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은 영국 수상이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가 말했었다고 밝혔다지만 아직도 사실여부가 확인 되지 않은 인용구다.

다만 ‘통계의 거짓’을 강조하기 위해 누군가가 지어낸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영국의 위스턴 처칠(1874~1965)도 총리시절 “나는 내가 조작한 통계만 믿는다”고 통계조작을 시인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나치 독일의 선전선동 귀재 괴벨스가 처칠과 영국민을 이간질하기 위해 조작한 유언비어다.

사실 처칠은 통계를 활용해 국민과의 신뢰를 구축했던 정치지도자였다.

‘통계부’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황(戰況)을 가감 없이 국민에 공개했다.

통계부가 수합한 영국군의 연전연패(連戰連敗)사실을 그대로 공개했다.

이것이 결국 영국 국민에게 위기감을 불러 단결시켰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통계는 이처럼 ‘거짓말의 상징어’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설득력 있는 ‘진실의 도구’로 활용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통계 논쟁’도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갑작스런 ‘통계청창 경질‘이 불을 지폈다.

문재인대통령은 지난 26일 당시 황수경 통계청장을 갑자기 경질했다. 임명 된지 1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본인도 경질이유를 모른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황 전 청장은 27일 이임식에서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고 제가 그렇게 (청와대 등 윗선의)말을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 말을 비틀어 말한다면 “통계청이 정치적 도구가 되었고 윗선이 말을 듣지 않아 경질됐다”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다.

정권의 ‘코드 통계’나 ‘통계 조작’의혹까지 낳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후폭풍이 거세다.

통계청은 지난 5월 ‘소득 계층 간 분배가 악화됐다’는 ‘1분기 가계소득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하위 20%(1분위)의 소득이 역대 최고치인 8% 감소했고 양극화 지수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는 자료였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에 치명적 자료다.

소득주도성장이 저소득층의 소득을 오히려 감소시켰다면 이는 사실상의 정책실패로 볼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통계청은 7월에는 여기에 더해 충격적 고용동향 자료까지 내놨다.

전년 7월 대비 늘어난 취업자가 5000명. 지난해의 경우 매월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는 평균 30만 명을 웃돌았다.

취업자 5000명은 30만 명의 6분의 1이다. 고용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저소득층의 소득 축소나 충격적 고용 참사는 각종 경제지표 악화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통계청 발표 후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8월30일)은 55.7%까지 떨어졌다.

75%대 고공행진이었던 지지율이 석 달 만에 20% 포인트까지 추락한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통계청 발표 때문’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일반인들 역시 ‘통계청장 전격 경질’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다. 문책성으로 보는 것이다.

하자가 없는 통계청장에게 경제지표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옹졸하고 비겁하다.

통계청이나 통계담당자에게 ‘정권입맛에 맞도록 통계를 짜 맞추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다. 통계청장 경질은 “정상적인 차관급 인사의 일환”이라는 변명이다. 이 역시 옹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변명이 사실을 덮지는 못한다. 변병으로 진실을 잠깐 비켜 갈 수는 있을지라도 거짓을 영원히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도둑이야” 소리쳤는데 ‘도둑은 잡지 않고 소리친 사람만 타박 한다’면 정상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얼개는 그럴듯하다.

최저 임금을 올리고 노동정책과 재분배 정책 등을 통해 노동소득을 증가시켜 소득 재분배의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갸륵한 뜻은 거룩하다.

집토끼와 산토끼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면 그렇다.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 올릴 수 있는 여건이나 여력이 없는데 올리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시급(時給)올려도 일자리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말짱 헛일이요 말장난에 불과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애꿏은 영세자영업자와 일자리 알바생만 죽이는 꼴이다.

그동안 소득주도성장의 속도조절론이 제기 됐던 이유다. 뒷감당 없는 과속 질주보다 앞뒤를 살피는 안정적 정책추진을 주문했던 것이다.

통계가 ‘새빨간 거짓말’이라 해도 활용이나 운용여부에 따라 ‘진실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통계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결과나 성질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나 ‘고용동향 조사’도 그러하다.

예를 들었던 ‘처칠의 솔직한 통계이용 방법’도 대안의 하나일 수 있다. ‘진실에의 충성’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통계는 정치적 용어다.

통계(Statistics)의 어원이 라틴어의 통치자 또는 정치가(Statista)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통계를 정치적으로 왜곡하거나 정치적 욕심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옳은 일도 아니다.

껍질만 보고 본질을 외면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통계청 관련 논란’이 정책추진의 속도조절이나 정책개선의 방향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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