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영수/ 제주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후 전업소설가로 활동 중

사람들 사는 모습이 옛날과 달라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요즘에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남학생들이 여학생에 비해 초등학생 때만 학과성적이 떨어지고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나 대학입시 때가 되면 여학생들보다 더 우수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에는 대세가 역전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여학생들이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남녀공학인 학교를 선호하는 이유는 학과성적이 부진한 남학생들과 함께 섞여있어야 대학진학을 좌우하는 고교내신성적이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여학생들 성적이 향상되는 추세는 학교 마친 다음에 치르는 취직시험이나 고등고시 같은 시험에까지 확산되어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여풍당당’ 현상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등 외국에서도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서양역사는 기독교 사상이 지배한 중세기 이후 남성우위적인 사회제도와 가치관을 이어왔고, 유교문화권인 극동 3국에서도 남성우위적인 사회가 된 것은 막강한 유교적 전통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처럼, 사회의 각 방면에서 여자들의 능력이 남자들을 능가한다고 할 때 남성우위적인 사회전통은 차츰 무너지고 불원간 여성시대가 도래할 것이 아닌가. 사회 각처에서 인권과 민주를 외치는 시대의 흐름을 막을 도리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며칠 전에 나온 뉴스에서는, 수 만 명의 청년여성들이 서울의 대학로와 혜화동역에서 벌인 가두시위에서, 여자의 능력이 남자들보다 더 우수한데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왜 남자들보다 못하냐고 소리높이 외쳤다고 한다. 언젠가는 현실화될 변화의 전조라고 생각된다.

과거에는 떨어졌던 여학생들 성적이 근래에 와서 좋아졌다는 사실은,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여자들에 대한 교육투자가 그만큼 저조했음을 말해준다. 딸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서는 아들에 대해서보다 기대수준도 낮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나 여건을 잘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해서 여자는 한 평생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에게 종속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으니,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여성을 위한 교육여건이 얼마나 열악했을 것인가. 언젠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들리더니, 요즘에는 자상한 부모봉양을 위해서는 아들보다 딸이 훨씬 실속있다는 세간의 화제가 세태의 변화를 잘 말해준다. 출세한 아들은 ‘며느리를 위한 아들’이고 빚쟁이 아들은 ‘애비 속앓이를 위한 아들’이라는 말도 들린다. 늘그막의 부모는 아들보다 며느리 눈치를 더 보는 세상이라고 하니 그만큼 여성의 지위가 많이 올라갔다는 말이 된다.

남자와 여자 어느 쪽의 능력이 뛰어난가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학생들의 학과성적만 놓고 볼 때에 여성우위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 남자는 여자에 비해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대상에 대한 인지능력이 뛰어난 반면에 여자는 감성적이고 국지적인 대상에 대한 인지능력이 뛰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학교공부는 일정한 범위의 지식을 집중적으로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들은 친구들 사귀고 게임이나 스포츠를 즐기는 등 관심을 분산시키는 오만 가지 일들에 정신력을 뺏기는 성향이기도 하다. 남녀 간에 능력별 차이가 생긴 원인으로는, 수십 만 년에 걸친 구석기시대에 남자들은 주로 사냥과 채집이라는 광대한 공간의 인지활동을 맡고 여자들은 주로 가사와 육아 등 국지적이고 섬세한 인지활동을 맡았던 역할분담 전력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 인간의 신체구조와 생리기능 프로그램은 까마득한 옛날 구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남녀학생들 간에 학과목별 선호의 성향이 다른 것도 이런 설명과 일치한다. 남학생들은 수학이나 물리학, 역사나 지리 등 광대한 시공간(時空間)의 인지능력을 요하는 과목을 선호하는 반면에, 여학생들은 화학이나 생물학, 어문계 과목이나 예능과목 등 섬세한 감각과 관찰을 요하는 과목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사회인이 되고나서도 여성의 감성능력이 인간역사를 주도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 예상된다. 가정생활은 그 대부분이 감성활동일 수밖에 없다. 기업경영에서도 중소규모의 가시적인 활동일수록 감성경영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고, 모든 기업의 고객관리 업무에서 감성마켓팅의 역할이 증대하는 추세라고 한다. 남자들은 체력이 강한 편이니까 목공이나 수도배관공, 건설현장에서 땅 파고 흙 나르는 일을 맡아서 하겠지만, 그런 일도 로봇이나 중장비 같은 과학기술의 힘이 많은 부분 해결해 줄 것이다. 옛날 같으면 말타고 활 쏘며 창을 휘두르는 전쟁을 맡아 한 것이 남정네들이었지만, 이제 전쟁의 수단은 활쏘기나 총검술이 아니라 컴퓨터이다. 광대한 시공간의 인지능력을 요하는 남성적인 활동분야는 국제정치, 세계경제, 천체물리학처럼 매우 제한적이지 않을까 싶다.

때는 바야흐로 여성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장기간의 남성우위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 여성우위시대가 열리는 마당에 긴장하고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옛날 세상을 보여주는 신화 전설에서 보듯이 우리 제주도 지역은 오래전부터 여성시대였다. 제주사회는 특히 여자들이 할 일이 많았는데 여성역할이 컸다는 것은 곧 일찍부터 여성시대 역사였음을 의미할 것이다. 제주도의 전통사회도 남존여비의 유교문화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제주사회의 남존여비는 겉으로 내세우는 간판격(格)이었고 생활의 실질적인 속내로 보면 여성의 힘이 더 컸다고 생각된다. 제주신화의 대표적인 스토리인 세경본풀이에서, 형식적인 농경신 최고의 자리는 문도령이 차지하지만 오곡의 씨앗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실질적인 농경신의 역할은 자청비에게 맡겨지는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의 지배를 받는 미래사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주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온 역사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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