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기사는 백여명이 모인 "한우를 사랑해요"라는 출판기념회에 대한 이야기만을 쓰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둔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성대한 출판회를 갖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이 그렇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출판사 '논형' 소재두 대표가 이날 오사카출판기념회에 참석해서 꺼낸 첫 인사말이었다.

70년 전 1948년, 농업평론가이며 축산학자인 마쓰마루 시마조가 쓴 '조선우(朝鮮牛) 이야기'를 재일동포 2세인 이해진 씨가 한국어로 '한우를 사랑해요'라는 제목으로 논형출판사에서 금년 4월(정가 13,000원) 발행했다.

일본인이 쓴 책을 한국에서 읽기 바라는 기대에서 한국어로 번역했는데, 일본 오사카에서 가장 번화한 난바 도돈보리호텔에서 출판 후, 반년이 지난 10월 14일 출판기념회를 갖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출판하게 된 동기는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목련회'라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서 이야기가 나와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연단 뒷벽에 걸려 있는 간판과 출판기념회순에도 "한국어판 <한우를 사랑해요>"
"일본어판 복간 <조선우 이야기> 동시출판기념회"

"구 국철(舊國鐵) 철도 후쿠지야마선 개수공사(1929년). 코베수도건설 중(1914-1917년) 순난자(殉難者) 추도비건립을 위한 회"라고 3행에 나눠 써 있었으며, "주최 '목련회"였다.   

목련회 사무국을 담당하고 '한우를 사랑해요'를 번역한 이해진 씨가 '목련회'라는 모임의 목적과 그 동안의 활동을 간단히 설명했다. 

"저 다음에 '목련회' 대표 김예곤 회장님께서 나오셔서 직접 경험하신 활동들을 자세하게 들려주시겠습니다."

'목련회' 대표 김예곤 회장

"제가 이렇게 많은 자료들을 들고 나오니 설명이 길어지리라고 생각하실런지 몰라도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예곤 목련회 대표가 연단에서 인사를 마치고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출판기념회를 갖게된 '한우를 사랑해요"의 의미도 크지만 오늘 이 모임은 약 25년 전의 이야기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내용을 잘 모르는 참석자들은 호기심 속에서 김예곤 대표를 쳐다보았다. 

"1929년 3월 28일자 코베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턴넬공사를 하던 조선인 노동자 윤길문, 오이근 씨 두 사람이 다이너머트 폭발 사고로 죽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오사카 쪽에서 생산되는 물자와 군수품을 동해 쪽으로 운반하기 위해 철도 개설이 필요했다. 이 공사를 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온 조선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후지야마(福知山)선인데 무코오(武庫)강이 흐르면서 굴곡이 심해 산사태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이 턴넬 공사에 조선인 노동자가 많이 투입되었는데 사고가 발생했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동포 정홍영 씨가 조사 끝에 이 자료를 발견하고 1993년 곤도오 도미오 씨와 정확한 사고 현장을 알기 위해 답사를 시작했다.

그후. 두 사람은 매년 3월 26일 현장에서 조촐한 제사를 치뤘으며, 2000년에 72세로 돌아가신 정호영 씨가 안 계셔도 곤도오 씨는 빠짐없이 찾아가서 제사를 치르었다.

이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자 김예곤 씨 부부와 일본인들도 참가하게 되었으며 필자도 2009년에 참가하여 그 기사를 제주투데이에 게재하기도 했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국의 턴넬공사 중 불의의 죽음을 당한 두 사람에 대해 식민지 국가의 노동자로서, 어디에서나 흔히 일어났던 일들의 하나라고 일축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 신문에서 이를 보도하고 그후 소문처럼 전해 내려온 이 사실을 64년만에 재확인하고 계속 제사를 지낸 한일 양국의 민간인의 정성은 대단하다.

이러한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제사 참가자가 늘어났는데 김에곤 회장의 노력이 컸으며, 필자도 김예곤 회장이 권유로 참가했었다.

매년 제사 참가자는 계속 참가하는 사람과 이 소식을 듣고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사만을 치를 것이 아니라 추도비를 세우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 진 모임이 "목련회"였으며, <추도비건립회>를 정식으로 발족 시켜서 대표에 곤도오 도미오 씨와 함께 목련회 김예곤 회장이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추모비 건립회에서는 두 사람만이 아니고 1914년과 1915년에 코베 수도 건설 공사 중에 사고로 죽은 김병순, 남익삼, 장장수 씨도 이 추도비에 같이 넣자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합의를 보았다.

추도비건립회 발기인은 모두 29명으로서 재일동포가 19명 일본인이 10명이다. 필자도 목련회원으로서, 발기인의 한 사람이다. 과거 식민지시대를 비난하기 위한 추도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한일 우호의 상징성의 추도비이다.

추도비건립 협의 과정에서 "조선우 이야기"의 책 이야기가 나오고 재일동포 소년 소녀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내용이 좋아서, 한국에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하자고 해서 출판하게 되었다.

