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영철/ 한솔제지 퇴직. 트레킹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완주/ 저서 4권/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영국을 걷다/ 투르 드 몽블랑

내 얘기 한번 들어봐.

그냥 일상의 싱거운 이야기이긴 해.

하지만 나에겐 특별한 날이었지.

새벽 4시 반에 일어났어. 간밤에 일찍 자서 알람 벨소리 한 번에 눈이 뜨였지 뭐야. 세수만 대충하고 반바지 차림에 운동화 신고 집을 나왔어. 작은 배낭 속엔 생수 두 병과 과일 세 알 그리고 과자 세 봉지가 들었지. 하루 간식거리로는 충분한 거야.

한여름 새벽은 날이 일찍 밝잖아. 안양천변을 잠시 걷다가 학의천으로 꺾었어. 학의천은 안양천의 지류야. 동쪽으로 천변을 거슬러 올라가면 발원지인 의왕 백운호수에 닿지. 십여 년 전만 해도 하천 주변이 너저분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아주 쾌적해졌어.

아침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 맑은 숨소리까지, 모든 게 너무 좋았어. 정말 오랜 만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던 거야. 인덕원역 바로 옆인 벌말오거리 다리 아래를 지나고 얼마 후 천변을 벗어나니 차가 많은 안양판교로 앞이야. 잠시 섰다가 길 건너에 보이는 식당 두 개 중 차 많이 세워진 곳으로 들어갔지. 순대와 머리 고기가 들어 있는 콩나물 해장국을 한 그릇 싹 비웠지 뭐야. 아침 식사를 그리 맛있게 먹은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없어.

감동해서 눈물 날 지경이었지.

식당을 나와 안양판교로를 따라 걷다가 청계사 가는 왼쪽 길로 들어섰어. 시간은 일곱 시, 남들은 출근을 서두를 때인데 나만 이리 행복해도 되는 건지 괜스레 미안해지더군. 옥박골 사거리에서 호젓한 전원주택 골목으로 들어서면 잠시 후 산길로 이어져. 오르막이 시작되는 거지. 금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했지만 흙길이 워낙 푹신해서 기분은 끝내줬어.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매봉전망대에 도착했어. 산길에선 한 명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곳엔 꽤 많이 모여 있더군. 과천에서 올라오는 길이 여기서 만나기 때문이야. 관악산과 과천 일대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지. 사람들이 땀을 닦거나 간식을 먹으며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들 보니 나도 덩달아 더 기분이 좋아졌어.

휴가 하루 내길 참 잘 했구나, 의자에 앉아 사과를 깎아 먹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지. 나에겐 휴식이 필요했던 거야. 요즈음, 아침에 눈 뜨면 출근할 생각에 너무 끔찍했지. 이불 속에서 마냥 뭉그적거리다 겨우겨우 일어나길 벌써 두 달째였어.

오래 전, 과장 시절에도 한동안 그랬던 적이 있었지. 서너 달인가 그랬던 기억이 나. 낯선 부서로 인사발령이 나고 얼마 후부터였을 거야. 상사가 유독 나만 미워한다는 생각, 노련한 대리에게 내가 치이고 있다는 강박에 머리가 쪼개질 지경이었어. 겉으론 멀쩡했겠지만 속으론 늘 초조했고 가슴이 답답했지. 불면도 심했고 아침 눈 뜰 때의 이불 속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어.

근데 얼마쯤 지나며 어느 날 문득 보니 그런 증상이 없어진 거야. 별다른 해결책이나 돌파구가 있었던 것도 아녔어. 그냥 시간이 해결해준 모양이야. 그런 스트레스가 대책 없이 오래 가면 사람이 이상해지고 심각한 지경까지 갈 수 있는 거였어.

그때와 비슷한 유형의 스트레스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다시 나를 찾아와 괴롭히고 있었던 거야. 과장 시절 그때의 스트레스는 누군가가 바늘로 내 가슴을 콕콕 찔러대는 그런 고통이었어. 이번 것은 커다란 바위 밑에 깔린 듯 묵직한 중압감에 늘 숨이 막히는 그런 거였지.

이런저런 옛일들 돌이켜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만경대까지 훌쩍 올라와 있었지 뭐야. 잠시 한숨 돌리며 올라온 길 뒤돌아봤지. 청계사와 이어지는 두 번째 갈림길 지날 때가 제일 힘들었어. 짧지만 해발 400미터에서 500미터까지 올라서는 급격한 오르막 구간이지. 여기 오르는 누구나 다 거기서 힘들게 느낄 거야. 그 지점이 가장 가파르잖아.

