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뭐길래...

원희룡 지사가 블록체인에 ‘꽂혔다’. 지난 8월 30일 원희룡 지사는 제주를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였다. 11일은 블록체인 관련 특별 강연까지 했다. 제주상공회의소와 제주도관광협회가 개최한 ‘제주경제와 관광포럼’ 10주년 기념 제100차 특별강연회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원 지사는 블록체인의 잠재력에 대해서 역설했다. 지금까지 원희룡 지사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원희룡 지사가 블록체인에 그야말로 꽂힌 때는 길게 잡아야 3개월 정도다. “저도 잘 모르지만 지방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했고, 선거가 끝난 후 공부했다”. 이게 11일 원희룡 도지사의 발언이었다.

따지고 보면 블록체인에 대한 원희룡 지사의 관심은 지난 선거 막판이었다. 지난 6월 8일. 당시 원희룡 후보 캠프가 33번째 공약으로 발표 한 게 블록체인 특구와 제주코인 발행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주의 미래성장 동력을 육성하겠다는 게 당시 공약의 주요 내용이다. 발표 자료 중에는 규제 샌드박스 도입도 있었다. 과감한 규제 철폐를 통해 자유로운 기업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2천억 규모의 제주4차 산업 혁명 펀드도 조성하고 암호화폐 제주코인도 발행해 제주를 블록체인 특구로 만들겠다는게 당시 공약이었다.

공약 발표 당시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다. 지난 지방선거는 각종 도덕성 공방 때문에 정책 이슈가 실종됐다. 그런데 원희룡 후보가 당선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공약실천 위원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더니 블록체인 특구 도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원희룡 지사 본인이 당선 직후 블록체인 특구 공약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지난 8월 8일에 열린 혁신경제 경제관계장관과 시도지사 연석회의에서도 원희룡 지사는 블록체인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건의 사항을 정부에 전달했다. 이날 회의에는 경제부총리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장관과 민주당 혁신성장 추진위원회 추미애 위원장,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이 참석했다. 무소속 원희룡 지사가 이 자리에서 블록체인을 꺼냈다는 건 블록체인 공약이 원 지사의 공약 중 하나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정부 핵심 요인들 앞에서 블록체인을 언급한 건 원 지사가 핵심 공약으로 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 지사가 블록체인 공약을 내세우면서 관련 업계와의 접촉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8월 2일과 3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관련 업계 행사에도 참석했다. 글로벌 디지털 자산 거래소 후오비 코리아가 개최한 후오비 카니발이란 행사였다. 후오비 카니발 코리아는 암호화폐 거래 업체다. 원희룡 지사는 3일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단순히 축사만 한 건 아니다. 축사가 끝나고 나서는 비트코인 닷컴 CEO인 로저버를 만났다.

이날 후오비 코리아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제주도와 후오비 코리아는 블록체인 관련 비즈니스에 대해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고 되어 있다. 후오비코리아가 이날 발표 내용은 이렇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블록체인 허브를 구축하게 되면, 후오비 코리아가 가진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블록체인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인 우지한과 로저버를 비롯해 블록체인 산업에 영향력과 명망을 가진 국내 주요 인사 또한 함께 초대해 자문단을 구성할 것이다. 제주도와 블록체인 허브를 함께 구축하는 것에 우지한과 로저버가 구두로 참여의사를 밝혔다.”

내막을 모르고 보면 제주도와 후오비 코리아가 마치 MOU라도 맺은 것처럼 보인다. 또 30일 서울 삼성동에서 한국블록체인 협회가 주최한 행사에도 참석했다. 원희룡 지사는 ‘블록체인 허브도시를 향하여’란 주제로 강연도 했다. 원 지사의 이날 강연 내용은 보도자료로 언론에 배포했다.

제주도의회도 뜬금없이 '블록체인 삼매경'

원희룡 지사의 행보를 보면 그야말로 블록체인에 꽂혔다고 표현할 수 있다. 원희룡 지사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주도의회도 때 아닌 블록체인 공부에 빠졌다. 지난 8월 23일 ‘블록체인 특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현길호 의원이 마련한 자리다.

블록체인 기술적 장점 많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암호화폐 열풍에서 보듯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의회 도정 질문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지금까지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고용호, 양경식 의원이 도정질문에서 원희룡 지사에게 이 부분을 따져 물었다. 이들 의원들의 지적을 요약하면 이렇다.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불완전하다. 암호화폐 거래 과정에서 사기 투기, 돈세탁 등 부작용도 많았다. 도민 사회 공감대 없이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부작용 많은 새로운 IT 기술을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건 위험성이 높다는 거다. 지금까지 원희룡 지사의 행보만 보면 블록체인 특구 지정과 관련한 정책은 원희룡 지사의 단독 드리블이다. 블록체인이 전문적인 부분이다 보니 관련 전문가 그룹의 자문이라는 것도 관련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 아닌지 검증이 쉽지 않다. 도의회가 서둘러 전문가 토론회를 연 것도 사실 도의회도 관련 내용을 잘 모른다는 걸 보여준다. 도민의 대의기관이 도의희도 잘 모르고, 도청 공무원들도 관련 부서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해 정도가 낮다는 게 중론이다.

