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시인 문충성 선배님 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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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시인 문충성 선배님 추도
  • 제주투데이
  • 승인 2018.11.04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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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제주투데이에 문충성 선배님의 별세 기사가 실려서 깜짝 놀랐다. 몸이 불편하시다는 것은 전에부터 알고 있었지만 문충성 선배님께서 제주를 떠나신 후에는 뵙지 못했었다.

2011년 9월 말에 시집 <허물어  버린 집>을 보내 주셨는데 11월 20일 제주투데이에 <시인 문충성 시집 '허물어 버린 집'> 기사를 썼다. 9월에 인편에 보낸 시집을 11월에야 받게 돼서 축하와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고 사과 전화를 했었다.

그런 것 전혀 개의치 않다면서 오히려 기사를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고, 지금은 건강 상태가 아주 안 좋지만 언제 제주에 왔을 때 식사 같이 하자는 말을 들었다. 이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문충성 선배님이 육지로 이사를 갔기 때문에 그후 뵙지 못했다.

문충성 선배님은 제주 제일중학교 3회이시다. 필자는 14회인데 만날 때마다 김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경어를 쓰시기 때문에 11회 후배인 저에게 말씀 낮추시라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고 끝까지 경어를 쓰셨다.

20년 전인 1998년 10월에 시인 김시종 선생님 부부가 50년만에 제주에 가실 때 필자가 동행했다. 김시종 시인은 당시 일본에서는 저명한 시인으로 잘 알려졌는데, 제주는 물론 한국에서는 김시종 시인이 누구시지(?)였다. 

김시종 선생님을 이 기회에 제주 문인들에게 꼭 소개 시켜야 한다는 각오을 필자는 단단히 하고 있었다. 문충성 선배님과 일중과 오고 동창이시며 죽마고우라는 오현고등학교 오사카총동창회장을 맡고 필자가 가깝게 지냈던 문병식 선배님께, 문충성 선배님께 꼭 제주 문인들과 만날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제주에 갔을 때 김시종 선생님과 필자는 탑동 횟집에서 문충성 선배님과 당시 제주작가 회원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문충성 선배님은 이 자리에서 제주작가 회장으로서 그해에 발행하는 '제주작가' 창간호에 김시종 시인 특집을 게재하자고 제안해서 필자가 쓴 '내가 본 김시종'도 같이 실렸다.

1998년 12월에 발행된 '제주작가' 창간호가 시인 김시종 이름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활자화 해서 알려졌으며, 그후 김시종 선생님과 제주에 갔을 때는 문충성 선배님을 같이 만나 뵈웠었다.   

언제나 깔끔한 차림새에 굵은 저음의 문충성 선배님을 뵈운 횟수는 적지만 강렬한 인상은 잊을 수 없다. 새까만 후배이니까 말 놓으시라는 필자의 몇 차례 요청에도 극구 반대를 하고 전화상으로도 깔끔한 언어 예의를 갖추시기 때문에 필자는 언제나 긴장했었다.

문충성 선배님의 오사카 방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오시라고 했는데 일본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언제 꼭 온다고 하셨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마음의 빚처럼 느껴진다.  

문충성 선배님께서 처음 만나는 김시종 시인과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김시종 특집을 제안하고 게재한 결단력과 실천의 그 고마움을 "우물 물을 마실 때는 우물을 판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필자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문충성 선배님 시집 <허물어 버린 집>에서 '추석'이라는 시를소개한다. 이 시집으로 문충성 선배님은 2012년 조병화 시인이 제정한 '제22회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추석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 먼 길
잘 찾아 오셨을까 카페리 편으로

목포로
큰손녀 사는 천안으로
작은 손녀 사는 일산으로
손자 사는 의왕사로 잘 찾아오셨을까
아니면 비행기 편으로 그냥 제주 바다 건너와 코레일처럼
김포에서 아무데도 안 들리시고
곧장 오셨을까
오전천 시냇가 모락산 자락 흐르며
여울도
개울도
만들고
쉰 목소리 가다듬으며 하얀 물소리 지어낼 때까지
폭우에 잔 가지들 부러지고
긴 숨 몰아쉬다 투욱 투
열매 가득 찬 밤송이들 떨어진다
사람들은 그 큰 뜻 안다지만 밤송이를 주어다
길가에서 구워 판다 그 돈으로
한 왕국 이룩하기에 버겁다
초라하게
돌아가는 길
할아버지 할머니들 폭우에 찢긴 
들과 논밭과 과수원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는
집 보며 가셨을까
제주 섬에도 비는 많이 내렸다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시는
묘지는 안녕하신지
차례 지낸 뒤
마당귀에 나와
여울 소리에
덧없는 삷의 찌꺼기들 씻어 낸다
패랭이꽃들 무리지어 연보라 빛으로 웃고 있는
빈 가을 밤
나비 한 마리 날지 않고
살아남은 딱새 네댓 울음 운다
밤나무 가지에 나 앉아
이 세상은 살만한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둥근 추석 달은 보이지 않지만

시 '추석'의 전문이다. 귀향이 아닌 이향(異鄕)으로 전통 민족 차례를 위해 자식들을 찾아가는 노부부의 애잔한 모습을 잔잔히 묘사하고 있다. 우리 전통 제례를 지내기 위해 부모가 영원히 잠든 묘지가 있는 고향이 아니고,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애처로운 현시대의 아이러니이다.

시인 개인의 보편적 추석 쇠기일런지 모르지만 읽는 독자들에게 삷의 안쓰러음을 안겨주고 있다. 시를 쓰신 시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다시 읽고 보니 더욱 그렇다.

시인 문충성 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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