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작 영화 '야키니쿠 드래곤' 포스터
"나는 이 동네가 싫다. 그리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싫다." 혼자 중얼거리면서 학교 다니는 중학교 1학년의 도키오는 자기 집 앞 지붕에 사다리 타고 올라 사방을 살피는 것이 하나의 일상이다.
 
지붕에서 바라보는 주위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판잣집 투성이다. 잡초가 우거진 강둑 저편에는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 서있고, 가까운 거리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모습과 고음은 압도적이다.   
 
모두가 가난하면서도 오손도손 사는 이 동네의 땅은 모두 국유지였다. 당국에서 보면 불법 거주자들이지만 이들은 일본인 브로커들에게 땅 값을 정식으로 지불하이고 살고 있었다. 브로커의 불볍매매였다.
 
1969년 봄, 도키오가 중학교 1학년 입학한 때는 일본의 고도성장기 가도를 고속도로처럼 달리던 시대였다. 다음 해인 70년 세계만국박람회가 오사카에서 열리는 해여서 오사카는 더욱 들뜨고 있었다.
 
그러나 오사카 이다미국제공항 바로 옆에 있는 재일동포 밀집지인 이 부락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동네에서  불고기(야키니쿠) 가게 "야키니쿠 드래곤"을 경영하는 김 용일과 마누라 순영, 장녀 시즈카, 2녀 리카, 3녀 미카, 중학교 1학년 막내 아들인 도키오가 같이 살고 있었다.
 
주인 이름 김용일의 용(龍)자에서 따낸 가게 이름 "야키니쿠 드래곤"이 영화의 주무대이다. 2녀 미카가 어릴 적부터 잘 아는 철남이와 결혼 피로연을 위해 준비하는데 혼인 신고하러 갔던 철남이가 담당직원의 불친절로 화가 나서 혼인신청서를 찢어버렸다고 한다.
 
사실은 철남이는 2녀 리카보다 장녀 시즈카를 좋아 했었다. 어린 학창시절, 밤에 둘이서 이다미공항의 뚫어진 철조망으로 몰래 들어가서 비행기를 보다가 시즈카는 경비견에 물려 오른쪽 무릎에 큰 상처를 입고 절름거린다.
 
서로 좋아 하지만 시즈카는 불구라는 컴플렉스 속에 철남이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2녀 리카와의 결혼을 축하한다. 리카는 혼인 신고 때, 철남의 행동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아직도 언니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일도 제대로 않는 그와 사사건건 충돌한다.
 
3녀 미카는 가수 지망생으로 캬바레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곳에서 처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상대방이 이혼을 하고 미카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미카와 함께 집에 찾아와서 사정하는데도 어머니 영순은 악을 쓰며 반대하지만 남편의 논리적이고 따뜻한 위로의 말에 마지못해 허락한다.
 
장녀 시즈카는 한국에서 온 윤대수의 따뜻함에 이끌려서 결혼까지 생각하는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철남이의 순수한 고백에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리카와 이혼하여 철남이와 맺어진다.
 
리카는 철남이가 자기를 향하지 않고 언제나 언니 시즈카에게 마음이 가 있는 그에게 환멸과 동정 속에 그녀 역시 한국에서 온 오일백과 맺어진다. 
 
차별 받는 일본사회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제대로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자기 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는 김용일은 아들 도키오를 사립학교에 보냈다.
 
그 학교에서 도키오는 왕따를 당하고 학교를 제대로 안 다녀서 진급을 못하고, 공립을 추천하는 선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년을 하다가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일본 전쟁터에 나갔다가 어깨로부터 왼팔을 날려버린 김용일은 전쟁이 끝나자 먼저 죽은 마누라 사이에 난 딸, 시즈카와 리카를 데리고 고향 제주에 귀국할려다가  4.3사건이 일어나서 그냥 일본에 살게 되었다.
 
때를 같이 해서 제주에서 4.3으로 가족들을 잃은 영순은 딸, 미카를 데리고 일본에 피신 와서 살다가 김용일과 결혼하였다. 서로 재혼 관계이며 이 사이에 난 아들이 도키오인데 서로의 유일한 피붙이인 도키오가 죽었다.
 
무너질 것 같은 가정 붕괴가 이를 계기로 가족의 끈끈함이 더욱 두터워진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다름없는 일상 속에서도 조금씩 변화고 있었다. 국유지인 이 동네가 강제성을 띈 철거로 부락이 사라지게 되었다.
 
