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김길호 씨만 모르는 것입니다. 한국에 핵이 없다니 누가 믿겠습니까. 그것은 거짖말입니다. 다 아는 사실인데." 지난 해 봄, 우리는 시 합평회를 마치고 밤 9시경 이자카야(선술집)에 들렀다.

<재일본 조선문학예술가동맹 오사카지부>의 문학부 주최로 한달에 한두번 저녁 7시쯤부터 모임을 갖고 각자가 쓴 시를 낭독하고 합평회를 갖는다. 총련계 문학 모임이다.

여기에서 다듬어진 시를 토쿄에서 발행하는 총련계 동인지 계간 시집 <종소리>에 보내면 게재한다.이 날도 합평회를 마치고 언제나 가는 단골 이자카야에 들렀었다.

작년 봄에는 남북한만이 아니고 미국을 선두로 세계가 북한의 핵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처했었다.

이와는 아랑곳없이 우리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합평회를 마치고 이자카에서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사이인가 화제는 남북한 정세로 흘러갔다.

언제나 칠팔명이 모이는데 필자 이외는 모두 총련계이다. 북한의 핵에 대해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는 필자의 말에 그들은 남한에도 핵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모두 이구동성이다.

핵 문제만이 아니고 가끔 남북한 문제가 화제로 등장했을 때도 미묘한 견해의 차이가 있는데 핵 문제에 대해서는 완강했다.

문인이라는 입장을 떠나 이쿠노쿠에서 민단 지단장을 맡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문제만은 그러냐고 물러설 수 없었다. 그들의 갖고 있는 왜곡된 정보의 허구성을 자세히 지적해도 소용이 없었다.

세계의 각종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일본에서, 하나의 이념 속에 터득한 정보는 어떠한 사회적 변화에도 그 진실성은 별도로 두고 화석처럼 굳어져서 융해될 수 없었다.

똑 같은 오사카 하늘 아래서 생활하면서도 이렇게 왜곡된 정보가 사실로 둔갑되어 활개 치는 이념의 존재가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그후 필자는 오늘까지 이 합평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데 토쿄에서 발행한 <종소리> 시집은 계속 보내 왔다.

금년 4월과 7월에 보내온 봄, 여름호에는 평창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시가 특집처럼  게재되었다.

이 시집 속에서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동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평창올림픽에 대해서는 직설적으로 쓴 작품은 배제하고 은유적으로 쓴 작품을 선정했다. 받침이나 글자는 우리와 다르지만 그대로 옮겼다.

오사카 동인 박태진 씨의 '이슬'이다. 

이슬

환희와 환호 속에 펼쳐진/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입장에/ 뜨거움이 솟구쳐 이슬 한방울/
남녘땅 여기저기 펼쳐지는 통일화폭에/ 어린이 눈에도 늙은이 볼에도 은구슬이 비친다/

갈라진 아픔과 아쉬움이 너무도 길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우리 소원이여서/

평화통일 바라는 온 겨레의 눈물방울에/ 나의 작은 이슬 한방울 합치여/ 휘날리는 통일기 물들이고 싶다/ 

다음은 오사카 동인 김애미 씨의 '우리의 색갈'이다.

우리의 색갈

평창 밤하늘 아래/ 줄지어 나타난 여러나라 선수/ 그들의 벤치 코트는/ 마침 무지개 이루었네/

무지개 색갈/ 어떤 나라에서는/ 일곱 색갈이라고 하고/ 또 어떤 나라는 삼색이라고도 한다/

사실 무지개는 몇 색갈일가/ 희미해서 몰라보는 색도 있고/ 세상에는/ 보는 사람마다 달라/ 아는 말로만 하는데/

그 무지개 속/ 어둠을 몰아내고/ 더 밝게 비치는/ 우리의 색갈을 나는 찾았다/

동일 선수들의 흰색 벤치 코트는/ 새로운 만남을 위한/ 래일에 기대를 모으는/ 가장 눈에 부신 색갈이여라/

다음은 토쿄에 거주하면서 활동하다가 지난 5월에 타계하신 총련문인의 원로인 정화흠 씨의 '환상'이다. 평창올림픽, 남북정상회담과 관계 없지만 소개한다. 

환상

두달만에/ 병원에서 해방됐다/ 한겨울 해볕인데도/ 얼굴이 따갑다/

멀리 보이는/ 내가 사는 도영(都營) 4층 주택이/ 새하얀 궁전 같이 눈에 보이고/ 방안에 들어서니/ 어둡고 침침하던 나의 침실이/ 왕실 같이 넓고 환해 보인다/

몰랐네/ 일상시는 생각도 않던/ 먹고 발펴고 자는 곳이/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할 줄을/

이게 만약 통일된 내 조국 내집이라면/ 심청이 어머니 만난/ 수궁수전 같이 보일지도/

다음은 오사카 동인 리방세 씨의 '숨소리'이다. 

숨소리

아이를 달래면서/ 엄마는 텔레비 화면을 본다/ 남북 수뇌분들께서 손을 잡고/ 분계선을 넘어선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엄마는 잠든 아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볼에 입 맞춘다/ 조그만 방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뿐/ 엄마는 귀담아 듣는다/ 미래의 숨소리를/ 사랑이 가득찬 숨소리를/ 이제야 다가오는구나/ 우리의 소원이/ 엄마는 아이를 껴안는다/ 포그은히/ 

다음은 토쿄에 거주하고 <종소리> 대표 오홍심의 '탁상액틀과 함께'이다. 본적지가 제주도이다.

탁상액틀과 함께

그날은/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하루종일 텔레비 앞에 앉았다/ 박수치고 울고 웃으며 목메이면서.../

어깨 나란히/ 웃으며 손을 잡고/ 38선을 넘어서시는/ 두 수뇌분의 모습 너무도 좋구나/

분단의 상징이였던/ 판문점은 이제/ 평화의 상징임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거니/

보면 볼수록/ 너무도 좋아/ 부모님 모신 탁상액틀 한가슴에 안아/ 텔레비 앞에 함께 앉았다/

생전에/ 한번만, 꼭 한번만/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하신/ 부모님의 그 소원 풀어드리려고./

이제는/ 마음 놓고 푹 쉬세요/ 오늘은 두 수뇌분과 함께/ 분계선을 자유로히 넘나드시고요/ ... ... /

하늘이 트인다/ 길이 열린다/ 이제 눈물은 말자/ 욕소리도 말자/

우리는 하나!/ 오직 통일을 향하는 하나의 민족/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고/ 자주의 세기를 활짝 열어젖히자/

마지막으로 진승원 씨의 '이제는 물렀거라'이다. 본적지가 제주도이다. 

이제는 물렀거라

역겨운 어름이였다/ 군사분계선/

일흔해전/ 병실 침대우에서/ 통곡하시며/ 아버지가 그러셨다/ 너는 민족의 한이라고/

서른다섯해전/ 고향을 그리시며/ 눈물 머금고 떠나신/ 어머니가 그러셨다/ 너는 원쑤라고/

너무 오랬구나/ 물러날 때가 됐네/ 북과 남 대표님 두분이/ 손잡고 넘으신다/ 더는 버텨 뭘하겠는가/

아리랑의 풍악이/ 갈채소리를 태워/ 저 하늘에로 울리나니/ 아버지가 한을 푸신다/ 어머니도 원한을 더신다/ 

분계선/ 역겨운 이름이였다/

분렬의 상징을/ 평화의 상징으로/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소리를 들어라/ 

이제는 물렀거라/

필자가 작품 해설과 감상을 논하지 않아도 읽으면 곧 머리에 들어올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총련계 동포들이 평창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참고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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