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 하귀2리의 길고양이들.(사진=김재훈 기자)

다양한 곳에서 '테라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아로마테라피, 컬러테라피, 그림책테라피, 스파테라피, 타라소테라피(해수 요법), 파라핀테라피, 크라이오테라피(극저온 노출 요법)... 테라피는 본래 치료요법을 뜻하는 의학용어다. ‘디톡스detoxification’처럼 ‘테라피’ 역시 의학계에서 사용하던 용어다. 현재는 각종 상품 광고 수단으로 사용되며 본래 의미는 퇴색했다. 그렇다고 해서 각종 테라피 개발자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테라피’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의학적 치료법이 아닌 보완대체요법 정도로 이해되고 있다.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모든 테라피들이 저마다의 효과를 장담하고 있다. 기왕 테라피가 넘쳐나고 있으니 테라피가 하나 더 는다고 해서 별 티는 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제안한다. 길고양이 테라피. 물론 과학적 효과를 장담하진 못한다. 이 테라피의 효능을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현혹할 생각도 없다. 고양이와 테라피.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애월읍 하귀2리에서 만난 고양이.(사진=김재훈 기자)

고양이를 안거나 쓰다듬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동감할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주택가 담벼락 위에서 늦가을 햇볕을 쬐며 졸고 있는 식빵 같은 노란 고양이를 한참 바라 본 적은 없는지? 슬며시 웃음을 짓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미 길고양이 테라피의 효과를 본 셈이다. 물론 고양이라면 기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햇볕 아래에서 졸고 있는 식빵냥도 좋아하지 않고 만지기도 싫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별 수 없다. 어느 약장수든 약을 파는데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고 싶다. 길고양이 테라피는 무료다.

하귀2리에서 만난 고양이.(사진=김재훈 기자)

힐링, 디톡스, 테라피... 좀처럼 믿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믿는 사람은 치유되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돈만 날리는 유사과학이라는 새로운 신앙. 그러나 어쩌랴, 이미 ‘길고양이 테라피’로 이 코너명을 정해버린 것을. 코너명으로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어쩌라는 고양’, ‘이래도 되는 고양’, ‘전지적 고양이 시점’, ‘길냥이가 말했다’... 차마 전부 다 옮겨 적지는 않는다. 밝히지 않은 것들은 훨씬 더 유치했다는 사실만 고백한다. 다시, 왜 길고양이 테라피인가. 솔직하게 답한다. 나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다. 그리고 이 연재를 통해 길고양이를 소개하는 일이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길고양이들의 삶이 조금 나아질 수 있다면!

하귀2리에서 만난 고양이. 앙투와네트(?). 시종일관 품위를 잃지 않는 표정, 통통한 앞발을 볼 때 이 구역을 주름잡고있을 것으로 추정된다.(사진=김재훈 기자)

이번에 소개하는 고양이들은 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에 살고 있다. 가장 크고 하얀 녀석이 이 동네를 주름잡고 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적다. 자기 자신의 위상을 뽐내는 걸음걸이를 볼 때 이 동네 고양이 반상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말을 걸면 대답도 한다. 한두 번 답해주고는 외면한다. 자기 자신의 위상을 인식하고 있는 태도다. 말을 걸 때 대답하는 것을 보면 외출냥이거나 마당냥일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인간이 붙여준 이름도 있을 법하다. 물론 자기 자신은 (잘)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그 이름을 붙여준 인간들은 작명에 감탄했을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으니 편의상 이름을 붙여본다. 앙투아네트.(코너명을 지을 때 이미 작명의 한계를 체감하고 충분히 비통했으니 양해해주시길) 작은 녀석들 중 몇은 앙투와네트의 새끼일 가능성이 높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는 귀에 표시를 한다), 체격이 엇비슷한 어린 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주민도 다른 고양이들은 앙투와네트가 낳은 애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애들이 예쁘네요,라고 말했지만 그 주민의 표정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낮은 담벽으로 이어진 집들과 조그만 개천(고성천)이 흐르는 주변환경. 고양이들에게 퍽 좋은 환경이 아닐까 싶다.

길고양이들에겐 인간이 가장 위협적이다.(그 주민이 고양이들에게 위협적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심장사상충, 고양이에이즈라 불리는 고양이 면역결핍 바이러스가 고양이에게 치명적이지만 인간도 그에 못지않다. 올해 4월 서귀포시 삼달리에서 귀를 도려낸 고양이 세 마리가 구조됐다. 귀 뿐만 아니라 눈꺼풀에도 상처를 입었다. 마치 쌍꺼풀을 만들겠다는 듯 눈꺼풀에 상처를 냈다. 화상으로 보였다. 제주동물보호센터에서 그 고양이들을 보살폈지만 한 마리는 결국 죽고 말았다. 물론 이는 극단적으로 끔찍한 경우다. 그러나 인간은 매일 같이 길고양이들을 죽이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적으로 1만7320건의 로드킬이 발생했다. 고라니가 1만1443마리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고양이다. 3066마리. 그러나 이 통계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제주도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문의해 보았다. 매해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통계 자료가 있는지. 그러나 자료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환경부는 어떤 자료를 근거로 로드킬 집계를 발표한 것일까) 도내 로드킬 관련 부서도 일원화 되지 않았다. 노루 같은 야생동물과 고양이와 개 등 유기동물로 분류되는 동물들의 로드킬을 관리하는 부서도 다르다. 제주시, 서귀포시로 접수되는 경우도 있고 읍면 단위에서 신고 받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된 통계 자료가 없는 이유다.

하귀2리에서 만난 고양이. 세모.(사진=김재훈 기자)

하귀2리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소개한다. 하귀2리의 한 카페 입구에서 만났다. 이 카페는 고양이 밥그릇을 마련하고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제공하고 있다. 세 마리 정도가 밥을 먹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세모’. 카페 주인이 붙인 이름이다. 얼굴이 세모라서 세모라고 붙였다. 올해 카페 공사를 하던 때부터 보였다고 한다. 세모는 사람의 접근을 1m 정도의 거리까지 허용한다. 사색하는 듯한 표정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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