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시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명견만리’라는 프로그램에 인기방송인 김재동 씨가 나와서 우리나라의 부의 대물림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셨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금수저는 계속 금수저가 되고,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길은 없다는 얘기였다. 많은 부분 동감이 갔다.

김재동 씨는 1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분들을 조사해보니, 중국이야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므로 제외하더라도, 물려받은 재산가가 우리나라처럼 70%가 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도 20~3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아이디어가 돈을 벌기 시작하였으니 신흥 부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대부분 이 부류에 속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나 비율로 볼 때, 록펠러나 포드 가문의 역할이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현대에 한참 미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요즈음 정주영 씨의 자서전을 다시 읽고 있지만, 정말 우리나라에서 맨주먹에서 굴지의 재산가로 도약한 정주영 씨야말로 자신의 노력에 의한 신분상승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주영 씨의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 그리고 신용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긴 것이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지만, 해방공간과 육이오동란이라는 큰 사회적 혼란과, 중공업 육성이라는 국가적 정책 시행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몇 몇 IT분야를 제외하면 정회장처럼 성공하기는 어렵다. 물려받은 것이 없는 사람은 사업을 새로 시작하기는커녕 하루하루 생활도 제대로 영위하기가 어려운 것이 요즈음 실상이다. 필자가 젊었을 때만 하여도 의사들은 개업해서 한 10여 년 열심히 하면 병원을 짓고, 또 열심히 하면 종합병원으로 하였다가 때로는 대학병원까지 세울 수 있었다. 인제의과대학, 중문의과대학, 가천의과대학, 을지의과대학 등 10여 곳이 그런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의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물려받은 것이 없으면 혼자서 종합병원조차 지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월급을 받아서 아무리 저축을 하고 알뜰하게 산다고 하여도 물려받은 것이 없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내 집 마련조차 힘들다. 집값이 올라가는 속도가 저축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니 무슨 수로 저축해서 집을 장만할 수 있다 말인가!

20여 년 전에 단 하나 있는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문제가 생겼다. 집이 없으면 의사 봉급으로도 집을 장만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때에 모파상의 작품 ‘진주목걸이’가 생각났다. 친구에게서 빌린 목걸이를 잃어버려 평생을 모아 새 진주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주었더니 빌린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것이다. 그 목걸이를 마련하느라 일생을 허비했는데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아들 녀석이 집 장만하느라 일생을 허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정도의 여유는 있는데 모른척한다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아빠는 가진 것이 없으니 행여 나중에 뭘 물려받을지 김칫국 먼저 마시지 말고,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 다만 부모로서 교육만큼은 책임을 질 것이니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좋다”고 주입교육을 시켰다. 그런 참이라 집을 사주자니 마음의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부모로서 자식이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보기만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져 작지만 하나씩 마련하여 주었다. 아무 것도 물려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작지만 집을 받으니 모두들 감지덕지하였다.

주위에 자식들에게 집을 사 줄 형편이 못 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우리 애들은 달리기 경주에서 몇 발자국 앞서 뛴다는 미안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는 모든 분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워낙 집값이 많이 오르니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된다.

김재동 씨도 얘기하듯이 싱가폴에서는 25년 상환 조건으로 정부에서 신혼부부들에게 싼값으로 집을 마련하여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런 제도를 도입하였으면 좋겠다. 또 핀란드에서는 의사들이 간호사들보다 약 3배의 봉급을 받지만 세금을 제하고 나면 그저 배 정도 된다고 한다. 이것은 과거 바이킹들이 약탈을 하면 골고루 나눠 가졌던 역사에 기반을 둔 민족적 가치관과 복지제도의 확립에 의해 국민들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도 영국의 보수당 당수를 지내신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궐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오두막에 사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힘과 지혜를 모으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맨 먼저 불로소득을 줄이기 위한 노력들을 하여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 중에서도 부의 대물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리라 확신한다. 다만 재벌들의 편법 상속을 막기 위해 전문경영인을 두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중소기업들이 상속으로 문 닫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부동산에 의한 부의 축적이다. 노조에서 주장하듯이 노동자들이 가치를 창출하면 자본가들이 다 빼앗아간다는 논리는 토지주가 지배하던 일차산업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2차산업 시대가 자본에 의한 가치창출의 시대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불로소득이 많은 사회를 건전한 사회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토지가 단지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노동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부를 축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필자도 물려받은 땅이 있지만 땅은 국가 소유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중국과 같이 소유는 국가가 하면서 사용료를 받되 기한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필요하지 않은 땅을 확보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국토 이용에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이므로 땅을 무상으로 몰수할 수는 없고, 현재 시가로 50년 내지 100년 동안 분할 상환하는 것으로 국채를 발행하고, 그 국채는 그 토지를 이용하는 분들에게서 사용료로 받아 갚으면 되지 않을까?

단테의 신곡 첫머리는 지옥의 입구에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희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 즉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한다는데, 그것은 결국 희망이 없다는 듯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풍부한 자원이 사람뿐인데 이 젊은이들이 희망을 포기한다면 앞날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다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려면 젊은이들이 50년 전의 젊은이들처럼 활기와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우리 모두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를 버림으로써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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