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사는 중국인들은 큰 관심대상이 되지 못해왔다. 중국인의 이미지도 좋지 않고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쉽사리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서귀포시 동홍동에 위치한 제주헬스케어타운의 중국인들이 수 차례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제주헬스타운의 콘도미니엄을 건설하고 관리하는 녹지그룹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자는 중국인들이 사는 콘도미니엄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헬스케어타운 콘도미니엄 전경@사진 김관모 기자

◎주택인 줄 알았더니 콘도이용권?...“중국에서는 생소한 개념”

헬스케어타운에는 일명 '투자이민제'로 제주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0년 투자이민제를 도입하면서, 투자진흥지구의 휴양체류시설(콘도미니엄)에 5억원 이상 투자한 외국인에게 거주 비자를 발급해 주고 5년 후 영주권(F-5)을 주고 있다.

이 계획과 맞물려 2009년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서귀포시 동홍동의 153만9,013㎡ 부지에 관광단지 조성을 시작했다. 이후 JDC는 2011년 녹지그룹과 투자유치를 맺었고, 2014년 8월 1단계 사업으로 400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콘도미니엄이 들어섰다.

헬스케어타운 주민자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양병영 씨(중국, 56)도 이 투자이민제로 헬스케어타운 콘도미니엄을 분양했다. 양병영 씨는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제주도로 옮겨 새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분양받은 일이 도리어 큰 재앙이 되고 말았다.

처음 양 씨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막 입주했을 때 다른 사람의 살림살이가 집에 놓여있는 걸 발견하고부터였다. 

"집에 처음 들어왔는데 다른 사람의 빨래가 있는 거예요. 그냥 이상하게만 생각했는데, 어이없는 일이 이어졌어요. 집에 있는 가재도구들을 바꾸거나 치울 수 없다는 거예요. 집에 들어왔을 때 소파나 의자, TV, 부엌의 조리도구가 있었는데 이것들을 우리 마음대로 옮길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들을 옮기려면 반드시 녹지에게 사전에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거죠."

▲양병영 씨가 거주하고 있는 헬스케어타운 콘도미니엄 내부의 모습. 안에 있는 소파나 의자, 가구들은 녹지의 소유여서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다고 한다.@사진 김관모 기자
▲양병영 씨가 거주하고 있는 헬스케어타운 콘도미니엄 내부의 모습. 양병영 씨의 가족 중 한 사람이 TV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TV 채널도 몇 개밖에 열려있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사진 김관모 기자

그제야 양 씨는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변호사를 구해 녹지와 맺은 계약서를 살펴본 결과 자신들이 계약한 것은 아파트 분양이 아니라 콘도 이용권.

이에 양병연 씨는 콘도미니엄에 입주한 주민들과 함께 녹지를 상대로 사기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녹지와의 계약은 중국법이 아닌 한국법에 따른 것이다. 결국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결정했다. 이에 한국법을 거의 알지 못했던 양병연씨와 다른 입주자들은 3,4년째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콘도는 휴양형도가공우(休養型度假公寓)로 표현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게다가 녹지는 계약서에 도가공우(度假公寓)라고 적시한 뒤 이후 약칭으로 '공우'로만 표기했어요. 중국에서 '공우'는 ‘아파트’ 개념으로 씁니다. 중국사람들은 한국처럼 부동산계약이 복잡하지 않아요. 그런 맹점을 이용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 집 들어가는데 녹지 허락 맡아야...“마음대로 직원이 방을 넘나들어”

콘도미니엄 C동에 입주한 중국인 류 씨도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류 씨는 지난해 C동에 6억여 원에 2개의 집을 계약하고 입주했다. 류 씨는 아내와 두 명의 자녀를 데리고 제주에 왔다. 아이들을 제주국제학교에 입학시키고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C동에 입주한 류 씨도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입주한 곳이 주택이 아니라 콘도라는 것. 따라서 류 씨는 365일 중에 120일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3일 전에 녹지에 전화해서 언제까지 지내겠다고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류씨가 자신의 집에 묵기 위해서 녹지에 사전 예약하는 문자내용. 이렇게 하지
않으면 류 씨는 자기 집이지만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사진 김관모 기자

"한번은 친구의 집에서 놀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직원이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았다'며 집에 들어가는 카드키를 줄 수 없다는 거예요. 저는 집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프론트에서 카드키를 받아서 들어가야 해요. 제 집이지만 마음대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고, 집의 아무것도 건드릴 수 없어요."

게다가 더 기막힌 것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직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업무를 본다는 것. 이날 류 씨와 함께 집 안에 들어갔을 때 류 씨는 자기 집에 있는 에어컨을 가리키면서 "누군가가 들어와서 손을 대고 갔다"고 말했다. 에어콘 뚜껑이 열려있고 누군가가 수리한 흔적도 보였다.

류 씨는 제주에서 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아내와 아이들을 캐나다로 보내고 자신만 제주에 남아 영주권 얻기만 기다리고 있다. 류 씨는 집에 들어가 살 수 없기 때문에 대정읍에서 살고 있는 동생 집에서 묵고 있다.

