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명의 <오늘의 시조시인회의>의 회원들이 쓴 제주해녀 시조집 "해양문화의 꽃, 해녀"는 137편이라는 작품 숫자에도 압도당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더욱 그랬다.

주제 하나를 정해 놓고 많은 작품들을 한곳에 나열했을 때, 각자가 쓴 작품이지만 본의 아닌 결과로서 재탕, 삼탕과 같은 인상을 주는 작품들이 겹칠 때가 많다.

특히 "해녀"라는 상징성 속에서는 작품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서러워할 것 같은 숨비소리, 태왁, 망사리, 물숨, 불턱, 상군, 중군, 하군, 어멍, 할망, 할망바당, 전복, 구쟁기, 미역 등은 물론 4.3까지 차례를 기다린다.

여러 문학의 장르 중에서도 가장 절제된 언어 구사가 요구되는 시조에, 의무처럼 이러한 단어들을 삽입해야 할 해녀의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구(詩句) 속에 137편의 작품은 표현 방법과 의미가 달라서 필자는 신선한 즐거움 속에서 읽었다. 이러한 감상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수준 높은 해녀 전문 시집을 필자는 처음 읽었는데 약간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오늘의 시조시인회의>의 오승철 의장은 이 시집의 "여는 글"에서  "회원들의 '해녀' 관련 시편들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시집의 제호도 '해양문화의 꽃, 해녀'로 정했습니다."

"이는 세계인들의 눈에 비친 해녀의 모습을 지칭한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를 2016년 11월 30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이에 화답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순이 시인은 <제주해녀는 세계 최강이다.>라는 이 시집의 '발문' 속에, "제주여성이 이룩한 인류의 문화유산" "불턱에서 길러지는 빛나는 공동체 정신 "목숨 걸고 왜놈들에게 저항" "할망바당, 학교바당, 이장바당" "친정집보다 고마운 바다, 그러나 무서운 바다" "제주바다가 일구어낸 자연과의 공존 지혜"라는 항목 속에서 해녀예찬론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할망바당은 당연하다고 생각할런지 몰라도 "학교바당" "이장바당"은 처음 알았고 가슴 찡했다. 성산읍 온평리에는 "학교바당"이 있었다. 6.25가 일어났던 1950년 12월 24일 , 온평초등학교의 교실이 화재로 전부 타버렸다.

이 마을 해녀들은 해산물이 가장 풍부한 바다의 한 구역을 지정, 거기서 나오는 해산물 판매대금 전부를 교실 짓기에 기부했다. 이 기부는 교실이 모두 재건되는 10여년 동안 계속됐다. 이를 기리는 해녀공로비가 1961년 온평초등학교에 세워졌다. 

오승철 의장과 김순이 시인은 해녀의 삶과 숭고한 정신을 아주 높게 평가하는데 작품 속의 해녀상은 "연민의 정"으로 가득차고 넘쳐흐른다. 고귀한 연민의 정이 아니고 삶에 지친 숙명적인 안쓰러움에서 오는 동정적인 의미의 "연민의 정"이다.

필자는 상반된 이 개념에서 가끔 부조리를 느끼곤 한다. 현대과학의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선에서 떠난 우주비행사들이 우주 유영 속에 작업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해녀들이 오버랩된다.

해녀들의 바다에서 태왁이라는 모선(母船)을 떠나 해산물을 캐는 바다 속의 유영과 우주비행사들의 우주 유영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의 최고 수준 속의 우주비행사의 유영과 태초 때부터의 원시 모습 그대로 전혀 과학의 힘을 빌지않고 작업을 하는 해녀의 유영은 언제나 필자를 숙연케 한다.

우주비행사와 해녀의 대비는 무리가 있을런지 몰라도 필자는 해녀의 그 경이로움을 새롭게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녀에 대한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양문화의 꽃, 해녀" 시집 속에서 다 좋은 작품이지만 밝은 작품 4편을 소개한다.

박지현의 <집 한 채>이다.

