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영수/ 제주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후 전업소설가로 활동 중

제주신화와 그리스신화를 남녀 간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비교해본 나는 음악 속의 문학인 오페라 스토리에 나타난 사랑다툼까지 비교대상에 넣어보고 싶었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오페라 대본을 보면, 그 당시 교양인 집단의 취향과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오페라 대본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테마나 소재를 기반으로 하게 마련이고, 그 나라에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나 전설, 명작 스토리를 각색한 경우가 많다. 17세기 이후 재산과 교양, 지식을 두루 갖춘 신흥 부르주아계급의 출현과 더불어 발전한 오페라는 이들 근대 유럽사회의 실질적인 주도집단이 어떤 취향이었는지를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2천 개가 넘는다는 오페라 작품들 중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1백 편 정도의 명작 오페라 대본들 요지를 일 삼아 검토해 본 결과 알게 된 것은, 오페라 스토리는 그 절대다수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이고, 그 중에 많은 것이 삼각관계의 사랑 드라마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막연히 짐작했던 대로였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인간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남녀 간의 사랑이고, 오페라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은 사랑 에너지의 알 수 없는 근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페라 대본에 나타나는 삼각관계의 러브스토리가 제주신화나 그리스신화에서 크게 다른 점은 그 가운데 여자 두 사람이 나오는 삼각관계의 유형은 극히 소수이고 남자 두 사람이 나오는 삼각관계의 유형이 절대다수라는 것이다. 다수의 남자들이 여자 한 사람을 두고 다투는 스토리 구성은, 중세 이후 유럽사회의 남성우위 문화가 표출된 것이라 생각된다. 남자 주인공이 하나만 나오는 제주신화의 삼각관계는 여성우위 풍속의 표출이다. 이에 반해 남녀 간의 삼각관계에서 남자주인공이 하나인 것과 여자주인공이 하나인 것이 모두 나오는 그리스신화는, 여성우위의 세계창조 단계에서 남성우위 경향인 고대 영웅시대로 이어진 유럽신화의 발전 추세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여러 남성들이 한 여성을 놓고 사랑 다툼을 벌이는 러브스토리의 전형을 찾아본다면, 중세 유럽의 한 국왕이 천하의 용장들에게 공개 무술시합을 벌이도록 하고 이와 같은 무술시합의 승리자를 공주의 배필로 삼는다는 스토리가 아닐까 한다.

한 여자의 사랑을 놓고 다투는 두 남자의 승패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에 따라서 오페라 대본의 테마가 달라질 것이다. 남자의 세속적인 성공보다 순수한 사랑이 여성의 선택을 받는 스토리라야 아름다운 아리아곡과 어울릴 것이다. 순간적인 재치나 우연한 행운에 의해 남녀간 사랑의 성패가 결정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희극적인 분위기가 될 것이 아닌가.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파멸로 끝나는 러브스토리가 명작 오페라 대본의 대종이라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으로 남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아름다운 비탄으로 미화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따르면, 훌륭한 비극은 연민과 공포의 정서를 통하여 관객의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비장미가 느껴지는 오페라의 장엄비극이 바로 그런 예가 될 것 같다.

베르디의 <아이다>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이 비참을 극한 결말로 이어진다. 도니체티의 <람메르모르의 루치아>는, 영주의 여동생인 루치아가 권세있는 명문가끼리의 정략결혼을 뿌리치고 불운의 청년과 대담한 사랑을 나누다가 파멸하는 이야기이다. 비제의 <카르멘>에서, 우직한 병사 돈 호세는 노래와 춤의 명수인 집시 처녀 카르멘의 사랑을 스타 투우사 에스카밀로에게 빼앗기는 순간 넋을 잃고 무자비한 살인범으로 돌변한다.

푸치니의 <토스카>에서, 인기 가수 토스카는 혁명기 이태리의 왕당파 권력자인 스카르피아의 비열한 성폭력에 맞서다가 그를 죽이고, 그녀가 사랑하던 혁명파 화가 카바라도시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서는 절벽 아래로 투신 자살한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서, 심지가 굳지 못한 처녀 마농은 그녀의 미모에 혹한 부유한 남자들에게 한눈을 팔다가 가난한 대학생 데그리외와의 사랑을 그르치고 이국 땅에서 숨을 거둔다.

명작 오페라 가운데에 비련의 실패담 말고 통쾌하게 끝나는 사랑의 성공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러브스토리는 주인공들 자신의 순정이나 열정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상적인 인과관계가 진전되어 사랑의 결실이 맺어진다기보다는 우연한 계기나 운수 좋은 요행 덕분에 성공에 이른다는 스토리 구성이 흥미롭다. 단순한 재미보다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줌일 터이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호색한인 알마비바 백작은 피가로와 수잔나의 순박한 사랑을 훼방 놓는 비열한 흉계를 꾸미다가 막판에 들어서 하인들의 재치로 들통 나고 놀림감이 된다. 이같이 통쾌한 결말은 아슬아슬한 변장과 은닉의 책략들이 요행히 성공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웨버의 <마탄의 사수>에서, 산림감독관의 딸 아가테가 우직한 사냥꾼 막스와의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막스가 명사수대회에서 쏜 ‘악마의 탄환’이 오발했기 때문이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에서 어수룩한 동네총각 네모리노가 자기 애인을 연적에게 뺏기지 않고 행복한 결혼에 이른 것은, 가짜인 사랑의 묘약의 효과를 진짜로 믿었기 때문이다.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에서는, 지독한 속물인 중매쟁이의 농간으로 지주 아들과 결혼할 뻔했던 처녀가, 버림받을 뻔한 애인의 숨겨졌던 신분이 막판에 드러남에 따라서 뜻하던 결혼과 더불어 뜻밖의 재산까지 얻게 된다.

사람들이 오페라 극장을 찾는 것은 무엇을 새로 알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영화관객이라면 작품 줄거리를 미리 알아버리는 것이 영화감상의 재미를 덜어버리지만, 오페라 구경을 가는 사람 치고 그 작품의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페라의 매력은 음악과 문학의 힘이 결합되는 데에 있다. 음악의 도움으로 문학적인 공감이 더 커지고, 문학의 도움으로 음악적인 감흥이 더 커지는 것이다.

오페라의 테마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므로 음악과 문학의 결합이 필요한 것일 터이다.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다시는 그 꽃을 볼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