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하순부터 시작하는 아라동둘레길 환경교육 프로그램 기획회의 겸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제주별빛누리공원부터 시작해 산천단을 둘러보고 그 뒤쪽의 오래전 샘터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지계의 길(관음정사-도륜정사-구암굴사-관음사) 일부와 삼의악 계곡 등반로 일대가 주요 답사코스였다.

삼의악과 주변을 오르내리며 산천단, 본래 있던 다소 투박한 제단과 새로 매끄럽게 기계 제작된 제단 등을 살피고 오름과 목장, 물, 동굴과 부처님을 동굴 속에 모신 절도 살피며 걷자 시간이 금세 갔다. 예년과 달리 온화한 일기가 지속되자 한꺼번에 꽃들이 왁자지껄 깨어난 이상 식생 현상에 대해 대화하며 걷는 길은 벌써 점심때를 훌쩍 넘겼다.

제주 마목장

제주 마목장은 고려시대 몽골이 현재의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일대에 몽골식 마목장인 탐라목장을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조선시대에 중산간 지대 목마장에 돌담을 쌓아 말을 방목하게 했고, 이를 대표하는 것이 10소장(목마장)이다. 이들 소장의 경계는 돌담을 길게 쌓은 잣성이며, 도내 전역에 흔적이 남아 있다. 제주목 지역에 1-6소장이 있고, 대정현 지역에 7소장은 안덕면 중산간 지역에, 8소장은 구 중문면 중산간 지역에 설치되었다. 정의현의 9소장은 구 서귀읍 중산간과 남원읍 중산간 지역에, 10소장은 표선면 성읍리 지역에 설치되었다.

소장에서는 국마와 주민 소유의 사마가 공동 방목되었다. 10소장은 1894년 감목관제와 공마 제도가 폐지되어 공마 공급이 종료되고 1897년부터 공마제 대신 금납제를 시행하게 되어 사라졌다. 이후 중산간 목장터가 경작지로 개간되고 또 주민 취락지로 변하게 된 역사, 156개 마을목장이 50여 개로 축소된 과정, 의귀리 지명 유래(말 500필을 진상해 왕으로부터 옷을 하사받아 “옥귀”라 함) 등 이야기를 나누며 너른 목장터와 고사리밭 옆의 마목장을 둘러봤다.

제주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리 깊은 숲이 있다니! 초입부터 잡목들이 양옆에 즐비하고 열대 우림의 정글 같은 덩굴 식물들이 높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줄기들을 치렁치렁 늘어내리고 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편백나무 숲이 나타나고 피톤치드를 즐길 수 있게 평상들이 마련돼 있다.

“여기서 명상하고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며 피톤치드를 호흡하면 좋겠네.”

편백나무 향이 솔솔 우리를 따라다닌다. 올해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긴 탓에 늦게까지 춥다가 갑자기 초여름 날씨가 며칠 계속되니 잠자던 식물들이 깜짝 놀라 한꺼번에 깼다. 벚꽃도 며칠 새 만개하고 또 서둘러 지는 숲은 참 낭만적이다. 흩날리는 벚꽃잎, 여린 새순 돋는 가지 사이로 하늘이 크게 들어온다. 비목 새순 한 잎 따서 음미하고 으름덩굴 새순과 종종거리는 으름꽃도 들여다보고 작년에 피었다 지지 않고 하얗게 바랜 산수국 묵은 꽃가지를 보니 생과 사가 하나임을 느낀다.

꽃이 져야 열매가 익는 자연의 순환을 보며 깊은 감동을 맛본다.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벚꽃에 취해 잠시 길을 멈추고 잎과 함께 피어난 산목련이 하얗게 떨어진 숲길 따라 걷는 기분은 이 시기를 지나면 못 느낀다. 다음에는 교육 시기를 4월 초로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곡선이 아름다운 산목련 잎을 주워 이리저리 살피다 아랫입술에 바짝 대고 윗입술로 공기를 넣으니 파르르 떨린다. 목련 꽃잎으로 불어보는 풀피리. 가락 없이 그저 소리만 겨우 낼 뿐인 풀피리를 나름 재미있게 불어본다.

삼의악 계곡(세미오름)

삼의봉은 제주시 아라1동 산 24-2번지로 표시된 오름이다. 삼의악(三義岳), 삼의양악(三義讓岳), 사모악(紗帽岳) 등 여러 별칭으로 불리는데, 사모악은 이 오름의 전체적인 형상이 조선시대에 벼슬아치들이 쓰던 모자인 사모와 닮은 데서 붙여졌다. 또 넓은 분화구 바로 아래쪽에 샘이 솟아나서 샘이 있는 오름, 세미오름이라고 불린다.

완만한 동쪽 비탈면은 해송이 드문드문 식생한다. 등산로가 경사져 오르기가 조금 숨차고, 약간 올라가면 인위적으로 옮겨 심은 새우란 서식처가 있었다. 낙엽 활엽수림이 아닌 해송 밑에 자리한 이 서식처가 좀 어색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쪽 비탈면은 잡목으로 우거져 있으며 군데군데 곰취와 산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오름은 옛날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기슭 일대에 많은 묘가 자리잡고 있다.

제주국제대학교 쪽보다는 탐방로가 완만히 시작되는 관음사 가는 도로 쪽(관음사가는길 식당 맞은편 쪽 입구)에서 답사를 시작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나누며 이동했다. 답사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세미오름 아래쪽 칼다리 폭포에서 만난 씨앗 무덤과 도롱뇽 알들이었다. 폭포 밑에 쌓여 있는 씨앗은 밟아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다리를 이루고 있어 장관이었다. 더 놀라운 건 몸을 구부려 본 바위 틈새였다. 거기서 난생 처음 도롱뇽 알 군집을 봤다.

“와우, 이거 뭐야!”

탄성이 절로 났다. 개구리와 도롱뇽의 거대 알 집합체를 비교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 개구리는 물가에 알을 낳는데, 투명한 젤리 형태의 망 안에 검은 점들이 동그랗게 있는 모습이다. 보통 1개의 알 덩어리 안에 500~3000개의 알이 있다. 도롱뇽 알은 투명한 관 형태의 물질 안에 검은색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형태다. 현장학습을 통해 이 신비로운 생태를 직접 보면서 왜 이런 곳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지, 또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고민하게 해야 한다.

오연숙/ 자연친구

탐방로 바로 아래가 5‧16도로여서 차 소리가 나는데도 바로 옆에 이렇게 깊은 숲이 있는 게 이상하리만치 신기했다. 도심을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자연은 이리도 가까이서 말없이 존재함에 감사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니 ‘바다’라 했던가. 산도 모든 것은 삼켜주니 산인가 싶다. 매연을 내뿜어도 삼켜주고 소음도 삼켜주고 우리 마음의 상처도 삼켜주는 듯한 오늘은 답사보다도 힐링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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