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9월 18일 김정은-문재인의 세 번째 평양 정상회담은 차근차근 남북한 고위 정치인들 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하나의 여정이었다. 두 정상의 나이를 의식해서 인지, 필자가 보기에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 부부의 백두산 등정 사진은 마치 인자한 노인네가 사위나 며느리와 함께 한반도의 어느 산을 올라 정을 나누는 그런 모습이었다. 부디 그런 정겨운 모습으로 두 정상만이 아닌 8천만 한겨레가 여기저기서 손잡고 지내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필자만의 것이 아닐 게다.

그렇게 두 정상은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도록 하자는 데 십분 공감하고 의지를 피력했다. 물론 필자의 절친인 김봉현 대사가 제주통일미래연구원 특강에서 지적했듯이, 두 정상의 합의와 약속에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남북한 화해협력의 시대로 나아가자며 1990년대 이후 남과 북이 수차례 논의하고 약속했던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 다 어느 때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얘기하고 제안했던 사안들이다. 다만 실행이 안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진정성이 더 커보인다는 데서 기대가 크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 이번에는 보다 더 낙관적인 입장에서 기대를 걸면서, 이번 평양 정상회담의 합의와 관련하여 그 가운데 특히 제주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 몇 가지 생각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먼저,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다. 2000년 6월에 김정일 위원장도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서울 답방을 언명한 바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 때 많은 제주도민들은 김정일이 서울 오는 게 불편하면 대신에 항공편으로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 왔다 가면 좋을 텐데 하는 기대를 한 적이 있다. 이번 2018년에는, 김정은-문재인이 백두산 동반 등정했듯이, 김정은이 서울에 왔다가 한라산을 같이 올라가면 좋겠다는 기대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한라에서 백두, 백두에서 한라’라는 평화통일 구호가 그냥 말만이 아님을 실감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김정은에 달려있다는 게 아쉬움이다. 또한 제주가 김정은을 끌어올 수 있는 유인이 그다지 커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평화의 섬 비전과 구상이 지난 10여년간 그냥 방치되어 온 탓도 있다.

두 번째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재개되고 복구될 전망이다. 그건 시작일 뿐, 종국에는 금강산에 이어 백두산 관광, 개마공원 관광이 추진될 필요가 있고, 개성뿐만 아니라 원산, 청진, 신의주 등 북한의 동서남북에 남북한 합작의 공업단지와 농업단지가 마련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특히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금강산에 둔다고 하는데, 북에만 말고 남에도 제주에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두어 북한 주민이 국제적인 청정관광지 제주에 와서 며칠이라도 지내다가면 좋겠다. 이는 북한주민에 대한 남한 개방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왜 북한에만 공업-관광-농업단지를 두는가. 제주에 남북한 합작의 농업-축산업-양식-관광단지를 두면 왜 안 되는지.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기술의 합작을 우선 북한에서 시작하는 건 나름 합당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걸음 더 나아가 제주에서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해 보는 시범은 필요해 보인다.

세 번째로, 두 정상이 전쟁이 없는 한반도를 향해 합의를 했지만, 주로 휴전선과 서해 접경지역에서의 군비통제에 머물고 있다. DMZ 공동유해 발굴, JSA 비무장화, CP 상호철수 등은 남북이 서로 적대행위를 중단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시작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다만 전방만이 아닌 후방에서도 최소 하나 정도는 어디선가 남북 모두 서로의 군사기지를 해체해 나가자는 합의로 나아가는 건, 아직 시기상조일까. 숱한 갈등을 빚으면서도 이제 강정 해군기지가 완공되었으니,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국제관함식을 열고 동북아시아 최첨단 해군기지로 자리하도록 하는 걸로 끝나는 걸까.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도록 하자는 게 확실하다면, 남과 북에서 각각 군사기지 하나쯤은 평화기지로 전환시켜 나가자는 담대함을 다음 정부에게 넘겨야 할 만큼, 아직은 남북에 대한 상호 신뢰가 부족한 듯싶다.

네 번째로,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천명한 바 있지만, 그 시작으로서 남북은 올 해 내로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 연결 사업을 벌이자고 합의했다. 철도는 보통 수익이 나지 않음에도 물류와 운송의 대표적 인프라로 어느 나라나 긴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에, 남북 철도 연결은 휴전선 철조망을 무용지물화 해 나가는 역사적인 사업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경부선의 종착지인 부산이 들썩인다. 부산과 일본의 해저 고속철도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2018년 현재 제주는 물류와 운송이라는 측면에서 성산 제2공항을 둘러싼 찬반으로 시끄럽다. 한반도와 제주를 오가는 게 하늘밖에 없는가. 바다도 있고, 해저는 왜 안 되는지. 공론화의 영역을 확장했으면 한다. 제주에서 런던까지 철도망은 그냥 공상만화에서나 나오는 생각에 불과할 것일까. 이미 여수까지 들어온 KTX를 제주에까지 오도록 하는 데 드는 비용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주 섬 정체성 보존 때문인지 모르지만, 북한 개방 시대에 맞춰 한반도의 신시대에 부응하는 제주발 유라시아 KTX를 꿈꾸어 보았으며 좋겠다. 제주에서 여수-서울역-평양-신의주를 거쳐 만주 또는 시베리아로, 그리곤 유럽까지.

다섯 번째로, 앞으로 남북한 교류협력이 대세라면,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서 문화-예술-스포츠 등 다양한 형태의 남북한 잔치와 축제의 장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주포럼이 안보와 평화 그리고 번영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이제 한반도의 신시대가 열리고 있다면, 그에 맞춰 평화포럼도 프로그램을 대폭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와 정치인들을 대폭 줄이고 그 대신 문화예술인과 스포츠인, 사회활동가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어떤지 하는 생각이다. 특히 비정치적 북한 인사들이 많이 오도록 함으로서 평화축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선은 축구, 영화, 바둑 등 상대적으로 북한이 잘 하고 있는 부문의 인사들을 초청하는 평화축전을 통해 제주포럼의 투트랙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한반도의 평화번영에 대한 얘기도 듣고, 그 분들의 재능을 선보이는 시간을 제주도민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만큼이나 제주포럼의 대중적 참여도를 높이게 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백두산에 올라, “남쪽 일반 국민들도 백두산 관광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했다. 북한 개방은 그렇게 조만간 제주관광에 도전이자 기회로 작용할 터이다. 제주도정과 제주 관광업계가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 내도 1,500만 관광객에 취해서 타성과 게으름에 처해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고 점검해야 한다. 정말 5,5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도나도 다 금강산으로, 백두산으로, 평양으로, 개성으로, 개마고원으로 가려고 줄 서는 날, 우리 제주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특히 과잉 공급된 숙박시설들의 미래는? 평소 북한 개방을 누구 못지않게 원하고 기대했지만, 막상 그런 시대가 온다고 생각하니, 좌불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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