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나는 평소에 우리 교육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일이라고 냉소적으로 정의하곤 한다. 고등학생이야 대학 입시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초등학생마저도 학교 수업 마치면 학원 다니느라 놀 틈이 없다. 우리는 호이징가 말마따나 ‘노는 인간’(호모 루덴스)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놀아야 제대로 사람이 되는데 이 진리를 우리는 정면으로 어기면서 산다.

인간은 친구와 어울려 마음껏 뛰어놀면서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즐겁게 배운다. 그러면서 팔, 다리 등 몸을 이루는 기관을 자유자재로 쓸 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를 익힌다. 그러므로, 놀지 않고 공부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영어 속담은 그럴듯한 데가 있다. 학교에 갔다 와서도 또 학원에 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시 공부하는 요즘의 아이를 우리 어른들은 생각과는 정반대로 바보로 만들고 있다.

아이는 한곳에 가만있지 못하는 강아지나 병아리와 똑같다. 동물이다. 우리 어른들은 뛰어노는 걸 본능적으로 즐기는 아이들에게 교육이랍시고 꼼짝하지 못하게 우리에 가두어 놓고는 뭘 자꾸 들이민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겠는가. 아이들이 안 미치는 것이 이상하다. 놀기를 즐기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정을 부정하고서 일방적으로 의지와 노력만 강조해서는 잘되는 법이 없다. 억지로 시켜서 일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억압된 것은 되돌아온다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명제는 삶 일반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물론,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의 마음도 편할 수는 없다. 조사 결과를 보면, 부모는 자식이 실제보다 공부는 덜 하고 잠은 더 잔다고 여긴단다. 그래서 아이는 못 놀아서, 부모는 공부를 못 시켜서 다 불행해진다. 우리 어른들이 행복해지자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아이의 천성대로 즐겁게 뛰어놀게 하는 대신에 자식에게 강요하는 공부를 스스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학부모에게 교육 얘기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얼마나 공부가 좋으면 아이를 보기만 하면 공부하라고 다그치냐면서 왜 그런 걸 자기가 하지 않고 자식에게 맡기는 거냐고 묻는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신경 써서 아이를 괴롭히고 더 나아가서 스스로 괴로워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하자.

그러면 어떻게 놀릴까?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생활의 구체를 직접 느끼도록 하는 일이다. 나무도 심고 상추도 씻고 김치도 직접 담가 봐야 한다. 내 몸을 움직여서 세상과 관계를 맺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감각기관을 직접 움직여서 세계와 소통해야 성숙해진다. 문학이나 예술은 이런 경험이 없고서는 창조하거나 감상할 수가 없다.

놀이 가운데서 자연과의 교감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다. 문명의 발달은 우리를 자연과 멀어지게 한다. 과거에는 걸어 다니던 곳이었는데 이제 웬만해서는 차타고 간다. 여름에는 땀 흘리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걸 못 견뎌서 에어컨을 튼다. 아이들의 놀이도 스마트폰이 있어야 되는 것으로 바뀌어, 여럿이 어울려 온몸을 쓰는 과거 놀이와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전에 비해 훨씬 펀하게 살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렇게 자연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숲이나 계곡에 들어서면 우리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깨끗해진다. 잠시나마 자연과 일치된 리듬을 경험하는 데서 나오는 기분이다. 자연의 치유력은 어려운 설명을 듣지 않고서도 바로 느껴진다. 숲길을 걷고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보자.

자연과 교감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올여름은 가히 폭염 지옥이라 할 만했다. 이런 자연 현상의 원인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미친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소를 키우고 상품으로 팔 농작물을 심으려고 숲을 마구 베어 내고, 너도 나도 자동차를 몬다. 자연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인간 중심주의가 다른 생명을 무시하고 학대한 결과로 자연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

자연은 우리 인간의 무지를 교정해 준다.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안에서 여러 존재가 삶을 이어 간다. 관계와 다양성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준다. 이런 데서는 우리 인간은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한 구성원일 뿐이다. 자연에서 느끼는 근원적인 만족감은 이런 데서 나온다. 우리가 자연의 연속성을 이루는 일부라는 점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오만과 자만심에 대한 해독제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세상을 배운다. 이런 구체적인 경험이 행복의 씨앗이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뻐근해지는 체험 하나 없는 채로, 고작해야 시험 성적이나 걱정하면서 학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와서 자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은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이렇게 지겨운 공부에 멍들어 정작 공부다운 공부를 해야 할 때가 되면 손을 놓아 버린다. 이게 우리 대학 교육의 슬픈 현주소다. 아이를 놀리자. 자연과 만나게 하자.

교육부 장관이 바뀌었다. 장관은 우리 교육의 기본 철학을 무엇보다도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경쟁을 부추기고 동료 학생을 이겨야 하는 교육 현실에서 아이가 즐겁게 노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 행복의 터전이 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에 겪은 대로, 경쟁을 전제로 한 대학 입시 문제를 두고 공론화한다고 좋은 결론이 나올 수는 없다. 이 전제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아이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려면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먼저 논의하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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