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도루마 슌과 끝나지 않은 전쟁 곽형덕(문학평론가)

 

이 글은 오키나와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메도루마 슌(目取真俊, 1960-)의 반기지 활동을 이룬 사상의 원점을 점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메도루마는 자신이 밟고 서있는 땅을 일본 및 미국과 맺은 근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상대화해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작가/활동가로서 살아왔다. 이 글에서는 메도루마가 오키나와를 기점으로 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사유를 확대되어간 경위를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1999년을 기점으로 활발히 펼친 평론활동을 검토하려 한다.

메도루마 슌은 1995년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소녀폭행사건 이후 달라지지 않는 오키나와의 현실에 대한 초조함과 분노를 창작에서만이 아니라 반전 평화 운동으로 드러내 왔다. 메도루마의 분노는 오키나와 내부의 모순 및 치유의 섬, 평화의 섬 등의 덧씌워진 오키나와의 이미지에 안주하는 지식인들에게로 점차 향해갔다. 다빈더 보믹(Davinder L. Bhowmik)이 지적하고 있듯이 메도루마는 오키나와 공동체는 물론이고 오키나와 작가와의 원치 않는 교류와도 단절된 지점에서 자신의 작품을 써왔던 만큼 그는 공동체에 안주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이처럼 1995년 이후 집필된 메도루마의 작품은 소녀폭행사건 이후 오키나와 문화계에서 벌어진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메도루마 문학에 대한 이해는 오키나와 내 소수민족 차별을 다룬 초기 문학을 시작으로 미군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과 이후의 반전 평화운동까지를 시야에 넣고 전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반기지 활동가로서 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는 메도루마의 사상을 검토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메도루마가 타이완과 북한 체험을 거쳐 오키나와를 상대화해서 봤듯이, 오키나와문학을 통해 한국 내에서 비가시화된 영역으로 굳어져가는 미군기지 문제 및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싼 기억 투쟁에서 문학의 역할을 재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부세력(제국)의 틈바구니에서 동화(同化)와 이화(異化)의 길목에 섰던 ‘피식민자’가 그 상황을 온몸으로 돌파해갔던 역사적 기억이 새겨진 오키나와문학 전반에 대한 검토 작업이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도루마 슌과 끝나지 않은 전쟁

 

곽형덕

 

이 글은 오키나와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메도루마 슌(目取真俊, 1960-)의 반기지 활동을 이룬 사상의 원점을 점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메도루마는 자신이 밟고 서있는 땅을 일본 및 미국과 맺은 근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상대화해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작가/활동가로서 살아왔다. 이 글에서는 메도루마가 오키나와를 기점으로 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사유를 확대되어간 경위를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1999년을 기점으로 활발히 펼친 평론활동을 검토하려 한다.

 

‘공포의 섬’ 오키나와

메도루마 슌은 ‘군사기지의 섬’ 오키나와가 근대 이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포의 섬’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섬을 ‘평화의 섬’이라고 부르는 기만으로부터 이제 벗어나자. 살해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오키나와는 ‘공포의 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단정한다. 전후 오키나와 작가 가운데 메도루마처럼 자신의 안전한 위치(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를 내던지고 격랑이 이는 ‘압살의 바다’(헤노코 앞바다)로 나가 싸운 인물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로서 일본 본토가 요구하는 이국적인 열대의 섬 오키나와라던지, 혹은 ‘미국’을 비판해서 일본에 면죄부를 준다던지, 오키나와를 피해자로 삼아 안심하는 것을 원점으로 삼아 글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군사기지의 섬’ 오키나와를 전면에 드러냈고, 오키나와 전(戰) 당시 ‘동포’를 살해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으며, 아시아인들을 차별한 우치난츄(오키나와인)의 가해자성을 드러내는 글을 써왔다. 메도루마는 인식 후에 실천해 온 작가라기보다 실천을 통해 더욱 첨예하게 인식하고 실천해가는 작가이다.

