너무나 명확하게 미국이 제시한 가치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미국이 표방해 왔던 보편적 가치 중심의 대외정책이 아니라 미국 경제이익 중심의 대외정책으로 크게 전환되었다. 그동안 미국이 행해 왔던 가치중심의 대외정책을 지지해 왔던 많은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은 트럼프의 새로운 대외정책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은 미국의 새로운 정책에 대하여 맞대응하겠다고 선언하였고, 우리를 비롯한 일본 등 동맹 국가들은 미국의 선처를 읍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정하였다. 중국과 유럽이 맞대응하게 되면 결국 세계는 관세와 보복 관세, 그리고 환율폭탄과 환율조작 등 충돌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내세웠던 국제적 협조주의는 이제 종식단계에 도달하였다.

미국이 표방하여 왔던 자유무역과 국제협조주의는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대하여 일방적 시혜를 내리는 정책은 아니었다. 미국이 세계시장 역할을 하고 그를 통하여 많은 나라들이 경제발전에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도 이를 통하여 많은 이익을 보아 왔다.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들이 자유주의 체제가 되고 국제적으로 협조하게 되면 결국 초강대국인 미국이 국제사회를 주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규범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며 미국이 주도한 규범 하에서 미국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미국이 지금까지 자유무역과 국제협조주의를 채택해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스스로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결국 미국 우선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국제사회 전체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므로 건설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이 표방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국제사회 전체를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소로 변모시키게 될 것이므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전체에게 해로운 파괴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의 파괴적인 미국 우선주의가 국제사회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쳤는지 과거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1930년대에 미국은 자국의 경제적 곤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재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결국 1930년대 초에 대공황을 초래하였고, 세계적으로 군국주의, 파시즘이 대두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호모 데우스’라는 저서를 통하여 인간이 지구의 최종 승자가 된 것은 서로 협력을 잘 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미국은 자유무역과 국제협조주의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건설적 미국 우선주의로 회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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