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떠났다.

자신은 뼛속까지 영화인이라고 늘 얘기하던 故 신성일이다.

그가 지난 4일 오전 2시 30분 전남의 한 병원에서 향년 8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故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맨발의 청춘' '장군의 수염' '별들의 고향' '길소뜸'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기며 당대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지금까지 약 500여 편 넘는 작품의 주인공을 맡으며 '청춘 스타' 이미지를 굳힌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 굵직한 존재감을 빛내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영원한 로맨티스트로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평생 몸 바쳐 온 전무후무한 연기자였다.

또한 그는 그동안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가 살면서 행했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거리로 회자되곤 했다.

지난 2017년 6월, 그는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삶에 대한 열정을 내비쳐온 그는 투병 중에도 각종 방송프로그램 출연 및 영화제 행사 등에 모습을 드러내 왔다. 특히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련된 기자간담회 자리에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故 신성일은 지난 60년 가까이 배우 활동해온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영화를 하는 사람은 딴따라가 아니다"라고, 변하지 않는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소신을 드러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0월 부산에서 지인들과 함께 (앞줄 왼쪽 두번째 소설가 김홍신, 故 신성일, 필자)

필자도 고인이 폐암 진단을 받기 몇 달 전 우연한 기회로 부산에서 지인들과 1박2일을 함께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 과거 고인과 16대 국회 동료의원으로 활동했던 소설가 김홍신씨도 같이했다.

그날 같이 운동하고 식사와 함께 가벼운 와인을 마시며 늦은 시간까지 고인이 살아 온 영화 같은 인생사를 들을 수 있었다.

엄앵란과의 결혼, 운명처럼 다가온 어느 여인과의 러브 스토리, 한국 영화 이야기, 정치에 입문하게 된 이유, 심지어 한 때 구속 수감된 사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구수한 입담으로 계속 이어졌다.

함께 했던 내내 나에게 다가온 그의 이미지는 너무나 솔직하고 당당함이었다. 시쳇말로 그는 진짜 사나이로 나에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이제 그는 영화처럼 자신의 삶을 살다가 구름처럼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가 한국 영화를 위해 쏟아 온 열정은 아직 뜨겁게 남아있다.

6일 오전 10시에 영결식과 발인식이 엄수된다. 이후 서울 양재 추모공원에서 화장을 진행한 후, 고인이 노년을 보낸 경북 영천의 선영으로 옮겨진다.

다시 한 번 한국 영화의 큰 별, 故 신성일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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