그는 오키나와의 식민지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가열 찬 투쟁을 ‘우리’가 전개해야만 하는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 말한다. 이 때 그는 동아시아 주변국은 물론이고 이라크, 아프카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가해자로서 오키나와를 위치시킨다. 구 제국 일본과 신제국 미국의 ‘전쟁’을 오키나와와 분리시키지 않고 그 자체의 문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오키나와가 공허한 구호로서만이 아닌 실질적인 ‘평화의 섬’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그가 ‘우리’에게 몸을 던져 묻고 있다고 하겠다. 폐번치현(1879) 이후 류큐에서 오키나와로 이름이 변경된 후, 오키나와는 일반인에 대한 징병령(1898) 아래에서 일본 제국이 수행하는 전쟁(러일전쟁에서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에 참여했다. 또한 미군의 오키나와 점령 이후에는, 6.25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제2차 걸프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 등 최근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미국의 전쟁 수행에 가담해 왔다는 가해자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 본토에 대한 9.11테러 이후 오키나와의 관광업이 커다란 타격을 입은 것은 미군 군사기지의 섬 오키나와의 현 주소를 명확하게 노출한 것이다.

메도루마는 오키나와의 근대 역사에 눈을 감고 ‘평화’라는 말로 전쟁과 폭력, 식민지지배, 학살의 역사를 덮으려는 위선에 반대한다. 이때 메도루마의 시선은 과거의 오키나와 전을 통해 현재 오키나와 사회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직시하고 있다. 메도루마의 현실 인식과 참여는 동아시아에서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되살아나 현실을 위협하고, ‘새로운 전전(戰前)’이 현실감을 갖고 육박해 오고 현 상황에서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이미 늦게 된다.”는 절박한 인식을 보여준다. 메도루마는 현재 자신이 속한 곳에서 식민지적 상황을 강요하는 것들에 “풀의 목소리”를 듣고 “뿌리의 의지”로 맞서 싸우라고 외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본토는 물론이고, 오키나와 내부에서도 ‘불편’한 방식이라 할 수 있는 피해자 및 가해자로서 오키나와를 인식하고, 이를 통해 우치난츄의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메도루마가 작가 및 운동가로 살아온 이유라 하겠다. “나락을 향해 돌진하는 레밍(lemming)의 무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이 벌어지고 나면 이미 늦게 된다.”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야말로 메도루마가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던 사상의 기점이며, 창작열에 불타오르는 마음을 뒤로 하고 ‘압살의 바다’로 그를 향하게 하는 원점의 사상에 다름 아니다.

 

오키나와 비판의 행방

메도루마는 오키나와가 처한 식민지적 상황을 일본 본토 및 미군 등의 외부 세력의 문제로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강대국에 의해 자기 결정권이 침해받는 상황을 오키나와 내부의 주체적 역량의 결핍이라는 시점을 제시해, 통렬한 자기비판을 행하고 있다. 요컨대 오키나와의 모순에 가득 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치난츄 자신의 각성과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메도루마는 오키나와에 덧씌워진 위선적인 인식 구조를 비판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요소로 드러난다.

첫째, 남방의 섬 오키나와 이미지에 대한 비판이다.

 

오키나와의 마을이나 섬이 미화돼 이야기되는 것은 어제 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남방’

적인 느긋함이나 밝음. 친절하고 정이 깊고 수줍고 말솜씨가 없지만, 천성은 좋은 사람들.

(중략) 하지만 일단 마을에 정주해 생활을 하게 되면 쉽게 파고들 수 없는 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NHK 아침드라마 「추라상(ちゅらさん)」(2001-2004)은 일본 본토가 바라보는 이국취향(exoticism)을 드러낸 것으로, 거기에서 “파고들 수 없는 벽(壁)”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메도루마는 오키나와를 다른 지역과 완전히 유리된 지역, 즉 특수한 장소로 위치시켜 ‘면죄부’를 얻으려는 오키나와 내외부의 위선적인 인식구조를 위 글에서 집약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만들어진 이미지에 스스로를 속박시켜 그 인식구조 안에 자족하려는 우치난츄는 물론이고, 미화된 이미지에 기대서 오키나와에 과도한 ‘기대’와 ‘안식’을 얻으려는 외부인 모두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하겠다.

