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진 각본이었다. 정교한 연출이 돋보였다. 드라마 같은 감동의 이벤트였다.

한국 전쟁 후 한반도 남녘땅에서 처음 열렸던 ‘남북정상회담’ 진행상황이 그랬다.

그래서 내외 국민의 관심은 물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정상 간의 악수와 포옹은 뜨거웠고 파격행보는 유쾌했다.

환한 웃음과 격의 없는 담소는 말과 글이 같은 한민족 한겨레임을 진하게 느끼게 했다.

회담이 마무리된 후 나눈 만찬 분위기는 부드러웠고 화기애애했다.

故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른 열세 살 제주소년 오연준군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만찬 석 어른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고 즐겁게 했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이 눈부신 그곳으로 가네‘

노랫말 소절의 ‘그곳’은 “기대와 소망이 있는 곳을 말하고 화합과 희망 평화 번영의 길을 의미 한다“고 청와대는 자의적 해석을 내놨다.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결과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하고 선언문에 서명했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내용을 담았다.

‘완전한 비핵화’ ‘핵 없는 한반도’를 말하면서 “남북은 각기 자기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국제사회의 지지․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도 했다.

두 정상은 올해 안에 6.25 전쟁의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외에도 NLL평화 수역지정과 남북 공동어로,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 개설, 경의선철도, DMZ 평화지대와 군축문제 등 유의미한 내용들도 들어 있다.

이날 ‘판문점 공동 선언’이 남북이 군사적 대결을 종식하고 평화의 새 시대를 가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평화의 새 시대’를 담은 불꽃을 쏘아 올린 것이다.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정상회담 표어가 구호가 아닌 현실로 다가선 느낌이었다.

그러나 ‘평화와 번영’이 당장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와 번영‘을 향한 대장정의 곳곳에는 예기치 못한 암초가 숨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처에 보이지 않은 걸림돌도 널려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협상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세세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경구(警句)다.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많이 낀다’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옛말도 큰 틀에서 같은 의미다.

문대통령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개최했던 언론사 사장 오찬 간담회에서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디테일의 악마’를 경계했었다.

비핵화 로드맵 합의에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나 난관이 끼어들 여지를 걱정했던 것이다.

4.27회담에서 이러한 ‘디테일의 악마’를 어떻게 골라냈고 극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일각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불신과 지금까지 북의 신뢰성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에 들뜨고 흥분해서 정작 소중하고 필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정상회담의 현상에 취해서 본질을 외면할 때가 아니다. 환호작약(歡呼雀躍)하거나 ‘비핵화 삼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닌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비핵화 트라우마’가 있다.

북한과의 비핵화 약속이나 합의가 휴지조각이 돼 버렸고 더 큰 긴장감과 대치국면으로 작용했던 경험을 안고 있다.

1972년 ‘남북 7.4 공동성명‘이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2005년 9.19 6자회담 비핵화 공동성명,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등에는 적대행위 금지, 정전체제 종식, 비핵화 선언과 핵사찰 수용 등 남북 간 긴장완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약속과 합의가 포함됐었다.

이번 4.27 판문점 선언의 얼개가 여기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러한 남북 간 약속이나 합의는 ‘허명의 문서’였다.

북한은 핵 폐기가 아니라 합의 파기로 한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번 남북정상이 서명한 ‘4.27 판문점 선언‘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의심의 눈초리도 많다. 북한의 합의파기 전력이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비핵화 담판이 될 수밖에 없는 ‘북미정상회담’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뢰성의 위기’가 악재요 가장 큰 변수다.

북미 양정상이 신뢰의 바탕위에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21세기 최대의 평화이벤트로 기록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반도는 더 큰 화약고’가 될 수밖에 없다. 전쟁의 재앙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여기에 연동돼 있다.

‘4.27 판문점 선언’의 행간에 숨어 있는 ‘디테일의 악마’가 언제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와 ‘비핵화 합의’를 갉아 먹을지 모르는 일이다.

공은 일단 미국에 넘어갔지만 ‘북 핵 비핵화’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긴장감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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