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희열/ 제주대 독일학과 교수

남독일에 있는 오버암머가우Oberammergau는 예수 <수난극>을 370년 이상 공연했고 앞으로도 공연하게 되는 아주 특이한 마을이다. 이곳에 가면 마을 집들 외벽에 그려진 다양한 성화들을 비롯해서 여러 벽화가 눈에 띤다. 이곳은 암머가우 알프스 국립공원에 위치해 있고, 뮌헨에서 백 킬로미터,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퓌센과는 이십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 주민의 수는 약 오천 명을 좀 넘는데, 이들은 매 십년마다 열리는 <수난극>의 배우들이거나, 민중의 일원 혹은 합창단원, 오케스트라단원 또는 스텝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마을 전체 주민이 참여하는 전대미문의 전통을 수세기 동안 지니고 있는 이 <수난극>은 2000년 들어서도 매 십년마다 상연되고 있으며, 2020년에는 5월 중순에서 10월 초순까지 백회 이상 공연될 예정이다. 관람시간은 다섯 시간이 넘고 2010년 공연의 경우 오후 2시 30분에 시작해서 5시까지 전반부 공연(1막-5막)을 하고 3시간 쉬었다 후반부 공연(6막-11막)이 저녁 8시에 속행되어서 밤 11시에 끝났다. 처음으로 후반부 공연이 밤에 이뤄졌는데 그 반응과 효과가 좋아서 이번 2020년에도 상연시간은 비슷하게 진행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표 판매는 올해 초부터 시작되었고,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수난극> 관람이 불가하다.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방문객이 최대 오십만을 조금 넘는 정도, 그러니까 주민 수의 열배 정도까지 수용이 가능하며 이런 대규모 방문은 십년에 한번 씩 이뤄지고 있다.

이 <수난극> 전용 극장은 흥미롭게도 청중석은 실내이지만 무대가 있는 곳은 뒷면을 제외하고는 지붕만 있는 열린 공간이다. 주요 배역에는 배우가 복수로 되어 있고, 민중 장면에는 천 명 이상이 등장하고,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단은 각기 백 명씩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오천 명 주민이 직·간접적으로 모두 참여하는 것이며, 십년 단위의 상연마다 새로운 변화를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오버암머가우 남자들은 공연 몇 달 전부터는 수염과 머리를 자르지 않고 각 역할에 맞게 미리 준비한다. 평소에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다가 일 년 전 부터는 주말이나 특정한 날에 모여서 연습을 한다. 지금까지 <수난극> 배우들과 연출자, 음악감독, 무대미술과 의상감독 등이 모두 마을 사람들이었고, 이들은 적어도 이십년 이상 이곳에 산 주민들이다. 이 마을에 대대로 혹은 수십 년 째 살고 있는 주민들은 벌써 여러 차례 <수난극>에 참여한 경우도 있고, 어느 집안에서는 부자지간이나 손주와 할아버지가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오버암머가우 사람들은 자생적으로 배우고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난극>의 참여자로 십년마다 생업에서 벗어나 예술가로 전환되는 셈이다. <수난극>의 내용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 및 부활로 이뤄져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으나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수난극>에는 음악적 효과 이외에도 무대그림이 등장하는데, 서극에서 11막까지 각 막의 줄거리 내용과의 연관성을 지닌 무대그림이 내걸린다. 배우들이 그 그림 앞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군중 장면이 펼쳐지면서 적절하게 오케스트라 음악이 극적 효과를 더한다. 특히 예나 지금이나 높은 장대에 매달린 예수와 두 명의 죄인이 함께 십자가형을 받는 장면은 아주 사실적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수천 명의 군중 장면과 합창은 엄청난 웅장함을 제공한다.

그런데 수백 년을 거치면서 매 십년마다 마을 주민들 손으로만 이뤄지는 이 공연이 어떻게 가능했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일까 하는 물음을 제기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초의 <수난극> 공연은 1634년에 이뤄졌다. 그 계기는 1633년 페스트의 창궐로 마을 사람들이 다수 쓰러져가는 절망적 상황에서 오버암머가우 주민들은 하늘을 향해서 이제 페스트 전염병이 멈추게 된다면 매 십년마다 예수의 <수난극> 상연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 마을 사람들의 집단 기도가 이뤄진 이후 단 한 명도 페스트로 사망하지 않았고 그 이듬 해 약속대로 마을 사람들이 <수난극>을 선보였다.

1634년부터 네 차례, 사십년을 거치는 동안 텍스트의 기본 골격이 다듬어졌고, 이후 여러 차례 개작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수난극>이 정치·종교적 이유가 개입해서 가끔 상연이 중단되어 해를 거르는 일도 발생했고, 그러면서 공연 재개가 이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1780년/ 90년 등으로 십년 주기의 숫자로 정착되었고, 세계대전 시기를 제외하고는 중단 없이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수난극>은 2014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이렇게 <수난극> 마을축제가 지속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오머암머가우 주민들의 이 축제극에 대한 자부심과 직접 참여를 통한 주인의식, 수세기를 지속할 수 있는 기독교 문화와 전통의식, 주민들의 단결과 정체성 확립 등에 있다. 이런 가치관은 축제극을 통해서 오버암머가우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공동체 삶이 모범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마을축제 <수난극>은 이곳의 관광산업과 연결되어서 넉 달 반 동안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이 다녀가는데, 누구나 적어도 1박 2일 머물러야 이 <수난극>을 관람할 수 있다.

오버암머가우의 <수난극>처럼, 강정마을이 새로운 문화아이템 계발, 예를 들면 <평화축제>를 기획해서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이 마을을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어갈 수는 없을까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강정마을이 아니라 어느 마을이든 마을의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문화상품이나 축제를 찾아내서 마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서 매년이든 격년이든 오년이든 시차를 두어서 지속적으로 공연하거나 보여줄 수 있다면, 문화의 불모지 제주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고 관광과 연계된 중요한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 똘똘한 문화아이템 하나가 고부가가치를 크게 창출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제는 제주에서도 단순히 스포츠나 자연에만 의존한 관광산업이 아니라 문화산업이 접목되어서 제주를 찾아오고 싶게끔 만드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제주도가 중심이 돼서 세계섬문화축제, 국제관악제 등을 진행했으나 대체로 일회성 성격이 강하고 무엇보다도 제주의 비용이 너무 많이 지출되었다. 그러나 축제가 유명하고 의미를 지니게 되면 오버암머가우 축제극에서 보듯이 주최자가 아니라 방문자가 모든 비용을 지출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그렇게 되려면 관은 철저하게 지원부서로 물러나고 민이 중심이 돼서 만든 문화상품을 평가하고 지원하면서 자생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일관성을 전제로 한다 하더라도 어느 한 문화 아이템이 계발·정착되려면 수년이 걸리기도 할 것이다. 또 불가피하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원하는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가장 제주에 적합한 아이템을 하나씩이라도 계발·정착할 수 있다면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훌륭한 문화 아이템 하나만 있어도 고부가가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