 

멀리서 보면 에메랄드그린의 아름다운 바다가 보인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진흙에 뒤덮

인 산호의 잔해가 흩어져 있다.

 

메도루마는 원경(遠景)과 근경(近景)에 따라 오키나와의 실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할 것을 촉구한다. ‘치유의 섬’ 오키나와 이미지를 형성한 아름다운 바다마저도 ‘군사기지의 섬’이라는 잔혹한 현실에 의해 파괴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둘째, 그는 류큐왕국 시대에 과도한 향수를 갖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메도루마는 오키나와가 동아시아의 중계무역 거점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하는 역사 이야기가 자칫 잘못 이용되면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즉 중국, 조선왕조 등과의 ‘대 교역시대’를 강조하는 것이, 20세기에 행한 전쟁 가담 행위 등에 대한 가해자성에 대한 반성의 부재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요컨대 오키나와에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자기도취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 이후의 역사 가운데 만들어진 관련양상으로, 현재의 정치 및 경제 상황 가운데 파생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물론 오키나와에 대한 비판은 우치난츄만이 아니라 야마토(일본 본토인) 지식인들의 ‘허위’에 찬 연대나 인식 구조를 향해 더욱 날카롭게 겨눠진다.

 

최근 3년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키나와와의 연대’를 위해 야마토로부터 왔

던가. (전략) ‘오키나와 투쟁 승리’ 운운 하며 용맹스러운 말을 여기저기 토해내며 투쟁단

이나 교류단이 왔다. 하지만 그래서 오키나와의 기지가 어떻게 변해있는가. 아무 것도 변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분노에 가득 찬 체념에는, 메도루마의 야마토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만이 담겨있지는 않다. 이는 우치난츄의 자기 결정권이 본토와의 연합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메도루마는 오키나와에 덧씌워진 허위적인 이미지를 허물어뜨리고, 비판과 저항이 가능한 ‘주체성’ 확립을 지향한다. 이는 오키나와가 이중의 지배 구조를 자기 결정권 확립을 통해 철폐하고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기 위한 실체적인 방법론에 다름 아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시야에 넣고

메도루마가 펼친 반기지 평화 활동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긴박한 문체로 쓴 두 권의 평론집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메도루마가 평론 활동에 집중한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999-2000년이라는 시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 오키나와 내에서는 역사수정주의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헤노코 신기지 이전 문제 등이 국가적 ‘이벤트’(G8)와 맞물려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메도루마가 이와 시기를 같이해서 오키나와 전 당시 일본군의 주민 학살과 우치난츄 및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만행을 소년과 ‘고제이’의 시점을 교차시켜 쓴 소설, 「나비떼 나무群蝶の木」(2000.6)를 발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비떼 나무」에는 오키나와 전 당시 우군(友軍,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을 스파이로 몰아서 죽인 것만이 아니라, 전시동원과 주민학살에 우치난츄 병사가 가담한 것까지 그려져 있다. 요컨대 메도루마는 일본 본토 및 오키나와에서 전개되고 있던 역사를 둘러싼 기억의 풍화와 왜곡에 심각한 우려를 품고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볼 수 있다. 메도루마는 「나비떼 나무」에서 일본 제국 내에서 야마톤츄(일본인), 우치난츄, 조세나(조선인)라고 하는 명확한 민족적, 식민지적 우열관계가 전시 상황에서 어떠한 비극을 낳았는지를 그리면서도, 소수자 여성 사이의 연대감을 그린다.

