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영철/ 한솔제지 퇴직. 트레킹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완주/ 저서 4권/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영국을 걷다/ 투르 드 몽블랑

시골 읍내가 언제부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덜떨어진 놈이….”

사람들 서넛 이상 모인 자리는 여지없이 누군가를 향한 성토장이 되어갔다. 얼마 전부터 주변 여기저기 낙서가 늘었기 때문이다. 골목 담벼락이나 대문, 길가 전봇대나 세워둔 트럭 등이 너저분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덜 다니는 한적한 곳이 범행(?) 대상이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성토는 하면서도 사람들은 궁금해졌다. 낙서를 한 ‘놈’이 누군지 보다는 낙서된 ‘년’이 어느 집 딸인지 그게 더 궁금했다. 크레용으로 여자 이름 하나만 반복해서 쓰였기 때문이다. ‘선영아 사랑해’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낙서의 이름만으론 촌스럽고 볼품없는 시골 처녀가 연상된다. 조잡한 글씨체로 보아 초등학교나 나왔을까 싶은 무지렁이 총각일 것이다.

“용기 없으면 짝사랑을 말아야제, 요따구로 읍내 미관 흐려놓으면 어떻게 해?”

혀를 차던 아낙들이 급기야 파출소로 몰려갔다. 범인 잡아서 낙서 중지시켜야지 뭐하고 있냐고 따져들었다. 조용한 읍내에 접수되기론 꽤 큰 사건(?)이었다. 파출소장의 범인색출 엄명이 떨어졌다. 한가하던 순경들이 한껏 긴장된 표정들을 지어 보이며 수시로 읍내 순찰에 나섰다.

며칠 뒤 해 질 무렵, 운 좋은 신참 순경의 눈에 범행현장이 포착되었다. 멀리 골목 어귀에서 자그마한 누군가가 담벼락에 낙서를 하곤 태연하게 자리를 뜬다. 주변을 경계하는 조심성 따윈 없어 보인다. 파출소에 읍내 사람들 민원이 접수됐다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순경이 급히 뒤따라가 현행범 뒷덜미를 거칠게 낚아챘다. 키는 좀 컸지만 어린 꼬마였다.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됐을까. 깜짝 놀라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얼핏 보이곤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당황한 순경이 아이 뒷덜미 붙잡은 손을 얼른 내렸다. 잠시 후 긴장이 풀린 순경이 토닥토닥 아이를 달래며 파출소로 데려갔다. 그 모습을 본 상가 아낙 둘이 궁금해 하며 파출소로 따라 들어왔다. 이 동네에선 보지 못했던 낯선 아이, 울음은 그쳤지만 겁에 질려 몸만 떨고 앉아 있다. 이런 무서운 상황은 처음이었을 게다.

“누구 이름이야?”

아이 다독이느라 범인 심문을 잊어버린 순경을 대신하여 아낙이 물었다.

“……”

아이가 묵묵부답이자 순경이 거들었다.

“괜찮아 얘야. 그 낙서에 쓴 이름, 누구니?”

머뭇거리던 아이 입에서 모기소리가 새어나왔다.

“우리 엄마요.”

“엄마?”

“......”

“엄마 이름을 왜?"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순경이 아이 입 쪽으로 귀를 바짝 갖다 댄다.

다소 진정된 아이가 고개 수그려 옹알거리긴 했지만 말은 잘 이어가는 모양이다.

순경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잠시 뒤 순경이 일어서며 동료와 아낙들에게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옆 마을 외진 곳에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대요. 엄마가 많이 아파서 오랫동안 누워만 있답니다. 아픈 사람 이름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불러주면 아픈 게 낫는다네요. 얘가 읽은 동화책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자기 엄마 이름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불러줄 거라 믿고 얘가 그런 낙서를…….”

아낙이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멍하다가는,

“세상에…” 하고 탄식을 쏟으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자, 얘야.”

순경이 웃으며 아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아이는 안심한 표정으로 따라 일어섰다.

인근 문방구로 향해 가며 순경이 아이에게 말했다.

“그동안 크레용 많이 썼지? 아저씨가 새 거 한 다스 사줄게.

스케치북도 사줄 테니까 앞으로는 거기에다 엄마 얼굴을 예쁘게 그려봐.”

좀솜Jomsom에는 사흘을 머물렀다.

’금단의 땅‘ 또는 ’은둔의 땅‘이라 불리면서 티베트 고원에 면해 있는 무스탕Mustang 현의 수도 마을이다. 안나푸르나 서킷을 나처럼 좀솜에서 마치는 트레커들이 많다. 포카라로 내려가는 항공편도 운영되고 대중교통도 이곳부터 다양하기 때문이다.

지근지근했던 두통은 밤사이 말끔히 씻겼다. 해발 5,416미터 쏘롱라에서 이곳 1,900미터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고산병과는 확실히 결별한 것이다. 어제 어두워질 무렵 좀솜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뻗어 잠들었다. 죽은 듯 자다가 오늘 한낮에 눈을 떴고, 숙소 식당까지 기어나가 야채 죽 한 그릇 겨우 비우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들었다. 그리곤 이제 밤 9시에 눈을 떴으니 장장 24시간 넘게 잠든 거였다.

