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한 지 4000일을 맞았다. 주민들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해군제주기지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의 섬'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군함과 핵잠수함들이 드나들며 논란을 빚기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관함식을 열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 분명 강정마을은 총회를 통해 유치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를 무기 진열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개최 여부를 명확이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를 맞아 강정지킴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세 번째 순서는 강정해군기지반대 운동에 동참해 딸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선남 씨가 맡았다.<편집국>

강정마을 곳곳에는 장승, 현수막, 뜨개로 만든 천막, 나무와 폐자재를 활용해 글을 쓰고, 기억에 남는 말을 새긴 저항예술이 많다. 4000일을 기억하면서, 길거리 미사천막이 있는 옛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쪽에서는 ‘구럼비 설치예술 기억 전’을 시작했다. 28일 오픈을 한 이번 전시는 비록 구럼비를 빼앗겼지만 구럼비를 잊은 적 없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되새기며 구럼비 인근에 설치됐던 작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한 ‘구럼비 전’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예술품을 모은 ‘보아라 전’ 두 주제로 마련했다.

2007년 최병수 작가가 이지스함 모양을 철판에 용접해 만든 작품을 마을 주민 김민수가 재현한 작품과, 고길천 화백이 구럼비 인근에서 해군기지의 위험성을 고발한 다양한 그래피티 작품은 강정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습’의 선경과 승민 두 작가는 상징적인 글귀로 입간판을 만들어 새우고 마을 지킴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현수막과 다양한 상징물을 만들어 왔다. 이번 전시에 ‘구럼비 매몰지’라는 입간판을 새롭게 제작해 전시했다. ‘구럼비를 지켜라’라는 천에 바느질한 작품을 재현했다.

강정의 국제연대를 이어가는 최성희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최성희는 구럼비를 넘보는 공사 차량들을 막기 위해 진입로에 돌과 현수막 등으로 바리케이드가 만들어지던 때 ‘썩은 낭(나무)’에 피켓을 만들던 폼보드를 잘라 연산호를 표현했다. 길에서 주운 것, 남아 있는 쪼가리도 모두 예술의 재료가 되곤 했던 구럼비에서의 나날을 잘 표현하는 작품으로 이것 역시 재현되어 전시중이다. 또한 수감중에 그린 그림 역시 전시중이다. 감옥에서 쓰는 편지지에 그곳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한정된 색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그린 그림은 당시의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방사탑도 재현했다. 돌을 들어 옮기고 쌓는 모든 과정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마음과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과 몸을 모아야만 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해군기지 반대 투쟁 3995일 되던 2018년 4월 24일 성미산학교 친구들과 강정지킴이들이 방사탑을 재현했다.

그리고 2011년부터 강정에서 상주하기 시작한 문정현 신부는 매일 미사와 더불어 나무판에 글씨를 세기는 서각을 통해 강정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현해 왔다. 투쟁의 현장 곳곳에는 2011부터 만들어온 100개가 넘는 서각작품이 세워졌고 공동 식당인 할망물 식당에도 약 70여점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보아라’라는 주제로 전시중이다.

대만에서 온 왕 에밀리는 ‘내가 4·3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면’이라는 주제로 유화 작품을 내 놓았다. 그녀는 군함을 바라보면 4·3 때 제주인들을 학살한 군사주의가 떠오른다며, “감히 4·3의 아픔을 치유한다면, 당시 목숨을 잃은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를 강정에 오게 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

나일론 그물에 천으로 바느질한 ‘강정은 4·3이다’라는 작품은 모습이 디자인하고 강정지킴이 15명이 함께 참여한 대형 현수막으로 4·3이 끝난 것이 아니라 강정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음을 외친다. 국가폭력의 종식을 위한 국가의 성찰이 없는 한 4·3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고 강정은 말한다.

강정에서 현장을 지키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작한 설치물은 말풍선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전시되고 있다. 정보를 알리거나, 구호를 적거나, 그림을 그리며 올레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제주의 바람과 햇살에 낡고 허술하게 변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이 자리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2011년 9월 구럼비가 봉쇄 되면서 많은 예술품들은 그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음을 기억한다. 많은 작가들의 예술의 원천이 되었던 강정과 그곳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 4000일을 기억하며 도내에서 그리고 전국에서 구럼비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28일 토요일 강정해군기지 정문 쪽에서 진행된 문화제에서는 강정과 연관된 다양한 행위예술, 이야기, 노래와 시낭송, 공연으로 이어졌다. 4000일이란 시간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강정해군기지반대투쟁은 여러 가지로 곱씹어 생각할 것이 많다. 전국 어디에 이렇게 긴 시간 연대가 지속되는 지역의 현안 문제가 있을까 싶다. 2011년경 폭발적으로 일어난 강정에 대한 연대는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비폭력 저항과 공동식사는 강정의 이야기를 지속하는 힘이다. 아침 7시 백배, 11시 생명평화미사, 12시 인간띠잇기로 이어지는 활동은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매일 지속되고 있다.

‘할망물식당’에서의 점심식사는 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공동식당이다. 강정을 기억하는 후원의 힘으로 꾸려지는 식탁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10여개의 다양한 모임들은 투쟁을 더욱 활기차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들은 평화교육, 마을안내와 여행, 지킴이지원, 홍보, 연구, 후원물품 판매, 신문제작, 국제연대, 해양감시, 기지감시, 책방, 갤러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정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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