이처럼 메도루마는 일본 본토 대 오키나와, 미국 대 오키나와라는 이항대립적인 사고의 틀이 아닌, 오키나와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근현대사를 시야에 넣고 논지를 전개한다. 특히 메도루마는 오키나와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타이완이나, 인접국인 한국 및 북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현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메도루마는 남북정상회담 한 달 전인 2000년 5월 북한을 5일간 방문한다. 이 방문을 통해서 그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동아시아적 시점에서 다시 포착한다.

 

우리들은 자칫하면 미군기지 문제를 오키나와-일본-미국이라고 하는 삼자의 관계 가운

데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근거에 입각해 생각한다면

오키나와-북한-중국-미국-일본이라는 관계 구조 가운데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

다.

 

메도루마는 한반도에서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던 2000년에 북한을 방문해 동아시아 전체 상황이 변해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오키나와가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 즉 타자(중국, 북한, 한국)의 눈을 통해서 군사기지의 섬 오키나와를 직시해, 앞으로의 국제 정세의 변화가 오키나와에 미칠 여파만이 아니라, 오키나와 자체의 변화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있다. 메도루마는 북한 방문으로부터 3개월 후에 타이완에도 방문해 오키나와와 타이완이 근대 이후 맺은 불행한 관계를 성찰했다. 이 때 메도루마는 일본이 타이완을 침략(1874)한 계기가 된 류큐인 조난자 묘지 및 식민지 지배의 흔적을 방문해 오키나와와 타이완의 근대 이후 관계를 고찰한 후 이 방문이 “오키나와가 피해자나 피차별자 일변도가 아니라 가해자나 차별자였음을 깨닫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쓰고 있다. 메도루마의 초기작이 오키나와 내의 소수민족 차별 문제를 다룬 「어군기」(1983) 및 「마가 올려다본 하늘」(1983)인 것에서 나타나 있듯이, 그는 오키나와의 가해자성을 사유하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립했다. 「어군기」는 타이완 여공에 대한 우치난츄의 차별을, 「마가 올려다본 하늘」은 타이완인과 우치난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마가 소년들 사이에서 성적학대를 당하다 오키나와 소녀에게 성적 행위를 한 후 마을 공동체 남성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내용이다.

북한과 타이완에 대한 인식과 함께, 메도루마가 힘을 쏟아 글을 썼던 것은 미국이 2000년대 이후 벌인 이라크 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이다. 이 두 전쟁에 오키나와가 가담하면서도 베트남 전쟁 당시와는 달리 그에 대한 자각이 일본인은 물론이고 우치난츄 일반에서도 없는 상황을 그는 우려하고 있다. 메도루마는 우치난츄의 식민지 정신 타파를 주장하며 끈기 있게 펼칠 수 있는 운동을 구상한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내발적인 오키나와의 ‘자립’ 및 ‘독립’을 향해 나아간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독립’에 찬성인가, 반대인가라고 양자택일을 하라고 성급하게 재촉하기 전에, ‘독립론’

을 논의하는 것을 통해 열리게 되는 가능성이나, 오키나와가 처해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시점이 소중한 것이리라. 근대국가의 틀이 크게 흔들리고, 민족주의가 비참한

분쟁을 낳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오키나와 독립론’이 일본이라는 국가로부터의 이탈,

새로운 국가의 창설이라고 하는 단순한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국가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기초 개념의 검증으로부터 영구혁명자의

끊임없는 국가해체의 논리까지, 폭넓은 논의를 활발히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소중한

것이리라.