예전 같으면 이수봉 쪽으로 쭉 갔다가 옛골로 내려와 점심 먹고 집으로 갔을 거야. 헌데 오늘은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거 같았어. 그래 정상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거지. 만경대가 청계산 정상이잖아. 이상하게도 힘들단 느낌은 별로 없었어. 막바지 오르막 지점에서도 여전히 힘이 넘쳐나고 신났어.

회사에 있었다면 그 시간 겉으로야 멀쩡했겠지만 속으로는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진 상태였겠지. 과장 때 몇 개월 스트레스 겪던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긴 해. 이번 경우는 연말에 회사에서 잘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해진 거 같애. 허긴, 임원 승진되고 5년 뒤부터 매년 반복되던 상황이라 새삼스러운 건 아녔지.

그래도 이번엔 상황이 많이 안 좋았어. 판매 실적이 예년보다 너무 저조했던 거야. 불리한 상황에 몰리니까 상사와 부하들 모두가 적으로 느껴지는 거 있잖아. 이번 연말 되면 잘리고 나갈 임원으로 주변 모두에게 취급당하는 엿 같은 기분.

하루 휴가 내고 청계산 오른 것뿐인데 어쩜 이렇게도 해방된 기분일까?

매일 반복되던 그 묵직한 압박감은 어디 가고 이렇게도 개운할까?

만경대에서 내려오는 길은 옛골 쪽으로도 내려가고 원터골 쪽으로도 갈 수 있잖아. 두 방향 다 마다하고 그냥 직진으로 계속 능선을 탔어. 오늘은 예전과는 뭔가 다르고 싶다는 마음이 만경대로 향할 때부터 있었던 게야.

한 번도 안 가본 옥녀봉을 넘어서 완만하게 하산하다 보니 어느새 양재 화물터미널로 내려섰어. 쉬지도 않고 곧바로 차량 많은 도로를 따라 선바위역 쪽으로 향해 걸었지. 여름 한낮의 아스팔트길이라 조금 전까지의 산길과는 천양지차더군. 평소 같으면 거의 탈진 상태였을 텐데 이상하고 묘한 에너지가 계속 느껴지는 거야.

오늘 하루의 계획을 바꾸기로 했어. 새벽에 집을 나설 때 마음은 이랬지. 청계산 이수봉까지 올랐다가 옛골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양재 쪽이건 성남 쪽이건 마음 내키는 대로 발 가는 대로 막 걷다가, 지치면 아무 데서나 대중교통 이용해 집으로 돌아오는 거였거든. 그랬던 것이 옥녀봉 지나 내려오면서 멀지 않은 우면산 마저 정복하는 걸로 마음을 바꾼 거지 뭐야. 하루에 산 두 개를 이어서 올랐던 적은 나에겐 없었거든.

한여름 햇볕이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어. 지나는 차량들 매연과 함께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투지가 막 솟잖아. 선바위역에서 우면산 오르는 길을 찾느라 좀 왔다 갔다 했어. 골목을 헤매다가 주택가 담벼락 그늘에 앉아 잠시 졸았지. 사과와 비스킷을 함께 먹다가 덜 삼키고 입에 문 채 그냥 잠이 들었나봐. 지나는 사람들이 보고 웃었을 거야.

우면산은 청계산 높이의 절반도 안 되잖아. 정상까지는 아녔지만 산길을 아무렇게나 막 걷다 보니 약수터가 나오더군. 약수터 의자에 앉아 남은 간식 마저 먹고, 다시 한 시간 가량을 다리 쭉 뻗고 푹 잤어. 한여름 숲속 매미소리가 그렇게 기분 좋은 자장가가 되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지 뭐야.

꿈도 꿨어.

직장 상사와 부하들 여럿이 꿈에 나왔었는데 개꿈이었는지 깨고 나니 내용이 뿌옇기만 해. 내가 많이 쫒기고 공격당하는 상황 같았어. 유쾌한 꿈이 아녔던 것만은 분명해.

그러나 이상도 하지. 회사일 찜찜한 꿈이었는데도 깨고 나니 그냥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거야. 궁지에 몰리거나 고민이 많을 때 술 많이 취하면 그럴 때가 있잖아. ‘그따위 별일도 아닌 거 가지고 내가 왜?’ 하며 갑자기 대범해지는 경우, 많잖아. 물론 술기운에 그런 거고, 술 깨고 나면 도로 나무아미타불이지만 말이야.