힘은 없었으나 머리는 맑고 몸도 개운하다. 비로소 텅 빈 공복감이 느껴지고 식욕도 당긴다. 고산병에 시달리느라 거의 이틀 반 동안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다행스럽게 숙소 식당은 아직 불이 켜져 있다. 구운 닭고기 한 마리를 주문했다. 혼자 먹기엔 좀 많은 양이지만 남기면 된다. 푸짐하게 뭔가를 뱃속에 채워 넣는 게 급선무다. 지난 십여 일 동안 소진되어 고갈된 체력을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

밤 아홉시 넘은 늦은 시각, 식당은 텅 비었고 주방 앞자리에 두 사람만 보인다. 어제 체크인할 때 카운터에서 본 여주인이 어떤 꼬마와 마주 앉아 있다. 스테이크를 잘게 잘라 포크로 아이 입에 먹여주곤 지긋이 아이 얼굴을 바라보곤 한다. 땟국에 절은 옷차림이나 오래 안 씻은 머리 꼴로 보아 이 집 아들은 아닌 것 같다. 여주인이 고기를 먹여주며 다감하게 뭔가를 얘기해보기도 하지만, 아이는 듣는지 마는지 고개 숙여 덥석덥석 받아먹고만 있다.

내가 주문한 닭고기 요리를 웨이터가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는다. 꼬마 아이가 누군지 그에게 물었다. 동네 아이란다. 변두리 오두막집 꼬마인데 부모 없이 오랫동안 할머니하고만 살아왔다고 한다. 6개월 전에 할머니가 지병이 심해져 쓰러지면서 방에 누워만 있게 되었다. 아이가 동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잔심부름도 해주고 음식을 구걸해 할머니를 먹여 살렸다고 한다. 아이가 할머니를 모시는 지극정성이 온 마을에 소문이 났었고,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마을 사람들 인심도 아주 후했던 모양이다.

일주일 전에 아이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식 이후론 동네 돌아다니며 음식 구걸하는 꼬마의 모습이 거의 안 보였던 모양이다. 한동안 잠시 아이를 잊고 있던 저 여주인이 오늘 갑자기 아이 생각이 났는가 보다. 아까 해질 무렵 부랴부랴 아이 집으로 가봤고, 침침한 방 안에 멍하니 혼자 대책 없이 누워 있는 꼬마를 데려다가 저렇게 한 끼 먹여주는 거였다. 오늘 밤엔 집에 안 보내고 여기서 목욕시키고 재워줄 모양이다.

내 앞에 놓인 닭고기는 반도 못 먹고 남겼다. 아까 주문할 때의 식욕과 의욕은 어디로 갔는지 기름진 고기는 금세 물렸다. 맥주 두 병 덕택에 그 정도라도 먹을 수 있었을 게다. 먹는 내내 맞은편 아이 얼굴에 눈길이 갔다. 아이 앞에 있던 스테이크 접시는 깨끗이 비워졌다. 여주인이 일어서며, 내 맞은편에 앉아 노닥거리던 웨이터를 손짓해 불렀다. 잠시 후 아이는 웨이터 손에 이끌려 나갔다. 목욕 시키러 가는 모양이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가여운 네팔 아이가 몇 년 전의 내 기억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출근길에 운전하며 들었던 MBC 라디오 ’시선집중‘이었다. 연말연시 어려운 사람들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어떤 순경과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시골 읍내에 자기 엄마 이름을 마구 낙서하고 다녔던 아이의 사연이 순경을 통하여 소개됐었다.

동네 사람들이 자기 낙서를 보며 엄마 이름을 많이 불러주면 엄마의 병이 나을 거라 믿었던 그 아이. 파출소 옆 문방구에서 크레용 한 다스와 스케치북을 순경에게 선물 받았던 그 아이.

열시 반쯤 방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경비행기를 타고 따뜻한 포카라로 내려간다. 카트만두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호젓할 것으로 기대되는 호반도시다.

침대에 누웠으나 눈만 말똥말똥할 뿐 도대체 잠이 올 기미가 없다. 지난 24시간 동안 그렇게 곯아떨어졌으니 다시 쉽게 잠이 올 리가 없는 것이다. 좀솜에서의 마지막 밤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닮은 처지의 두 아이 이미지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까 식당에서의 그 고아 아이는 지금쯤 곤히 잠들었을 것이다. 모처럼 배불리 먹고 안락한 잠자리에서 저세상 할머니와 만나 부둥켜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렇다 치고 내일부터 아이의 일상은 어떻게 되는 건가?

시골 읍내에서 엄마 이름을 낙서하고 다녔던 그 아이는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그동안 순경 아저씨가 사준 스케치북에 엄마의 얼굴을 열심히 그렸을 것이다.

엄마의 병은 좀 나았을까?.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듯 내 여행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두 꼬마 아이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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