▲류 씨가 자기 방의 에어컨 뚜껑이 열려진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류 씨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집에 들어와 작업을 한 흔적을 자주 발견한다고 말했다.@사진 김관모 기자

◎들어오자마자 누수와 고장...편의점도 2~3km나 떨어진 유령도시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현재 헬스케어타운은 2단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사드 여파를 겪으면서 녹지는 헬스케어타운 공사를 멈춘 상태다. 그러다보니 녹지는 타운 거주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부대시설조차 만들지 않고 있다. 언제 다시 물어봐도 정확한 일정마저 주지 않고 있눈 실정이라고.

가장 큰 문제는 헬스케어타운에 마트가 없다는 점이다. 양병영 씨는 마트를 마련해달라고 녹지에 요구하자 녹지는 마지못해 타운 입구에 마트를 지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마트는 문을 닫았고, 기본적인 먹거리나 용품만 살 수 있는 구멍가게만 관리실 입구에 설치했다.

▲거주민들의 요구로 녹지가 만든 마트의 모습.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다.@사진 김관모 기자
▲마트 입구에 붙여진 공고문의 모습. 주민들은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 공고문마저 없었다고 말했다.@사진 김관모 기자

거주자들은 생필품을 사려면 3km 떨어진 마트까지 나가야 하며, 편의점도 2km나 떨어져 있다. 대중버스도 작년에서야 개통돼 그동안 거주민들은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다른 부대시설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양병영 씨는 "처음 녹지는 이곳에 오면 야외수영장이나 스크린골프장, 사우나, 휘트니스센터 등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고 했지만 현실은 처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야외수영장은 길이 4~5미터, 폭 2미터, 깊이 1미터 정도의 욕조 수준이었으며, 그나마 2시간 전에 예약을 해야만 한다. 스크린골프장도 있지만 고장이 잦고 이용이 불편해 사실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사우나도 4~5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작은 규모였으며, 샤워실도 동네 목욕탕보다 작아 열악한 상태였다. 

▲400세대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야외수영장의 모습.@사진 김관모 기자
▲헬스케어타운에 마련된 사우나의 모습. 4~5명이 들어가면 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모습이었다.@사진 김관모 기자

녹지측에서 탁구장도 마련했지만, 탁구장의 바닥이 너무 미끄럽고 높이가 낮아서 아무도 탁구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거주민들은 말했다. 

또한, 부실공사도 심각한 상황이다. 콘도미니엄 옥상에는 인터넷이나 일부 전기 사용에만 사용되는 태양광발전기가 있었지만 주변 바닥이나 벽이 훼손이 심했다. 게다가 방에는 바닥의 마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쉽게 일어나고 벽이 갈라지는 등 관리 부실이 심각했다.

양 씨는 집에 들어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벽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의 문도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아 바람이 불면 문과 문지방이 부딪히는 소리가 심해 아예 방문을 열어놓고 지낸다. 또한 베란다는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바닥이 부식된 곳도 많았다.

최근에는 현관의 인터폰이 고장났지만 관리실에 이야기를 해도 몇 달 째 고쳐주지 않고 방치했다고 한다.

▲양방연 씨가 자신의 집의 바닥을 보여주고 있다. 바닥이 들뜨고 망가진 상태였다.@사진 김관모 기자
▲콘도미니엄 옥상의 모습. 태양열발전기는 유명무실한 상태이며, 천장은 심하게 금이가고 페인트도 모두 벗겨진 상태@사진 김관모 기자
▲양방연 씨 콘도의 베란다 모습.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고 항상 바닥에 고여있어
바닥이 망가진 모습@사진 김관모 기자

◎"계약상 문제 없다. 회사와 개인이 풀 문제" VS "녹지가 하는 부동산 사업 바로 봐야"

제주도정도 이같은 문제를 접한지는 오래 됐다. 하지만 실제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 도정의 입장이다. 서귀포시의 한 관계자는 "중국 투자이민자들의 문제로 도정에서 세밀하게 조사를 벌였지만 애초 법과 규정에 따라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절차 자체는 하자가 없었다"며 "계약을 맺을 때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JDC도 "분양계약서는 이미 도정과 검토를 마친 내용이어서 문제가 없으며, 녹지 자체를 관리 감독할 권한은 없다"고 답했다. JDC의 한 관계자는 "녹지에서 콘도미니엄을 계속 공지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처음부터 그것을 목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라며 "분양이나 홍보 과정에서 이뤄난 일은 녹지와 중국인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JDC가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JDC도 단지사업 시행자로서의 역할도 있어서 이 문제를 신중히 접근하려 하고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JDC의 관계자는 "지금 녹지의 헬스케어타운 사업이 멈춰있는 것도 문제의 한 원인"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사업이 빨리 시작되어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양병영 씨는 현장 문제를 제대로 알고 녹지의 현 모습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왜 제주도에 중국 투자이민자들이 들어오지 않는지 제주도청이 제대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투자이민이라는 정책을 만들어 놓고 그저 방치당하고 있어요. 도청이 실제 녹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조사에 착수해야 합니다."

▲헬스케어타운 콘도미니엄의 전경@사진 김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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