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정치의 역설: 비스마르크와 트럼프 그리고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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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 정치의 역설: 비스마르크와 트럼프 그리고 김정은
  •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4.23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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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우린 자주 아이러니에 직면한다. 정치에서 특히 그렇다. 역사에서도 아이러니가 많다고 하는데, 그게 다 정치사인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 또는 부조화를 의미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다지 모순적이지도 않고 예상 밖의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저 관례화되고 틀에 박힌 생각이나 이념적 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주 역설과 아이러니에 놀라게 될 터이다.

정치에서 아이러니는 또한 흥취를 갖다 주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통일을 이룬, 나름 재능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비스마르크에게 볼 수 있는 아이러니는 그가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제정하면서 동시에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를 출범시킨 당사자였다는 것이다. 왜? 그건 당시 사회주의 정당의 득세로 국내정세가 불안하다고 본 비스마르크가 정권 보위책으로 광범한 복지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사회주의를 탄압하면서 복지정책을 추진해 나간 비스마르크는 분명 정치에서의 아이러니와 흥취를 흠뻑 선사해 주고 있다.

마침내 김정은 위원장이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선회했다. 이른바 비핵화로 나아가는 행보를 통해 혹시나 하는 정치에서의 역설이 마련되었다. 그것도 경륜이 그다지 많지 않은 30대 초반의 김정은에게서이다. 5년전만 해도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며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그렇게 강조해 마지않던 핵-경제 병진노선을 이렇게 전격적으로, 그들 표현대로 ‘결속’(結束)하게 된 소이는 무엇일까? 이판사판인가, 아니면 고도의 계산된 전략, 그것도 아니면 궁여지책인가?

그건 자신감의 발로이고, 국내외 정세에 대응하는 정치적 필요의 산물로 보여진다. 비스마르크의 자신감이 경륜과 성취에서 온 것이라면, 김정은도 핵무장의 고도화를 통해 정권보위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보는 자신감에서 온 듯하다. 동시에 국내정세에 대한 비스마르크의 우려처럼, 김정은 치하의 북한 역시도 경제의 어려움은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오래 전에 사회주의적 배급경제는 파산되었고, 주민들은 그렇게 비난해 마지않던 초보적 자본주의 방식의 하나인 장마당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해 온지도 어느새 10년이 지나간다.

북한이야말로 새로운 전환이 절대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니 늦었다. 경제 중심으로의 전환은 김정일 치하의 북한과는 다른 김정은의 치하의 북한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극심한 자연재해로 수십만이 굶어 죽기도 하는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에 비하면 2010년대 김정은 치하의 북한은 핵무장뿐만 아니라 500개가 넘는 장마당-상설시장으로 가구 수입의 70-80%를 조달하면서 숨통을 돌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언가 새로이 대외개방과 같은 제3의 처방을 접맥시켜야 정권보위가 더 충실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자연스런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어릴 적 스위스에서 살았던 경험도 유용하게 작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김정일 시대 때부터 북한은 대외개방의 변화를 시도해 왔다. 주지하다시피 김정일은 김대중-노무현과 회담했고, 클린턴과의 만남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핵 문제로 더 이상 의 진전이 없이 2000년대 김정일 시대는 갔다. 2010년대 김정은 시대가 왔고, 얼마 없어 곧 2020년대가 온다. 반미와 사회주의 그리고 핵강국만으로는 계속 북한 주민을 위안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이 다시 고개를 드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김정은의 말이 허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핵화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지난 10년간 충분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경제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 경제가 대북제재의 지속으로 다시 구렁텅이에 빠지게 지면, 그것은 김정은은 리더십은 물론이고 북한 지도부 전체에 대한 북한 주민의 지지 철회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자연재해 탓으로도 돌렸던 김정일 때와는 다른 정책과 노선에서 담대한 돌파구가 모색되어야 할 이유이다. 문제는 돈이다. 경제개발을 추진해 나가는 데 소요될 종잣돈이 절대 요청된다. 그래서 평창에 왔고, 정상회담도 시작되고 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클린턴의 선거 구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경제를 살리고 주민의 지지를 계속 유지해 나가려면 김정은에게는 더 절박한 게 돈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제재 강화는 비군사적 비핵화 정책의 하나로 이제 수명을 다하고 있다. 어떤 정책도 너무 지나치거나 오래 반복하면 효과도 없고, 또 구태의연한 무능력의 발로일 뿐이다. 한 1년간 대북압박을 실컷 했으니, 트럼프도 평양에서 김정은과 햄버거 대화를 하는 게 피차 정치적으로 유용할 뿐만 아니라 국내정세의 어려움을 덜어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듯싶다.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으리라 보지만, 스캔들이 너무 많다. 여론조사의 지지도도 별로이다. 이웃나라들을 압박하면서 경제를 챙기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는 있지만, 미국경제의 경쟁력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회복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 11월에 치르게 될 중간선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트럼프의 담대한 협상력이 힘을 발휘하게 되면, 그것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뿐만 아니라 북한투자를 통한 미국의 경제 살리기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재선을 향한 트럼프의 권력의지도 탄력을 받게 될 터이다.

5월에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순조로이 잘 이루어지고 소기의 성과를 얻게 된다면, 일약 트럼프와 김정은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대열에 들어설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평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정상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이 역시 아이러니이고 또 노벨평화상이라는 것도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1948년 이후 70년간 한반도를 억누르고 있던 냉전이 바야흐로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니, 한반도에 사는 7천만 한겨레로서는 이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역설적 상황이 2018년에 서서히 조성되어 나가고 있다.

종전선언이니, 평화협정이니, 북미수교니, 남북수교니 하는, 그간 조심스럽게 그러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외치던 염원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대화의 밥상에 오르게 되는 것을 보면서, 어찌 흥분과 흥취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아직도 경계를 해야 한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모르고 그저 고리타분한 반공주의적 경계론으로는 보수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비스마르크와 같은 냉철한 정치인이 안 보이는 게 오늘의 보수 야당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각자 자신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국내외 상황을 점검하면서 정치적 활로를 찾아나서는 데서 평화가 오고 공동번영이 오는 것이다. 한편의 드라마로도 부족함이 없는 정치의 역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야당은 6월 지방선거에 대비한 적극적 정책대응이 부족하고, 한반도의 변화를 읽어내는 혜안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책도 없고 인물도 없다. 이제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한국 정치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새 시대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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