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제주투데이에 게재한 김봉현 전  호주대사의 "일본의 혐한, 그대로 두면 어떨까?"의 기사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필자도 동감이다.

오사카에서 45년을 살면서 일본이야기를 쓰는 필자로서 흥미 있는 기사였다. 제목처럼 '일본의 혐한, 그대로 두면 어떨까?'에는 찬성이지만 생각하는 내용은 좀 다르다.

유엔 헌장에 명기된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국가의 군사력을 가지게 어렵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 정계에서는 6년 전, 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1강(1强)이라는 수식어가 일본 국민들에게는 완전히 시민권을 얻고 있다.

중의원 국회 단독 과반수를 확보한 자민당은 연합정권의 공명당까지 포함하면 3분의 2를 넘는 막강한 세력을 갖고 있다.

여당의 힘, 특히 자민당의 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며 자민당 속에서도 아베 수상에 도전할 상대자의 힘이 너무 약해서 포기 상테에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나온 1강론이다.

오는 9월 20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가 있다. 사실상의 일본 수상을 뽑는 선거이다. 수상 연임 2기까지 밖에 할 수없는 자민당 규약을 아베 수상의 3기 연임을 위해 고쳤다.

거의 당선이 확실시 되는 아베 수상은 선거공약으로 정식으로 헌법개정안을 내놓았다. 새로 집권할 3년 사이에 어렵더라도 일본은 그 길로 갈 것이다.

군사력은 북한의 핵무장과 세계 테러의 다발화를 빌미로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비 증강을 꾀하고 있으며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일본인들 인식 속에 일본은 전범국이라는 유엔 헌장은 일본 국민들 중에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사어(死語)에 불과하다.   
   
다음, 일본의 경제력이 세계 3위로 떨어져서 4위인 독일과도 큰 차이가 없어서 일본 국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도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아베 수상은 취임과 동시에 '지구의 조감도(鳥瞰圖)' 외교를 전개한다면서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다. 일본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지원 요청이 아니라 지원한다는 외교 전략이다. 지금도 진행중이다.

일본의 혐한은 왜 일어났을까? 한일 양국의 '역사인식'의 차이를 한일 양국 정부가 슬기롭게 대화 속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감정론을 부추긴 결과였다.

한국 정부에서는 역사인식에 대한 일본의 성의가 없으니 진심으로 사죄하라는 '사죄부족론'을 들고 나왔으며, 일본에서는 사죄를 했는데 언제까지 사죄해야 하느냐는 '사죄유한론"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한국 시민 단체에서는 일본 부산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 설치로 일본 정부는 자국 대사를 즉각 소환했다.

지난 해에는 서울 시내 버스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고 박원순 시장이 출발 당일 날, 인사차 그 버스에 찾아가서 소녀상에 말을 거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공직을 떠난 민간인 신분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2년 전 광복절 날, 국회의원의 독도 방문단은 물론 경기도 의회에서는 독도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다는 기상천외의 의결을 체택하기도 했다. 

제주에서도 가만 있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제주 일본총영사관 앞에 일제시대 강제노동을 끌려간 노동자상을 세운다고 했다. 노동자상은 그후, 산지 부두에 세워졌다. 

이러한 역사인식에 대한 한국의 움직임은 일본 텔레비는 물론 매스컴의 톱뉴스가 되어 바로 일본 국민들의 안방까지 찾아간다.

이렇게 되면 한일 양국은 서로 비방전으로 맞섰다. 그러면 일본 텔레비에 나온 코멘테타들은 한국정권은 상투적인 반일 감정을 부추기면서 떨어진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날뛰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한개의 방송국만이 아니라 역사인식으로 인해 빚어진 한일간의 갈등에서의 코멘테타들은 이구동성으로 또 나왔구나는 식으로 동네 강아지 짓는 수준 정도로 평가절하 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일본의 혐한을 부추기고 있으며, 여기에는 우한파(友韓派) 일본인들도 한국이 좀 지나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지난 해, 한국인이 일본에 온 관광객은 7백만을 넘었다. 올해는 더 불어날 전망이다. 6월말 현재 4백만을 넘었다. 일본인의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은 220만명에 불과했다.

한국 국민의 10% 이상이 일본을 방문했는데 일본은 1천 2백만이 방문해야 10%에 달하는데 고작 220만명이다. 이 현실를 우리는 냉정히 분석해야 한다.

3백만을 넘었던 일본 관광객의 격감은 '속과 겉이 다르다'는 일본인이 아니라 혐한의 빚은 속과 겉이 일치한 결과이다. 한국은 어떤가. 그렇게 일본을 비난하면서도 일본 방문은 증가 일로이다. 한국이야말로 이중성의 잣대를 갖고 있다. 아이러니 현상이다.

위안부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여기저기 소녀상을 세우지 않아도 일본군의 유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은 유치원 때부터 배우고 있으며 노래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것을 형상화 하거나 '나라사랑'이라는 명목하에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언제나 부르짖어야 하는가?

일본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각심이라는데 오히려 일본인들게 너무한다는 혐오감 속에서 새로운 혐한 의식만을 키워 주고 있다.

고국에서의 이러한 역사인식의 표면화는 국민의식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를 할런지 몰라도 반성해야 할 일본은 반성은 커녕 더욱 큰 반감을 이르키는 혐한 광고 구실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고국에서의 역사인식의 어필은 그 목적과는 달리 역효과를 주고 있으니 언제나 삼가하라고 제주투데이에 그럴 때마다 써서 강조해 왔다. 앞으로도 이것은 변함이 없다.

일본의 혐한에 대해서는 한국 스스로가 제공한 부분도 있으니까 그대로 두고 일본 국내에서 일어나는 재일동포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서는 강력히 맞서야 한다는 인식을 동포들은 갖고 있다.

'일본의 혐한, 그대로 두면 어떨까?'의 기사에 이유근 씨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올렸다. "자존심이 타인에 대한 나의 가치를 내세운다면 자존감이란 나의 평가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남의 말에 일희일비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있는 사람들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에 마음을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나 하는 것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상태가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일본인의 혐한론에 대해서 우리가 갖어야 할 사고방식에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필자도 동감이다.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것이 혐한을 극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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