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간에 비소식을 확인했지만 예정대로

영실로 향하는 동안 오락가락 가을비는 대책없이 내린다.

일년을 기다렸기에 포기할 수는 없고...

영실 소나무숲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혔고

산간에 내린 폭우로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는 생기가 넘쳐나지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줄기는 머리를 어지럽힌다.

긴 숲 길을 벗어나면 보이던 백록담 화구벽은 안개에 갇혀버렸다.

목적지까지는 아직인데...

잠시 안개가 걷히면서 눈에 들어오는 빗방울을 머금은

가을야생화의 여왕 '물매화'

계속 내리는 비와 바람은 옷을 적시고

비가 멎기를 기다려보지만 전혀 그칠 기색이 없다.

엉겅퀴 사이로 이제 막 꽃잎을 여는 한라산 요정 '깔끔좁쌀풀'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와 작년보다 개체수가 훨씬 많이 보이지만

빗방울에 꽃잎을 가려 결국 포기하고 아쉬운 채

뒤로 돌아보기를 여러 번...

며 칠 동안 눈에 아른거리는 한라산 요정

결국 이른 아침 1100도로를 달렸다.

비 내린다는 예보는 없고 느긋한 마음으로 한참을 오르다 만난

희고 작은 꽃이 우산자루 모양을 한 '궁궁이'

강풍에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에 열매만 남은 '산딸나무'

힘에 부칠 쯤 바위 틈에 나비모양의 노란색으로 위안을 주는 '제주황기'

막바지 노란꽃을 피우며 벌과 나비를 유인하는 '곰취'

바위에 떡처럼 달라붙은 '바위떡풀'

하지만 뿌리를 보이는 '구상나무'와 '주목'

태풍이 남기고 간 흔적은 씁쓸하다.

백록담 화구벽...

그런데 웬 날벼락..빗줄기가 거세진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갑자기 머리가 먹먹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지나가는 비였을까?

다행히 한라산 요정을 만났을 때 비는 멈췄다.

"깔끔한 좁쌀풀, 정말 반갑다."

깔끔좁쌀풀은 현삼과의 한해살이풀로

풀숲의 물빠짐이 좋은 반그늘이 자람터다.

한국특산식물로 한라산 1600m 고산지역에서 자생하는 

개체수는 아주 적은 편이다.

원형의 마주나기 한 잎은 깊게 갈라지고

톱니 끝이 길고 까끄라기처럼 끝은 뾰족하다.

키는 5~10cm로 눈여겨 보지 않으면 찾기가 힘들 정도로 아주 작고

줄기에는 밑을 향해 굽은 털이 보인다.

8~9월 적자색 꽃이 윗부분의 겨드랑이에 달려 피고

통형의 꽃받침은 끝이 4개로 갈라지고 짧은 털이 있다.

10월 경에 둥근 열매가 달린다.

 

강풍과 폭우는 선작지왓도 비껴갈 수 없었는지

호장근은 벌써 잎을 떨구어내고 줄기만이 앙상하게 남았다.

신들의 거처라고 불리는 '영실(靈室) 병풍바위'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영실기암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풍광에 잠시 멈추고

일주일만에 재회한 '깔끔좁쌀풀'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떠올리며

행운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결코 오지 않는다.

행운을 찾아 떠나는 사람에게만 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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