원 지사만 아는 블록체인? 공론화 과정 없어

지금까지만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원희룡 지사의 개인적 신념이 블록체인 특구라는 정책을 추진하는 동력이다. 공론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희룡 지사도 인정한다. 원희룡 지사는 도정질문 답변에서 "도민들이 염려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혁신성장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에 기회라고 생각해 정책건의를 했고 원론적 입장을 제시한 상태"라면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초안을 작성하고 있고, 이를 놓고 설명회·공청회 등을 열어 의회와 도민사회와 함께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신뢰, 신념은 여전하다. 원 지사는 "제주를 특구로 지정해 중앙정부와 협의해 제한적으로 암호화폐 발행과 거래를 인정한다면 국내외 우수기업을 유치할 수 있고 지역경제나 제주 미래 먹거리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국내외 기업은 물론 전문가 집단 등 제주의 특구 지정을 지지하는 국제적인 움직임도 있다"고 했다. 도민 사회 우려는 이해하지만 블록체인은 제주 미래 성장 동력이라는 소신을 나타낸 것이다.

블록체인 특구, 성장주의 허상 제주국제자유도시의  IT 버전

원희룡 지사가 블록체인 특구 지정에 매달리는 건 세 가지 차원에서 옳지 않다.

첫째 블록체인 특구지정의 전제가 잘못됐다. 원희룡 지사는 제주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될 경우 잠재력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 판단의 근거는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라는 거다.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기 때문에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되면 국내외 선도 그룹들을 유치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규제새드박스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말이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는 거다.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에 대해서 정치권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있다. 2년전 4.13 총선에서도 국제자유도시 목적 조항을 수정해야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기업 친화적인 도시로 제주를 만들기보다는 제주의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원희룡 지사가 도정의 목표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를 내세운 것 바로 이러한 도민사회의 요구를 대변한 거다. 그런데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기 때문에 블록체인 특구를 지정해야 한다. 이건 앞뒤가 맞지 않다. 비자림로, 용머리 해안 도로 확장 공사, 신화월드 오수 역류 등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개발과 성장위주의 정책들은 제주 사회에 큰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주의 성장은 그야말로 헛구호가 된다.

두 번째. 행정의 모험주의는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원희룡 지사는 블록체인 장점을 연일 홍보한다. 원희룡 지사는 블록체인 특구 되면 제주가 4차 산업혁명의 선도 기업을 유치해 국가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이리스크 하리 리턴이다. 고위험 고수익 구조다. 위험이 크면 수익도 크다. 하지만 실패를 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는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재테크 명언이다.

원희룡 지사의 말처럼 블록체인 특구라는 실험이 성공하면 제주의 미래는 장밋빛이 될 수도 있다. 원희룡 지사의 전망처럼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면서 젊고 역동적인 일자리가 늘어나고 제주의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치자. 그런데 만약 그 실험이 실패하면. 블록체인 기술에서 필수적인 암호화폐의 부작용으로 제주사회가 혼란을 겪는다면.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잘못된 정책 결정 피해 결국 제주도민이

흔히 공직 사회가 경직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이 자기 집 하나를 지을 때도 건축허가부터 준공검사까지 수많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어떨 때는 ‘내 집도 내 마음대로 못짓는다’라는 푸념도 한다. 하지만 행정은 그런 거다. 행정은 불가역성이다. 행정적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행정은 모험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지고 따져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 행정 결정이 미칠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사기업의 경우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벌어들이 수익이 높다고 판단되면 그럴 수 있다. 책임을 결정권자가 지면 된다. 그런데 행정은, 행정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피해는 누가 지는가. 현행 법으로는 정책 결정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부동산 투자 이민제를 확대하고 중국인들의 토지 보유를 풀고,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들여서 예래동 휴양단지, 헬스케어타운를 추지하고. 이 모든 정책 결정에 대해서 당시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를 했던 전현직 공무원들, 그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전직 지사들 중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강정 해군기지도 마찬가지다.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하고 강정 마을회의 결정이 번복되어도 강정 마을 주민들이 구속되고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행정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원희룡 지사의 블록체인 지정이 무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번째 원희룡 지사의 블록체인 공약에 제주도민들이 빠졌다. 블록체인은 신기술이다. 전문가들만 안다. 도가 발표한 자료들을 보면 죄다 낯선 용어들이다. 규제 완화라고 하면 될 걸 규제 샌드박스라고 한다.

최근 원희룡 지사의 행보를 보면 마치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친구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때야 어려운 문제를 푸는 친구가 대단하게 보인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는 그렇지 않다.

어려운 수학 문제 풀듯 할 일 아니

행정의 가장 큰 원칙은 공공성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문제다. 블록체인 특구 지정되면 관련 업체들은 시쳇말로 ‘땡큐’다. 블록체인 특구를 지정한다니까, 각종 IT 전문 매체에서 원희룡 지사 공약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럴만도 하다. 선거 당시 공약이 2천 억원 펀드 조성이었다. 관련 업계의 관심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규제로 기업 활로를 못 찾고 있는 업계로서는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업계가 주관한 행사에 참가해 발표를 하고. 업계 입장에서는 보면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없다. 업계 관계자들하고 만나면 블록체인에 대핸 장밋빛만 가득하다.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확증편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자리에 과연 공공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염려가 되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그러다보면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행정의 공공성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성과를 내기 위해 업계의 이득을 대변하게 된다.

성장을 멈추고 성장의 방향을 성찰해야 한다는 게 지금 제주 사회가 직면한 문제이다. 지금 원희룡 지사의 행보를 보면 도민의 질문에는 귀를 막고 있다. 말끝마다 블록체인이다. 마치 는 도민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시험에도 나오지 않을 어려운 수학 문제를 혼자서 풀면서 자랑하는 모습은 아닌가. 이제 원희룡 지사가 답변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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