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제주에 내려와 평생 사랑을 실천한 아일랜드 출신 P.J. 맥그린치(90·한국명 임피제) 신부가 23일 오후 6시 27분 선종(善終)했다.

‘푸른 눈의 돼지신부’로 불리는 그는 195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 신분으로 제주 한림에 둥지를 틀었다. P.J. 맥그린치 신부가 제주에 처음 왔을 땐 주변엔 온통 돌과 바람밖에 없던 폐허의 땅이었다. 더구나 4.3사건과 함께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제주사람들의 삶은 더 없이 궁핍했다.

당시 먹을 것이 없어서 노상 굶는 사람, 가난을 피하기 위해 육지로 일하러 갔다가 죽어서 돌아온 시골처녀를 보면서 P.J. 맥그린치 신부는 ‘참된 사랑이야말로 이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림읍에서 유럽식 농촌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먼저 금악리 일대에 성 이시돌 목장을 만들어 돼지농장과 양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장비도 변변치 못한 시절 맥그린치 신부가 불모지 땅을 일구며 제주사람들로 부터 수없이 들었던 얘기는  ‘안됩니다’였다. 그러나 맥그린치 신부의 열정과 사랑은 ‘안됩니다’를 가능한 일로 이시돌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시돌 목장에서 농민들에게 목초지 개량법이나 가축 기르는 법을 가르치고 양모를 이용한 모직공장, 사료공장 등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더불어 4H클럽 제주 조직을 꾸려서 제주 최초의 신협인 한림신협도 만들었다. 이시돌 목장의 수익으로 호스피스 병원과 요양원, 청소년 수련관 등 사회복지사업을 만들고 평생 운영했다.

사랑의 사제로 불리는 맥그린치 신부는 65년 전 제주에 들어와 외국인으로 보기 힘든 업적으로 1975년 아시아의 노벨상인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또한 5·16민족상, 대한민국 석탑산업 훈장, 아일랜드 대통령상, 대한민국 국민추천으로 주는 국민훈장 모란장, 도내 언론사에서 주는 ‘자랑스런 제주인’ 상도 받았다.

맥그린치 신부는 1973년 명예 제주도민이 돼 ‘임피제’라는 한국이름으로 살아왔다.

수많은 업적을 이루며 제주에 살아 온 맥그린치 신부에게 생전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 많은 걸 성공하게 되셨나요?” 이에 노(老)신부는 덤덤하게 웃으며 답했다. “여러 번 실패하면서 때로는 실패가 기적을 낳거든요”

필자는 지난 1992년 겨울, TV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맥그린치 신부와 열흘 동안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그때 신부께서 자주 강조했던 말은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은 바로 실천에 있습니다”라는 얘기였다. 제주사람 보다 더 제주를 사랑한 P.J. 맥그린치 신부, 몸소 사랑을 실천한 그는 어쩌면 이 시대가 필요한 진정한 사제가 아닐까 싶다.

올해 나이 90의 노(老)신부는 지난 9일 심근경색과 심부전증 등 허혈성 심질환으로 제주한라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가 23일 선종(善終)했다.

그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사랑은 영원히 제주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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