1970년 만국박람회가 끝나고 1971년 2년만의 봄이 왔다. 그 동안 리카와의 갈등과 일본사회에 대한 불만 속에 북한(북송)에 가겠다고 신청했던 철남은 시즈카와 같이 북한으로 떠나는 날이 왔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리카 역시 오일백과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일본을 떠나는 날이었다. 미카는 만삭이 된 몸으로 남편과 찾아왔다. 
 
이 날 식구들은 모두  '야키니쿠 드래곤'에 모였다. 부모형제 모두가 서로의 미래의 이야기를 나누고 행복을 기원하면서 따뜻한 포옹 속에 헤어진다.
 
남았던 김용일과 영순 부부는 리어커에 살림살이를 싣고 둥네를 떠날 때, 그 동안 가까스로 지탱했던 '야키니쿠 드래곤' 판잣집이 무너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막이 내리면서 죽은 도키오의 네레션이 흘러나온다. "이 동네가 싫다고 했다. 사람도 싫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동네를 좋아 했으며, 사람들도 좋아 했었다." 역설적인 도키오의 가족 사랑, 동네 사랑의 독백이었다.
 
이 영화를 한국에서 나고 자라난 감독이 만들었다면 어쩌면 과장된 연출이었다고  지적을 받았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은 일본 연극계의 중진으로서 이름이 알려진 정의신(61) 동포이다.
 
10년 전 2008년, 동명의 연극, 자신의 원작 '야키니쿠 드래곤"은 그 해 일본연극상을 거의 독차지할 정도로 알려진 극이었다. 이것을 원작, 각본, 감독 1인 3역 속에 10년이 지난 올해 영화화 했다.
 
자신도 국유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영화는 물론 연극의 극단 속에서 활동하면서 1993년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의 각본으로 알려진 정의신 감독의 작품으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재일을 잘 아는 그였다. 
 
한.일합작인 '야키니쿠 드래곤' 영화에 한국 배우는 김용일 역에 김상호, 영순 역에 이정은, 윤대수 역에 한동규, 오일백 역에 임희철, 일본에서는 철남 역에 오이즈미요오, 시즈카 역에 마키요오코, 리카 역에 이노우에마오, 미카 역에 사쿠라바나나미로서, 오이즈미, 마키, 이노우에는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주연상의 배우들이었다. 
 
부부역을 맡은 한국 배우 김상호의 부드러우면서도 패기에 넘친 열연과 어머니역을 맡고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력과 직설적인 언어 표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정은은 장면들을 압도했다.
 
본능의 감정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고 그것이 습관화 되어, 일상이 돼버린 일본인의 행동이 미덕으로 알려진 현실 속에, 이정은의 감정 표현의 연기는 찜통 같은 무더위 속에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청량감을 주었다. 
 
이 영화에서는 4.3에 대해 자세히 안 나왔기 때문에 일본의 시청자들에게는 잘 모르겠지만, 4.3과 1971년에 북송을 택한 장녀 시즈카 부부, 한국으로 귀국한 2녀 리카 부부를 오늘의 시선으로 주시할 때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으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영화는 "재일 제주인"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당시 재일동포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동포사회의 응축된 축소판이고 현실이었다. 한.일 양국어가 교차되어 자막까지 나오는 장면들에 한.일 배우들이 생소한 언어 구사의 연기력은 신선했다. 
 
욕심을 부린다면 제주 출신으로서 부부 역을 맡은 김상호와 이은정이 한국어 표준어가 아니고 제주 사투리를 구사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것은 필자만이 갖고 있는 욕심일런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매주 금요일 석간에 화제의 영화들의 기사를 게재한다. 6월 22일부터 개봉한 '야키니쿠 드래곤'은 영화 기사만이 아니고, 요미우리신문은 정의신 감독의 인터뷰 기사까지 게재할 정도로 화제작으로 등장했다.
 
왜 화제작이 되는가? 그것은 재일동포사회가 안고 있는 일본 국내의 사회성이다. 역사인식의 운운을 떠나 지금도 재일동포사회는 역사인식이 아닌 현실을 식민지 종주국에서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각국의 TV에서는 주인공 철남 역을 맡은 오이즈미요오가 방송 출연해서 선전을 했었으며, 한국에서는 지난 5월 3일 "전주국제영화제" 10일간 축제 개막식에서 상영되었다.
 
오사카 민단본부에서도 이 영화보기 운동을 전개하여 본부 임원들이 찬조금을 내어 단원들에게 입장권의 절반 이하로 판매하여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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