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 논쟁이 벌어졌다. 예멘 난민 문제 때문이다. 그동안 난민 문제는 유럽의 것으로 생각하며, 간 건너 불처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이 그리고 무비자 입국 제도 덕분에 제주가 난민들의 선호 대상이 된다는 것이기에, 이는 일견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난민이 되기보다 난민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는 게 훨씬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이번 기회에 치열한 논쟁을 거쳐 제주의 미래에서 난민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지혜를 모아 가는 것이다.

엊그제 주말에 예멘 난민 수용을 두고 서울과 제주에서 찬반집회가 열렸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역동적인가 하면 21세기 참여민주주의의 시험대인 듯싶기도 하다. 사실 돌이켜 보면 예멘 난민 이전에도 우리는 가난하고 실패한 국가로 지칭되는 나라로부터 온 이주민에 대해 무시와 배척을 자주 보여 왔다. 난민 인정율이 4.1%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여기에는 다문화로 지칭되는 이들 외국인 이주민들이 혹 반만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의 신화와 단일문화를 위협하고 한민족 공동체의 정체성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민들은 몇 년전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유입되면서 경험했던 각자 나름의 불쾌한 기억들을 나누고 공유하다보니 배타적이 되고 말았다. 오랜 기간 ‘육지 것’이라며 외부에 배타적이었던 제주도민들이 최근 수 십년간 국제관광지로 돈 버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는 ‘육지 것’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은 그런대로 잘 극복해 나가고는 있다. 그러나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만만치 않게 도사리고 있어, 난민 문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피부색과 언어, 종교, 관습, 생활방식이 다른 외국 사람을 그냥 같이 더불어 살아가자며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게 제주에 와서 돈 쓰는 관광객이 아니고 돈이 들어간다고 보는 난민이라면 더욱 더 손익 계산이 분주해지게 마련이다.

난민 수용 문제를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준거하여 포용하자고 주창하는 것은 윤리적-종교적-휴머니즘적 차원에서는 지당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가의 정책적 접근 찾기일 것이다. 인권이든 박애든 휴머니즘이든 그런 보편적 가치를 그대로 적용되기가 쉽지 않은 우리네 삶의 현실에 대해서 보다 치밀하게 왜 그런지를 찾아 나서는 공동체의 집단적 지성이 요청된다.

장기적 집단지성으로 난민 수용 문제를 논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예멘 난민 수용 문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은 법무부에서 난민 심사를 엄격히 하여 난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하겠다고 한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2013년 아시아 최초로 제정된 난민법에 따라 행정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라면, 주말 집회까지 열면서 찬반 논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예멘 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정보의 공개가 필요해 보인다. 정보가 많고 객관적일수록 해법 찾기는 그만큼 쉬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난민 포함 다문화의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이득과 손실도 가감 없이 적극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예멘 난민 수용 문제는 제주사회의 미래 찾기에 대한 하나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2005년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 받았고 또 늦었을 때가 빠른 때라며 2015년 제주도의회가 인권조례까지 지정한 제주특별자치도이다. 이참에 제주도정이 그리고 제주시민사회가 보다 더 자주 다문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또 보다 더 객관적인 정보 제공에 나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당장 발 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측면에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난민 심사를 받는 6-8개월 동안 난민도 먹고 자고 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루 종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혹 질환이 있으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단 몇 개월이라도 제주에 체류하는 동안 무언가 배우고 싶고 일하고 싶어 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냥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제주도정에 한시적으로 난민대응팀을 신속히 꾸려, 난민 심사가 끝날 때까지 작지만 용기있는 포용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486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어떤 경위로 제주를 찾아온 지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렵사리 제주를 찾아온 난민들에게 제주가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은 그런 곳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인권조례가 도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장기적 대처의 하나로, 제주도에도 상시 운영되는 ‘난민보살핌센타’(가칭)를 확보하는 건 어떤지 하는 생각이다. 이번 예멘 난민의 경우 말고도 앞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난민 신청을 해 오는 외국인들이 점증하리라 예상된다. 이건 세계화와 국제자유도시 추진 상 불가피한 것이기에 마냥 손 놓을 수만은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런 저런 경로로 제주에 들어오는 난민 신청자에게 난민 심사가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기거하면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제주도민의 불안감도 조금은 덜어질 수 있고, 또 서로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에서 조금씩 상호 경험을 공유하면서 인권이라는 보편과 제주도민의 삶이라는 특수 사이에서 무언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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