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강병철/ 제주국제대학교 특임교수, 국제정치학 박사

주가 경험하였던 비극적인 제주 4·3을 제노사이드(Genocide) 범죄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제주 4·3은 제노사이드(Genocide) 범죄보다는 오히려 민간인학살(democide)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제노사이드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협약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국가폭력에 희생되는 민간인들을 처벌 범주에서 많은 경우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제노사이드는 국제정치의 산물로 협상과정을 거치면서 그 범주가 축소되었으며 모든 민간인 학살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협상의 주체였던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에게 학살의 책임을 묻는 것을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보통 제노사이드를 언급하게 되면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떠올리게 된다. 그 어떤 제노사이드도 홀로코스트처럼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거나 문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남기며 연구 분석을 하는 것은 제노사이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제노사이드를 방지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에서 제노사이드를 예방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스탈린은 히틀러보다도 더 많은 대량학살을 자행했는데, 1930년대에 스탈린의 공산당과 붉은 군대는 대숙청을 감행하여 많은 사람들을 강제노동, 처형, 구금 등을 시키며 정화를 했다. 전직 소련물리학자였던 반체제 인사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에 의하면, 120만의 공산당원이 1936년에서 1939년까지 체포되어 숙청되었다. 이는 소련공산당 총인원의 반수였다. 5만 명이 석방되었고 60만이 총살되었고 나머지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

대숙청 이전에도 소련 농업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시도된 집결화 운동으로 대략 7백만이나 되는 농민이 의도적인 기아로 사망했다. 굴락(GULAG)이라고 부르는 집단노동수용소에서 많은 수가 죽었는데, 그들의 죽음은 공적인 비밀로 취급되었다. 민스크(Minsk)시의 외곽에는 1980년대까지 숨겨져 왔던 합동묘지가 있다. 스탈린의 통치시기에 민스크 시는 인구가 거의 백만에 이르렀는데, 스탈린정권은 공동묘지에 이십만 명을 묻을 정도의 죄목을 날조해 냈다. 1924년에서 1953년까지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대략 이천만 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택동의 중국정권은 더 심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이라고 알려진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의 혼란 속에서 2백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해됐으며, 모택동이 1949-1976년까지 집권하는 동안에 2천7백만 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치즘이나 마르크스-레닌이즘만 20세기에 자행된 무자비한 학살을 자기합리화 시킨 것은 아니다.

사담후세인이 신봉했던 무신론적인 범아랍 이데올로기인 바티즘(Baathism)도 이라크의 쿠르드족을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 시켰으며, 1980년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에서 수만 명의 선량한 사람들이 공산게릴라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추정 하에 마구 살해됐다.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에서 9천명이 공산주의자로 의심받고 납치 살해되었다. 그 폭력의 통치는 ‘더러운 전쟁’이라고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 말 몇 달 동안에 8만에서 백만 이상이 살해되었다. 20세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민간인학살(democid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루돌프 럼멜(Rudolph Rummel) 교수는 1900년에서 1988년까지 1억 7천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추정한다.

제주가 경험하였던 비극인 제주 4·3은 과연 제노사이드 범죄인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제주 4·3은 제노사이드 범죄로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제노사이드 범죄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은 1948년 12월 9일 UN 총회 결의안으로 채택되어 1951년부터 효력이 발효되고 있다. 제노사이드 범죄의 처벌과 예방에 관한 협약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를 금지하고 있으며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협약 제2조는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을 위해 제노사이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제 2조

본 협약에서 규정하는 인종 학살은 국가적, 민족적, 인종적 혹은 종교적 집단을 파괴할 목적으로 전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자행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다음과 같다.

(a) 한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는 행위

(b) 한 집단의 구성원에게 심각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

(c) 한 집단의 전체적 혹은 부분적인 파괴를 목적으로 집단의 생활 조건에 고의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

(d) 한 집단의 출산을 막기 위한 의도적인 조치를 강요하는 행위

(e) 한 집단의 어린이들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로 이주시키는 행위.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 협약을 채택하던 당시 스탈린이 통치하던 소련의 대표는 제노사이드 협약의 협상과정에서 정치적 집단과 사회경제적 집단을 제외하도록 하기 위하여 애를 썼다. 소련 대표와 동조하는 각국의 주요 대표들은 정치적인 집단과 사회경제적인 집단은 법률적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제노사이드의 범주에서 제외하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제노사이드의 범주에는 서로 다른 인종 간의 학살이거나 특정 종교인들을 말살하려는 의도로 자행되지 않은 학살이 아닌 경우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주 4·3은 루돌프 럼멜(Rudolph Rummel)교수의 민간인학살(democide)의 범주에는 들어가지만 제노사이드(Genocide) 범주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학살범죄를 방지하고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고 까다롭다. 민간인들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의 반인륜적 범죄를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는 ‘세계평화의 섬’으로 2005년 1월 27일에 공식 지정되었다.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대량학살의 경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들은 이러한 대량학살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의 정신과 평화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제주도민들은 갈등을 평화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다양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지금도 세계는 제노사이드의 공포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 제노사이드적인 만행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로 국제법정에 제소하지는 않았지만 경고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제주도민들은 평화의 섬이라는 의미와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학살을 방지하고 인도적 지원을 하는 데 노력과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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