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백승주 박사/ 서귀포시 대정읍 출신으로 재경 대정포럼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 지방자치법학연구회장과 C&C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 내전으로 곤욕을 치르다가 국외로 탈출 후 주로 제3국(말레시아)을 경유하여 제주도에 당도한 5백여 명의 예멘인들이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물론 행정이 적기에 온당한 조치를 취하지 못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이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크게 부상한 측면이 매우 강하다. 그동안 이들의 제주 체류가 장기간 지속되어 왔음에도 정부 또는 제주도 차원에서 어떤 합리적이고 주도면밀한 행정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방치됐다가 그 논란이 키워졌다는 점에서 안이하게 대처한 당국은 이에 대한 국민적 비난으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법령상 그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더한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지사는 한 중앙언론과의 인터뷰에서“북한에서 탈북자들이 내려온다면 받아야겠지만 이유야 어떻든 예멘인이나 시리아인이 제주도로 들어온 것은 순전히 제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난민들이 갔으니 개개의 지방정부나 국가가 이들을 다 맡아라’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우리도 예전에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갔던 사람들인데 피난 온 사람들을 박대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 “최소한의 난민규약에 따라 중앙정부와 협력해서 가급적 원만하게 대처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 인터뷰가 어쩌면 전도유망한 도지사가에 득보다는 오히려 책임 회피 행정수장, 비(非)보편적 인권주의자,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 내지는 다문화불신주의자 등으로 비쳐질 개연성을 키웠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더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유엔 인권선언을 존중해 왔다. 2016년에는 유엔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및 ‘난민 지위에 관한 1967년 의정서’에 따라 ‘난민법(難民法)’을 제정하여 난민문제를 합리적이며 주도면밀하게 다루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특히 이 법에서 난민에 대한 개념정의를 내리고 있다.

즉,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외국인(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우리나라에 입국하기 전에 거주한 제3국(상주국(常駐國)이라 한다)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무국적자인 외국인’을 난민(難民)으로 개념정의 했다.

그렇다면 최근 주로 ‘무사입국증’ 제도에 편승하여 제주에 안착한 것으로 알려진 예멘인들에 대한 난민신청 및 그 인정 논란여부가 크게 부각되는 마당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각자의 관점에 따라 기대가능하고 시의적절한 방안 또는 대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차제에 예멘사태가 문제가 되었음을 기화로 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다문화에 대한 공론화를 서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우리나라도 한민족 운운하는 획일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서 인구학적 차원에서 다민족·다인종 국가공동체 구상이 일반적인 대세임을 감안하여 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지구촌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저출산·고령화를 대비하여야 한다는 국가적 당위성에 비추어서 그렇기 때문이다.

과거 선대나 현재의 기성세대의 시각이나 관점에서 벗어나서 미래를 책임져 나갈 청·장년세대 층의 시각이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공론의 주제는 1980년대 미국에서 논쟁거리가 되었던 것처럼 한국 또는 제주의 ‘다문화주의(多文化主義)’ 기정사실화에 대한 논쟁거리였으면 한다.

미국은 건국초기부터 주로 유럽지역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였다. 그런 미국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국가의 정체성 퇴보에 대안 마련 과정에서 다문화주의가 주요 논쟁거리로 부상한 바 있다. 사실 미국 독립과정에서는 물론 그 이후 백인 색채가 농후한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다문화주의 논쟁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지배적인 남성 위주의 유럽문화가 미국 공동체를 압도함으로써 그 논쟁 자체가 크게 부각되지 못한 측면이 강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다문화주의 논쟁이 크게 먹혀들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급기야는 이처럼 애매모호한 시대가 지나고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발전과 더불어 ‘미국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거나 그 차이를 열린 마음으로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감수성을 배양하고 더 나아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국가공동체 활동’으로서의 다문화주의 활동이 크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즉, 그동안 지속된 백인 남성의 지배를 종결짓고, 여태껏 소외당하거나 주변에 위치한 다른 집단의 정체성, 특히 여성과 유색인종의 정체성을 존중하며 그들의 문화가 독자적으로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인정하는 논쟁이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르러서 인구학적으로 미국의 인구 구성 비율에서 유색인종의 그것이 차지하는 규모가 크게 돋보이면서부터는 그 논쟁 자체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시 다문화주의 논쟁에 반대의사를 분명이 했던 ‘허쉬’ 등은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 사회의 근간을 파괴할 수 있는 폭탄을 받아든 것과 다르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문화주의를 기정사실화 한다면 그 보완책으로써 미국 문화의 동질성에 입각한 교양교육의 강화할 것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필자가 알기로는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기 일보 직전이다. 특히 읍면지역의 경우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관광지 특성상 자영업 등을 위하여 제주로 최근에 유입된 청장년층의 분포로 인하여 다소 통계상 그 정도가 낮게 보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한민족에 의한 평화통일을 선점하는 것 이외는 이렇다할 인구학적 이슈를 드러내 놓지 않고 있다. 다만 결혼에 의한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책만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제주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본의 아니게 스스로 키웠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둘째, 현행 외국인 출입국 관련법령들에 대하여는 진지한 고민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행 난민법에 따르면,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으로써 누구든지 난민인정을 받으려 하는 사람은 법무부장관에게 난민인정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실무적으로는 외국인 본인이 ‘난민인정신청서식’에 ‘여권 또는 외국인등록증(이를 제시할 수 없는 경우 그 사유서)와 난민 인정 심사에 참고가 될 만한 문서 등 자료가 있는 경우 그 자료를 첨부하여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에게 제출하여 심사받을 수 있다.