이 출판기념회에서 추도비건립에 대한 이야기도 참석자들에게 널리 알리자는 취지도 곁들인 자리여서 "한우를 사랑해요" 출판기념회 모임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설명을 마친 김예곤 회장이 곤도오 도미오 씨를 소개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돌아가신 정호영 씨와 사고 현장을 알아내고 계속 제사를 지냈던 곤도오 도미오 씨가 참석하셨습니다. 그 분이 말씀을 듣기로 하겠습니다."

일본 중학교 교사로서 효고현 재일외국인 교육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셨던 곤도오 도미오 씨가 연단애 나와서 말을 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돌아가신 날이어서 잘 기억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사를 치르는 날이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날과 겹친다는 사실을 이날 필자는 처음 알았다.
곤도오 씨는 그 동안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추도비건립회 모금 활동 비중을 두었다. 추도비건립 예정지가 주변 공사로 1920년 봄에 건립 예정이라는 것과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으니 협조를 부탁했다.

모든 모금 활동이 그렇다. 몇몇 독지가에 의해서 목표 달성이 가능한 금액일지라도 그 취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그 의의를 더욱 뜻깊게 하기 위한 알림이 더욱 중요하다. 바로  십시일반의 정신이다. 

이 날은 또 하나의 추도비 이야기도 강건영 씨 소개로 알려졌다. 정유재란(1597-1598) 당시 일본에 끌려오던 조선인 베틀짜는 소녀 2명 중, 1명은 배에서 투신 자살했고 1명은 시코쿠 고지현에 정착했다.

그녀가 갖고 있는 기술을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그녀는 칭송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가 살았던 집 뜰에는 무궁화가 많이 심어 졌다고 했다.

그녀가 죽은 후, 조선에서 데리고 온 오타니 가족이 묘가 있는 절에 묻었었다..이 사실을 안 오다니 4대손은 그후 묘비를 세웠고, 1981년에는 "조선국녀의 묘를 지키는 모임"이 발족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오사카부 야오시에 있는 일본 교회에서는 그 소녀의 고향 찾기를 진행 중이며, 고향을 알았을 경우에는 그 고향의 교회와 합동으로 소녀에 대한 위령예배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보고 속에 진행된 "한우를 사랑해요"라는 출판기념회였는데 이 책은 현재 일본대학 축산학과에서  많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필독 서적으로 권장하고 있는데 고전적 명저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번역하면서 원문 중에 중복되는 곳은 생락하여 읽기 쉽게 했는데 80세를 넘은 이해진 씨는 동포 2세인데 어릴 적에 이런 노래를 들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우리 집 엄마소는 팔려간대요/ 산 너머 바다 건너 일본땅으로/ 소 장사를 따라서 팔려간대요/라는 동요였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 소 엄마 닮았네/라는 동요를 어릴 적에 불렀던 필자는 소가 일본땅으로 팔려간다라는 동요는 충격적이었다.

식민지시대 정당한 거래로 매매가 성립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에 팔려온 한우는 일본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렸으며 그 과정을 동화처럼 저자는 쓰고 있다.

한우의 대해서 일제시대, 조선, 고려, 삼국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서 당시의 사육 관계와 한우의 기원만이 아니고 말과 비교하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한우를를 사랑하고 또 정성껏 키우는 조선인들의 생활까지 조명하고 있다.

한우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필자는 동요만이 충격적이 아니고 그 내용까지 새로움의 연속이어서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한우 입문서"이며 소년 소녀만이 아니고 어른이 읽어도 가슴 뭉클할 동화책이기도 했다.

저자 마쓰마루 시마조(1907-1973)는 효고현 출신이며 도쿄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 축산과장을 역임,.1945년 일본 패전 후, 축산산업과 '새 농촌육성운동'을 지도. 동포작가 김달수, 이은직 씨와도 친교를 갖고 한일우호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 

표지는 동포 화가이며 목련회 회원인 김석출 화가, 본문 중에 삽입된 그림은 동회원 김정숙 화가가 담당했다. 한국어 출판에는 한일 양국에서 마당발로 소문난 목련회 회원이며 저널리스트인 카와세 슌지 씨가 출판사를 소개했다. 

다른 내용이지만 한우에 대해서 어느 잡지에 게재된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필자가 쓴 제주투데이에도 인용한 기사이다.  

1938년 장편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1892-1973)여사가 1960년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의 고궁들과 경주 관광을 마치고 귀국하는 펄벅 여사에게 기자들이 질문을 했다.

"이번 방한 중에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펄벅 여사가 대답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지게에 짐을 지고 소를 끌고 가던 늙은 농부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짐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올라 타서 소를 모는 광경만을 보아 온 이 작가에게는 천년 신비의 석굴암보다 수 백년의 고궁들보다 소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짐을 나누어 진 농부의 인간적 배려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준 것이다. 그야말로 '한우를 사랑해요'이다.

매년 3월 26일 제사를 치르는 기사 "조선인 제사하는 일본인(2009. 3. 31)" 기사와 다카라쓰카시에서 거주하면서 재일동포는 물론 외국인 권익을 위해 활동하시는 김예곤 회장의 강연 "타카라쓰카시 김예곤 씨 인권 강연(2012. 2. 5)"을 제주투데이에 썼었는데 관련 기사로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72877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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