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시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오래 전 지식인의 필독서인 <사상계>에 민족의 스승이신 고 함석헌 선생께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셨다가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자유당 시절 여야정쟁으로 정치가 시끄럽고,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져, 이러다가는 나라가 제대로 유지될까 걱정하여 쓰신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연세대학교의 김형석 명예교수의 ‘백세를 살아보니’에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흑백논리라고 지적하셨다. 진흑(眞黑)과 진백(眞白)은 존재할 수 없고 흑과 백 사이에 무수한 회색이 있는데, 이걸 백이 아니면 흑이라고 결론 내리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틀리다고 단정하여 공격하니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녹지병원 공론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 하며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니 이래서야 민주주의가 과연 뿌리 내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민주주의는 토론을 통하여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을 하는데, 토론을 함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 중 나와 다른 점을 찾아내고, 과연 어느 의견이 옳은 것인가를 토론을 통하여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생각조차 않는다면 어떻게 올바른 토론이 될까?

필자는 민주주의를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 많이 확보하기 게임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든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와 다른 의견일 경우, 어찌해서 내 의견이 옳은 것인지를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상대방의 의견에서 잘못된 부분을 찾지 못 하면 내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녹지병원 개원을 반대하시는 분들의 의견 중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들을 지적하고 반론을 부탁하였으나 아무도 제대로 된 반론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그러고서는 기존 주장만 되풀이 하셨다. 예를 들면 영리병원 때문에 미국에서 ‘식코’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미국보다 투자개방형 병원들이 훨씬 많은 다른 OECD 국가들, 예를 들면 호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멕시코, 네덜란드, 스페인, 터키 같은 나라, 특히 네덜란드에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72.6%나 되는데, 이런 나라에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제대로 된 대답을 못 하셨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유독 미국에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긴 이유는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변호사 숫자가 많아서다. 이 많은 변호사들이 자기 밥벌이를 하느라 소송을 부추기니 병원에 지불하는 보험사들의 보험금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이것을 보충하느라 보험료를 올리니 그걸 감당하려고 의료수가가 올라가며, 의료수가가 올라가니 의료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그러니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의료보험에 들 수 없고, 의료보험에 안 들어 있으니 국공립병원에서도 병원비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진료를 기피해서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미국처럼 변호사가 많지 않으니 의료소송이 많이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의료수가도 그리 높지 않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도 지금과 같이 변호사가 증가하면 국가적 재앙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다른 부분에서도 그렇겠지만 특히 의료 분야에서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의료소송이 잦아지면 배상금을 비롯한 소송비용이 증가하고, 그리되면 지금과 같은 의료수가로는 병원들이 망할 수밖에 없는데, 국가 입장에서는 민간병원들이 망해서 국 공립병원으로 대치하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드니 국가가 민간병원을 망하게 할 수 없어서 결국 의료보험수가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되면 아무리 국민개보험제도라 하여도 보험료를 낼 수 없는 국민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고, 결국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는 국민들은 영리병원이 없어도 ‘식코’와 같은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또 전국민의료보험제도에다 모든 의료기관이 강제로 의료보험을 적용받고 있어 의료수가가 정부가 정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국민 의료보험제도도 없고, 의료수가가 의료기관 자율에 의해 결정되는 미국을 비교하는 것이 부당하고 억지임에도 한사코 연결 지으려는 태도는 민주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도 지구는 평편하므로 서쪽으로 계속 가면 큰 폭포에 떨어져 죽는다고 우기며 콜럼부스의 항해를 방해하던 중세의 유럽 사람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또 개원이 허가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벌어질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한데도 아무 근거도 없이 녹지그룹이 소송을 걸지 않을 것이며, 설사 소송이 걸리더라도 제주도가 이길 것이라고 무책임한 주장을 계속하였다. 만일 소송이 벌어지고 패소하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데, 소송에 이긴다고 주장하신 분들이 그 책임을 질까? 필자가 보기에 그 책임은 오롯이 제주도민들이 지게 된다. 미래예측을 정확히 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논리에 입각하여 추론한 경우라면 설사 그 예측이 틀리더라도 책임을 묻기가 어렵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도 틀리는 예측을 주장하여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냉정한 사고(思考)를 해야 한다. 이번에 반대하신 분들 중에는 “무조건 중국자본이니 싫다”고 하신 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다. 중국 사람이라고 다 나쁜 사람이 아니듯이 중국자본이라고 다 나쁜 자본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입견을 가지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데 많은 도민들이 생각을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즈음 시민단체들이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든가 ‘반대를 위해 반대하는 시민단체’라는 오해를 많이 받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단체는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그 기저에 치열한 토론이 빠진 주장이 한몫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빨리 시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시민단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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