이에 따른 대우 조치로는 우선 절차를 마무리한 난민인정 신청을 한 사람은 난민인정 여부에 관한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그 절차가 종결될 때까지) 우리나라에 체류할 수 있는 특전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난민인정 신청을 한 사람 중 특정 난민 신청자를 제외하고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생계비 등 지원, 주거시설의 지원, 의료지원, 교육의 보장 등의 대우 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 난민신청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진 사람(난민으로 인정된 자)은 다른 법률규정에도 불구하고 ‘난민협약’에 따른 처우를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이와 관련하여 난민의 처우에 관한 정책의 수립·시행, 관계 법령의 정비, 관계 부처 등에 대한 지원,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이들은 또한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사회보장, 기초생활보장, 교육의 보장, 사회적응교육, 학력인정, 자격인정 등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인도적 체류가 허용된 외국인의 경우도 예외적으로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취업활동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현행 난민법은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과 난민에 해당하지 아니하지만 고문 등의 비인도적인 처우나 처벌 또는 그 밖의 상황으로 인하여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외국인으로서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체류허가를 받은 외국인 및 난민인정신청자, 즉 우리나라에 난민인정을 신청한 외국인으로서 난민인정 신청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인 사람. 난민불인정결정이나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의 기각결정을 받고 이의신청의 제기기간이나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의 제기기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행정심판 또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사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에 대하여는 어떤 경우이든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난민협약(제33조) 및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거나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에 따라 강제로 송환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셋째, 출입국관리법상 특례조항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행 출입국 관리법(제7조)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외국인이 입국할 때에는 유효한 여권과 법무부장관이 발급한 사증(査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재입국허가를 받은 사람 또는 재입국허가가 면제된 사람으로서 그 허가 또는 면제받은 기간이 끝나기 전에 입국하는 사람, 대한민국과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협정에 따라 면제대상이 되는 사람. 국제친선, 관광 또는 대한민국의 이익 등을 위하여 입국하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따로 입국허가를 받은 사람(외국정부 또는 국제기구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부득이한 사유로 사증을 가지지 아니하고 입국하려는 사람,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기간(90일) 내에 대한민국을 관광하거나 통과할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사람 등), 난민 여행증명서를 발급받고 출국한 후 그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입국하는 사람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은 사증 없이 입국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서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재검토의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넷째, 난민신청만 하면 최장 5년까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한 현행 법령상 난민 운용제도의 맹점이나 돈벌이 수단이 될 것으로 예단되는 위탁사무관리 재도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이런 제도를 악용한 브로커들의 농간이 심해질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되는 상황을 불식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더 나아가 행정의 본분은 무엇인지 되새겨 봤으면 한다. 왜냐하면 '진짜 난민'을 인류애의 보편적 차원에서 보듬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행정이 허술한 관련 제도들을 바로 잡고 집행하는 것만이 그 실효성을 배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제 치하 만주와 간도를 떠돌았던 우리 선조들, 제주4.3사건 당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밀항했던 우리 선대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피난민들 등도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마찬가지로 응당 '난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대통령 선친께서는 한국전쟁 중 흥남부두를 거쳐 부산에 내려와 정착했다. 제 선친께서도 4.3때 ‘머구리선’ 배창에 처절하게 숨어서 일본에 밀항하여 생명을 부지하여 제주에 오셔서 저를 나 이렇게 길러주셨다. 현재 북한 탈북자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 선대의 비극적인 사례들에 비춰서 시대착오적으로 다소는 고정관념으로 비쳐지는 혐오·종교문제·일자리 강탈 등의 문제를 내세워 외국인 또는 난민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건 온당치 않아 보인다. 평화주의·인도주의·박애주의적인 사고의 발로에서는 더욱 그런 감을 지울 수 없다. 정치적 또는 행정적 이슈 차원에서 보다는 인간적 또는 인류적 차원에서 부드럽게 접근함이 절실해 보인다.

굳이 바라건대는 기존 국가 공동체 또는 제주 공동체 구성원과 외국인 또는 난민 간에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한 공론화의 장을 마련한 후에 행정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들을 일사불란하게 취해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국가 공동체든 아니면 제주 공동체이든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엄격한 제도 하에서 선별적으로 받아들인 난민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에 국가 또는 제주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손해 막심한 불이익을 가증시킬 것이라는 예단은 전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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