집 한 채

집 한 채 걸어가네
누런 띠줄 동여맨
태왁망사리 등짐 진 내 어머니 걸어가네
한사코
그 몸짓임을 저 바다는 알고 있네

불턱에 모인 몸들
세찬 물결 감추네
검정 물옷 속내가 다 해지고 부르터도
솟구친
숨비소리는 보름달로 떠오르네


다음은 서일옥의 <해녀, 어머니>이다.

해녀, 어머니

그녀의 이름은 위대한 어머니였다

이승과 저승 사이 숨비소리 띄워놓고

목숨값 벌어오는 날 걸음이 가벼웠다

화닥화닥 아픈 상처 검버섯 바람 흔적

늘어 난 주름살도 일생의 훈장이라며

유채꽃 노란빛으로 환히 웃던 그 할망

다음은 우은숙의 <오토바이 탄 그녀>이다.

오토바이 탄 그녀

동백꽃 뒤로 밀자 태왁이 꽃이 된다

그녀의 칠십 물길도 봄 닿자 환해 진다

빨간색 오토바이는 길 위에서 꽃이 된다

주저 없이 내닫는 가파른 생의 꽃자리

먼 기억 폭죽 터진 물구슬 파편 사이로

오늘은 망사리 가득 첫사랑을 담고 달린다

다음은 추창호의 <해녀>이다.

해녀

바다는 여전히 침묵에 잠겨있다

그 침묵의 성을 여는
천사의 숨비소리

비릿한
하루치 행복
숨 가쁘게 걷어 올린다

위의 4편은 제주 출신이 아닌 육지 시인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열악한 환경 속에 중노동이라는 해녀의 시를 일방적인 "연민의 정"을 탈피하여 밝은 시선으로 전개해 나갔다.
 
지난 6월에 제주에서 '오늘의 시조시인회의'와 '아시아 퍼식픽해양문화연구원'과 합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한다.

다음 시 두편은 이 세미나를 주최한 오승철 당회 의장과 김진숙 사무처장의 시를 소개한다.
김진숙의 <숨1>이다.

숨1

순비기 질긴 심줄로 배운 것이 물질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끊어질 듯 넘어갈 듯 
물숨을 이기고 돌아온 자맥질이 아득해

마음 다 쏟아놓으니 가난도 가벼운걸
세상이 바다였고 바다가 전부였던
고모님 태왁망사리 물고 가는 새떼여

'밥'이라 크게 쓰고 '숨'이라 뱉어본다
바다의 법을 따라 죽어야 다시 사는
이만한 세상 없더라, 하늘도 바다더라


다음은 오승철의 <그리운 붉바리>이다.

그리운 붉바리

파장 무렵 오일장 같은
고향에 와 투표했네
수백 년 팽나무 곁에 함께 늙은 마을회관
더러는 이승을 뜨듯 주섬주섬 돌아서네.
돌아서네 주섬주섬
저 처연한 숨비소리
살짝 번진 치매낀가 어느 해녀 숨비소리
방에서 자맥질하는 그 이마를 짚어보네.

작살로 쏜 붉바리 푸들락 도망친다고
팔순 어머닌 자꾸
허공을 겨냥하지만
결국은 민망해져서 피식 웃을뿐이지만
어디로 갔을까 몽고 반점 그 고기는
마지막 제의:祭儀이듯 물질을 끝냈을 때
한 생애 땟국 같은 일 초경처럼 치른 저녁 노을
 

김진숙의 <숨1>의 시에서 "고모님 태왁망사리"가 나온다. 시어 속의 '고모님'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기보다 신선했다. 이 시집 속에 '이모님'과 '며느리'라는 단어도 한 차례씩 나왔었다. 같이 한집에서 살았는지 몰라도 시민권을 얻은 단어들이 넘쳐나는 "해녀"의 시 속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오승철의 <그리운 붉바리>에서는 그의 독특한 시어들이 그야말로 붉바리처럼 퍼득거렸다.
파장 무렵 오일장 같은/ 고향에 와 투표했네/ 수백 년 팽나무 곁에 함께 늙은 마을회관/(중략)
마지막 제의이듯 물질을 끝냈을 때/ 한 생애 땟국 같은 일 초경처럼 치른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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