 

메도루마의 ‘오키나와 독립’에 대한 사상은 단순히 오키나와가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국가를 형성하는 식의 단선적인 형태가 아니다. 메도루마는 민족주의적 시각에 기반해 독립 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오키나와가 처해 있는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서 현 단계에 걸맞은 형태의 ‘독립’ ―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제시돼 있지 않지만 ―을 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독립론이 흔히 빠지기 쉬운 배타적 민족주의를 최대한 지양하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메도루마가 전개하고 있는 반기지 활동은 오키나와의 평화로운 미래와 독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행해야할 선결과제로 독립론에 앞서 대단히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제시돼 있다. 그런 점에서 메도루마가 “저항운동이 어떠한 형태를 취할지는 그 시대나 지역의 상황에 의해 무엇보다 유효한 수단을 선택하면 된다. 문제는 자신에 몸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각오하고 싸울 수 있는 기개가 있냐는 것이다.”라고 묻고 있는 것은 독립론 이전에 오키나와에서 이뤄야할 기지 없는 삶이, 개개인의 투쟁 없이는 불가능함을 말해 주고 있다. 메도루마는 오키나와 독립파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의 독립에 대한 사상은 근대 민족주의 및 국민국가를 넘어선 지평에서 아직 구체적이지 않은 추구해야할 운동의 형태로 제시돼 있다. 다시 말해서 기지 없는 섬을 만드는 것은 오키나와가 독립하는 것에 앞서 선취해야할 절대적 조건인 셈이다.

 

나가며

메도루마 슌 문학에 대한 한국에서의 수용은 2000년대 이후부터 이뤄지고 있다. 메도루마의 작품은 현재 『혼 불어넣기』(유은경 옮김, 2008, 아시아), 『물방울』(유은경 옮김, 2012, 문학동네), 󰡔메도루마 작품집 1권 어군기󰡕(곽형덕 옮김, 2017, 보고사)까지 총 4권이 한국어로 번역돼 출판돼 있다. 여기에 근간 될 예정인 장편소설 󰡔기억의 숲󰡕(손지연 옮김, 2018, 역락), 󰡔무지개 새󰡕(곽형덕 옮김, 2019, 출판사 미정)와 중단편 소설 모음집인 󰡔메도루마 작품집 2권 나비떼 나무󰡕(곽형덕 옮김, 2018, 보고사)까지 메도루마의 거의 전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돼 나오게 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키나와문학 연구와 번역에서 그 존재가 미미했던 한국이 10여년이 지난 현재 이를 가장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도루마 슌에 대한 평가는 왕왕 그의 문학적 활동과 반전 평화 운동이 분리된 채 이뤄져 왔다.

메도루마 슌은 1995년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소녀폭행사건 이후 달라지지 않는 오키나와의 현실에 대한 초조함과 분노를 창작에서만이 아니라 반전 평화 운동으로 드러내 왔다. 메도루마의 분노는 오키나와 내부의 모순 및 치유의 섬, 평화의 섬 등의 덧씌워진 오키나와의 이미지에 안주하는 지식인들에게로 점차 향해갔다. 다빈더 보믹(Davinder L. Bhowmik)이 지적하고 있듯이 메도루마는 오키나와 공동체는 물론이고 오키나와 작가와의 원치 않는 교류와도 단절된 지점에서 자신의 작품을 써왔던 만큼 그는 공동체에 안주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이처럼 1995년 이후 집필된 메도루마의 작품은 소녀폭행사건 이후 오키나와 문화계에서 벌어진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메도루마 문학에 대한 이해는 오키나와 내 소수민족 차별을 다룬 초기 문학을 시작으로 미군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과 이후의 반전 평화운동까지를 시야에 넣고 전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반기지 활동가로서 운동의 최전선에 서있는 메도루마의 사상을 검토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메도루마가 타이완과 북한 체험을 거쳐 오키나와를 상대화해서 봤듯이, 오키나와문학을 통해 한국 내에서 비가시화된 영역으로 굳어져가는 미군기지 문제 및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싼 기억 투쟁에서 문학의 역할을 재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부세력(제국)의 틈바구니에서 동화(同化)와 이화(異化)의 길목에 섰던 ‘피식민자’가 그 상황을 온몸으로 돌파해갔던 역사적 기억이 새겨진 오키나와문학 전반에 대한 검토 작업이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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