그러나 그때 우면산에서 잠 깨고 나서는, 정신 맑고 또렷한 상태에서 그런 자신감이 생긴 거야.

‘별 거 아녔어. 사람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그런…….’

우면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이유 없이 그냥 가벼워졌지.

정말 기분 좋게 타박타박 걷다보니 남부순환도로에 내려섰더라구. 사당역 쪽으로 향했지. 큰 도로라 차량도 많고 번잡했지만 뭔가 좋은 일이 나에게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어. 사당역 주변에는 식당들이 많잖아. 삼계탕 한 그릇과 맥주 두 병을 천천히 기분 좋게 먹고 마셨어.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당연히 나른해졌겠지. 처음엔 4호선 타고 그냥 집으로 갈 생각이었어. 근데 먹고 배부르니 욕심이 생기는 거야. 그럴 때 가끔 있잖아. 뭔가를 했는데 어떤 신기한 느낌이 들어, 그러면 다시 한 번 더 해서 그 느낌을 굳히고 싶어지잖아.

내친 김에 관악산 연주대까지 정복해보기로 마음먹었어.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였고 스틱도 없는 게 좀 꺼림칙하긴 했어. 관악산은 바위가 많아 청계산보단 좀 험하잖아. 사당 쪽에서 오르는 코스는 더 그렇지.

그러나 어때? 여름철 낮 시간은 길잖아. 천천히, 쉬엄쉬엄, 기어가듯 올라보는 거지 뭐. 하루에 수도권 산 세 개를 연이어 넘는 나만의 대기록을 오늘, 세워보는 거야.

그러면 지난 두어 달 동안 나를 억눌러온 스트레스에서도 확실히 벗어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어. 우면산 약수터에서 낮잠 깨었을 때부터 그런 해방의 징조를 느꼈던 게지. 그날 아침 일어날 때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어.

마라톤 용어에 러너스하이Runner‘s High란 게 있잖아. 마라토너들이 42킬로미터 풀코스를 뛸 때, 처음 30분 동안이 가장 고통스럽대. 그러나 그 시간만 잘 참아내면 이후부터는 그냥 무념무상으로 달릴 수 있다고 하지. 그때부터 은근히 찾아오는 희열과 쾌감을 일컬어 러너스하이라고 하잖아. 나에게 그날은 우면산 정상에 올랐던 그 순간이 러너스하이 기점이었던 것 같애.

선바위역 주택가 담벼락에 쓰러져 앉을 때는 힘이 꽤 들었나 봐. 간식 먹다가 삼키지도 않은 채 잠들었으니 말 다했지. 그리고 일어나선 진짜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우면산에 올랐던 거였어.

오후 4시 가까워지는 시간에 사당역 삼계탕 집을 나왔어. 관음사로 올라서 정말 기어가듯 연주대까지 정복했지. 나 스스로 얼마나 대견했겠어. 연주대에 앉아 가족과 지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지. 누군가에게 막 자랑질을 하고 싶었던 거야. 용케 시간이 된 지인들 다섯과 하산 장소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먹기로 전화약속을 했어.

그리곤 꾸역꾸역 하산을 시작했지. 팔봉능선을 타며 간이 콩알만 해지고 어찌어찌 서울대 수목원까지 기어서 내려왔어. 그리곤 아직도 날 밝은 여름날 저녁 8시 반이었어. 안양예술공원 약속된 식당에 지인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지. 이산가족 상봉하듯 만나곤 성대한 축하를 받았지 뭐야. 동트는 새벽에 집 나와서 열네 시간 동안 산 3개를 넘으며 40km를 걸었으니 충분히 축하받을 만했지.

십여 년 전 어느 여름날 하루의 추억이야.

그날 이후의 회사 생활이 칼로 두부 베듯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그날이 어떤 분수령이 되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벽면 수행하던 스님에게 득도의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잖아. 형언할 수 없는 깨우침과 함께 마음의 평온이 밀려올 거라 짐작돼.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그 여름날 하루에 뚜렷하진 않지만 어떤 ’자각‘이 있었던 거 같아. 멀리 걷는 게 내 체질과 잘 맞는다는 걸 확인한 기점의 날이기도 하지. 퇴직하고 인생 후반을 도보여행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십여 년 전 그날이 있었기 때문이야.

실망했지?

뭔가 대단한 반전이나 감동의 스토리가 있을 거라 기대했을 거야.

인생의 큰 변화라는 건 이런 소소하고 평범한 경험이나 자각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그런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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