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훈] 웃음과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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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웃음과 울음
  •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6.19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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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이 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도 한다. 이런 말이 그럴듯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 몸이 증명해 주지만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 웃음이 어떻게 좋은지 알아보자.

우리 몸에는 자연 살생(NK: Natural Killer) 세포가 있는데 암세포를 파괴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웃으면 이 세포의 활동이 활발해질뿐더러 그 수가 알아보게 늘어난다. 그러므로 웃음은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 또 웃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현격하게 줄인다. 웃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게 바로 이런 작용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는 꼭 웃겨서만이 아니라 일부러 또는 억지로 웃어도 나타난다니 신기하다. 웃는 데 동원되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뇌에 영향을 미쳐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웃음은 또 얼굴뿐만 아니라 몸의 근육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하여 운동과 마찬가지의 효과가 있다. 흔히, 크게 웃으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평소에 가만 있던 근육을 쓰기 때문이다. ‘배꼽이 빠진다’ '요절복통', '포복절도' 같은 말들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웃음이 몸에만 좋은 것은 아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지는 못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좋게 하는 데도 웃음이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웃음은 이렇게 전염성이 크다.

이렇게 웃음은 우리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런 기능은 웃음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문학 갈래인 희극에서 잘 발휘된다. 이 극에서 기계적인 인물이나 편집광은 조롱거리가 된다. 이들은 과거 관습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려고 하면서 새것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거나 금지한다. 이런 태도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엉뚱한 것으로 보인다.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엉뚱함,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웃음의 핵심적인 원천이다. 웃기는 얘기에 바보가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희극은 웃음거리가 된 인물이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 끝난다. 결말에 많이 나오는 잔치는 이런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웃음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웃음이 이상과 어긋나는 것들을 거기에 어울리도록 치료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을 적용하면, 웃음이라는 자연 살생 세포가 암세포인 완고한 태도를 파괴하는 셈이다.

웃음을 결정짓는 것은 입이다.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면 웃는 얼굴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입꼬리가 조금 밑으로 내려가 있어 평소에 무겁게 보인다. 신경을 쓰고 마음을 졸여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른다. 20세기의 역사만 보아도 식민지 경험, 분단, 전쟁 등 결코 웃을 수 없는 굵직굵직한 일로 점철되어 있다. 요즘에도 아이들 교육, 환경, 일자리, 대북 문제 등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늘 무겁고 어둡게 살 수는 없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웃음의 시간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마음이 가벼워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가 마주치는 대상에 대하여 방심한 듯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좀 어려운 말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희극 배우가 내 가족이면 마냥 웃기는 어렵다. 어느 순간에 문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저렇게 웃기려 애쓰는 것이 눈물겨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거리가 가까워서 내 문제로 느끼게 되면 진지하고 심각하고 따라서 무거워진다.

바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무조건 많이 크게 웃자. 여유로운 마음으로 입꼬리를 위로 올리는 연습도 해 볼 만하다. 자꾸 하다 보면 저절로 웃는 얼굴이 된다니 무슨 일에서든 연습이 완벽하게 만든다는 말이 통하는 것 같다. 거울을 보며 ‘김치’라고 소리 내 보자. 기분이 어떤가?

그런데 울음도 웃음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좋다. 웃음이 그렇다는 거야 얼른 수긍이 가지만 울음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만 더 살펴보면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슬퍼서 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슬픔은 우리 삶이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솔직한 인정,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깊은 공감은 대개 눈물과 울음을 불러온다. 그래서 실컷 울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속상해서 우는 것도 처음에는 앞의 것과는 다르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탐욕을 비우고 남 탓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울음의 일반적인 성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기뻐도 눈물을 흘린다. 슬픔과는 반대로 이상과 함께하면 기쁘다. 웃음과 감동의 눈물이 따른다. 그런데 이 눈물에는 이상적인 상태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고통스러웠던 일에 대한 슬픔의 감정도 들어 있다. 경기에서 우승하여 시상대에 오른 운동선수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눈물을 보면 이 기쁨과 슬픔이 늘 반대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상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겉보기와는 달리,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슬픔을 거쳐야 비로소 참다운 기쁨에 이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속 시원하게 잘 웃거나 울자면 앞에서 말했듯이 마음을 비우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눈앞의 일에만 집착해서 다른 데를 보지 못하거나 꿈꾸지 못하면 마음과 몸이 무거워져서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 앞에서 본 대로, 새로운 사태를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 관습에 기계적으로 사로잡힌 사람이 못난이로 대접받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계는 정해진 대로만 움직인다. 그런데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어 먹는 수가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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