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강정을 찾았다. 헬기로 와서 헬기로 갔다. 그 수직의 이동에 강정의 목소리는 가닿지 못했다. 수직과 상승의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신'들만의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정 커뮤니티 센터에서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때 주민들의 목소리는 경찰에 고착됐다. "문재인 대통령님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사과입니까."  강정해군기지 반대 싸움에 앞장섰던 강동균 전 마을회장은 철통같은 경찰의 방어막 앞에 주저 앉았다.

그 시각 문재인 대통령은 주민들과 만나 마이크를 잡았다.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한 사람들은 2007년 4월 이전부터 강정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었던 '순수' 주민들이었다. 그 '순수'를 자처한 것은 공교롭게도 마을 주민들이었다.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평화 활동가들은 만 10년을 살았어도 향약상 '주민'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누고 갈린 주민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야단 많이 맞을 각오를 했는데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선택된 환대 앞에서 대통령은 환하게 웃었다. 

잘 짜여진 각본이었다. 언론은 대화가 예정된 시간을 넘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안보라 해도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키지 못해 유감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편집된 화면을 통해 몇 차례 반복되었다. 마을 회의에서 한 차례 부결된 국제관함식 개최를 번복하게 한 것은 청와대와 해군이었다.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지 못해 유감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자리에서 말해졌다. 제주도는 이날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포함한 건의 사항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커뮤니티 센터로 향하지 못한 강정의 목소리는 도로에서 부서져갔다.

한 주민은 해군기지와 일주도로를 잇는 도로를 '명품 도로'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이 블록체인과 명품 도로 건설을 건의하는 동안 문정현 신부의 몸은 경찰이 가로막은 도로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국제관함식이 열리기 전 대통령의 동선을 미리 점검했던 청와대 의전비서관 탁현민 선임행정관은 강정 마을에서 식사를 했다. "위선이라는 말 아세요? 기만이라는 말 아세요." 강정의 외침은 그가 피우는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국제관함식은 '성공적'이었다. 11일 YTN의 앵커는 방송에서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관함식이 이번이 세 번째라며 해군 국제관함식 사상 역대 최대인 만큼 화려한 볼거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앵커의 옆에는 예비역 대령과 국방부 출입기자가 함께 했다. 

'훌륭한 각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강정마을 상처 치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제주도를 평화의 섬이라고 불렀다. 해상사열을 받기 전 해군 함정에서 한 연설이었다. 이념 갈등으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강인한 정신으로 원한을 화해로 승화시킨 곳이라고 했다. 제주 4.3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제주가 화해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화해를 강요한 때도 있었다는 '사실'이 대통령의 연설에 낄 자리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해군기지를 전쟁의 거점이 아니라 평화의 거점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해군기지를 평화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할 때 강정동 2797-1번지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주민들의 행진은 가로막혔다.

해군기지 정문에서 사열이 이뤄진 함정까지 거리는 가깝고도 멀었다. 대통령의 연설은 경찰 고착으로 꼼짝도 못하는 주민들에게까지 전해졌지만 주민들의 비명은 해군기지 정문을 넘지도 못했다. 관함식을 계기로 국민과 함께 하는 해군이 되어달라는 대통령의 당부는 공허했다. 

당부. 말로 간곡히 부탁함. 대통령은 군통수권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군통수권자의 위임을 받은 해군은 작전처럼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한 해군 대령은 강동균 마을 회장에게 술에 취해 "북한 김정은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세 번 만났다. 함께 웃고 손을 잡고 백두산을 오르기도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군인의 일탈에 응당한 책임이 지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막말을 한 대령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령의 유감과 대통령의 유감은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6년을 지나 만난 유감이 이제는 당부로 이어졌다. 

이번 국제관함식은 하나의 '작전'이었다. 해군과 경찰은 대통령 예상 동선에 차마 '불경'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펜스를 쳤다. 펜스 뒤에서조차 행진은 자주 가로막혔다.

그렇게 대통령은 일부 주민들의 목소리만 듣고 떠나갔다.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평화활동가들의 목소리.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외롭게 싸웠던 강정 주민들의 눈물을 볼 시간도, 볼 의지도 없었다.

11일 1시 30분 제주공항 도착, 2시 관함식 행사장(헬기 이동) 4시 20분 강정 커뮤니티 센터 5시 30분 강정 출발(헬기 이동) 5시 50분 이도.

대통령의 일정 속에서 정작 강정은 없었다. 헬기를 타고 온 문재인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떠났다. 강정의 외침은 그 수직의 상승을 잡을 수 없었다.

*탁현민 선임행정관에 대한 발언은 엄문희 페이스북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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