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선언은 정전 체제와 관계없는 ‘정치적 선언‘ 일 뿐”이라고 했다.

표현은 모호했고 내용은 헷갈렸다.

문재인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발언이 그랬다.

대통령은 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곧바로 서울프레스센터가 차려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찾아 대국민 보고를 했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좋은 합의를 이루었고 최상의 환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결실을 거두었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입장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의 ‘종전선언’과 관련한 발언은 이 같은 대국민 보고 중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과정에서 나왔다.

정상회담에서는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이 합의됐다.

“남북 간에 사실상 종전을 선언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의 조치들이었다.

여기서 ‘종전선언의 개념’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이 나왔던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전체제와 관련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종전선언은 UN군 사령부 해체, 미군철수, 한미방위체제 약화 등을 겨냥한 북한의 노림수”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한 반론이었겠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

종전(終戰)과 정전(停戰)은 엄연히 다르다.

종전은 전쟁이 끝났거나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정전은 일정 상태에서 전쟁을 중지하거나 쉬는 휴전(休戰)상태인 것이다.

잠시 전쟁을 멈추었을 뿐 (광의적 해석으로는) 사실상의 전쟁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나지도 않고 잠시 쉬는 휴전(정전) 상황이 유지되는데 이에 상관없이 전쟁을 끝낸다는 ‘종전선언’은 모순이다. 앞뒤가 맞지 않다.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정치적 선언’이라고 너스레를 떨거나 교묘하게 포장하여 헷갈리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정치적 선언’이 ‘정치적 꼼수’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전쟁을 종식 한다’는 ‘정치적 선언’을 먼저하고 그것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협상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라는 ‘대통령의 종전선언 개념 정리’는 북의 술수에 넘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럴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종전 선언'을 먼저 해놓은 다음에 '정전체제' 유지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평양 정상회담을 폄훼하거나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종전선언' 속에 숨겨진 의도의 아리송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추석을 앞둬 평양에서 남북정상이 만나 공동선언을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크다. 문재인 정권차원에서는 축복이자 선물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양 정상의 깜짝 이벤트 성 행보는 높은 뉴스 밸류 였다.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이 북의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서 환호하는 평양시민에게 머리 숙여 화답하고 시민들의 손을 잡는 '겸손의 리더십’은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터다.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을 향한 ‘7분간의 대통령 연설’은 유례없는 이벤트였다. 연설내용에 담겨진 메시지에 시시비비를 걸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에 관계없이 '감동적(?)'으로 포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서로 손을 잡아 팔을 올린 두 정상의 밝고 환환 웃음은 '쇼맨십‘으로 여길 수 있다. 이 역시 '남북간 평화 꽃’을 피우게 하는 상징으로 선전 될 수 있는 이벤트다.

사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로 기록될 부분도 없지 않다.

‣한반도 전쟁위협 제거 ‣민족경제 균형 발전 ‣이산가족 문제 근본해결 ‣다양한 분야 교류협력 적극 추진 ‣한반도 비핵화, 평화터전 조성 ‣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 등 6개항의 ‘평양 공동선언’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가치 있는 의제들이다.

이들 합의가 제대로 추진되거나 이뤄졌을 경우는 그렇다.

그러나 공동선언 곳곳에 보이지 않는 암초가 도사려 있다.

다른 부분은 그만두더라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관련 경우만 봐도 북의 암수를 짐작할 수 있다.

9월 평양 선언에서 ‘북은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또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 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남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는 것이었다.

북의 김위원장은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직접 거론했다. 그래서 그의 이 같은 ‘육성 발언’에 크게 고무되어 의미를 부여하는 쪽도 있다.

그러나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는 지난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다. 이번에 이를 재탕한 것이나 다름없다.

합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은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완료한 상황이다. 따라서 엔진 시험장폐기는 무의미에 가깝다.

고정식 발사대 폐기도 그렇다.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TEL)를 터널에 숨겨두고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동하며 미사일을 발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또 공동선언에서 북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관련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깔았다.

그것도 ‘영구적 폐기‘를 확약한 것이 아니다.

‘영구적 폐기와 같은 상응한 조치를 계속 취해 나갈 용의가 있다’는 식의 애매하고 모호한 표현이었다. '상응한 조치를 계속 취해 나갈 용의'라니 무슨 소리인가.

‘종전선언’을 통한 제재완화와 체제유지, 평화협정을 노린 꼼수나 다름없다.

사실 이번 평양 공동선언은 비핵화에 관한한 지금까지의 공동선언이나 공동성명, 또는 공동합의보다 진전된 것이 없다. 오히려 이들 보다 크게 후퇴했다.

먼저 1991년 12월 13일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있었다.

‣핵무기 시험․제조․생산․보유․접수․저장․사용금지 ‣비핵화 검증을 위한 동시 상호 사찰 ‣핵통제 공동위원회 구성 운영 등이 주요골자였다.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까지 채택했었다.

이 선언은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고위급 제6차 회담에서 정식으로 발효 됐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를 파기해 버렸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북한의 핵 포기와 북미수교, 대북 에너지 공급’ 등을 주요내용으로 했던 1994년 10월 북미 간 제네바 합의도 북한이 먼저 찢어 버렸다.

2005년 9월 19일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북한 등이 합의했던 6자공동성명은 어떤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핵사찰 수용까지 포함했던 성명이었다. 역시 폐기의 주역은 북한이었다.

비핵화와 관련한 이러한 북한의 흑역사(黑歷史) 때문에 이번 남북 정상 간의 공동선언도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회담의 성과와 기대와 우려가 착종(錯綜)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는 ‘의심이 병’인 셈이다. '9월 평양공동 선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the detail)'는 말이 있다. 공동선언 합의문 곳곳에 똬리틀고앉은 '악마'가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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