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솝 우화 가운데 다 아는 「개미와 베짱이」가 있다. 다시 읽어 보자.

여름철에 거둔 곡식을 말리며 개미들은 즐겁게 겨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배고파서 비틀거리는 베짱이가 그 앞을 지나가다가 먹을 것 좀 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개미들이 물었습니다. “왜 넌 여름에 음식을 모으지 않았니?” 베짱이는 대답했습니다. “그럴 여가가 있었어야지. 노래하다 보니 어느새 다 지나가 버렸어.”

개미들은 빈정댔습니다. “여름 내내 어리석게 노래만 불렀으니, 겨울엔 밥도 안 먹고 춤이나 추다 자면 되겠네.”

부지런한 개미와, 여름에 놀기만 한 베짱이가 겨울에 어떻게 되는지를 들려주고 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을 알아채지 못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부지런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다. 그런데 이 교훈이 옳을까? 비판적으로 볼 수는 없을까?

여러분이 베짱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하겠는가? 학생들에게 물어 보면 대개, 저렇게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나는 ‘나는 일도 하고 노래도 했다’고 당당하게 외치겠다. 생명치고 놀기만 하는 것은 없다. 먹어야 산다는 근원적인 법칙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베짱이를 오로지 노래하는 존재로만 그린 것은 여러 복잡한 성질을 무시하고 한 가지만 배타적으로 내세운 셈이 된다.

한쪽이 이러니 그 상대방인 개미도 똑같이 단일한 성질을 가진 것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개미 가운데는 게으름쟁이도 있다고 한다. 일개미라도 쉬고, 잔다. 쉬면서는 노래도 불렀을지 모른다. 베짱이의 성질과 관련하여 또 하나 덧붙일 것은, 베짱이는 개미와는 달리 재산을 모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죽기 때문이다. 개미의 수명이 얼만지 모르지만 베짱이처럼 짧다고 해도 사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저렇게 식량을 쌓아놓는 것일 테다.

이 정도만 설명해도 이 이야기가 등장인물의 성격을 멋대로 왜곡하고 게다가 단순화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개미도 베짱이도 기분이 나쁠 것이다. 베짱이는 더 그러지 않을까?

그런데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독자에게 부지런히 일해야 된다는 교훈을 주자는 목적의식이 등장인물의 객관적인 성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목표를 가진 사람은 앞만 보고 간다. 목표를 이루려고 한눈팔지 않고 뛰느라 놓치는 것이 많다. 성공한 사람에게서 흔히 듣는, 허탈감을 느낀다는 소감은 진실을 담고 있다. 도달하고 보니 그 목표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거기에 다가가고자 다른 것을 희생한 데서 오는 후회나 안타까움이 저런 마음을 갖게 했을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도 교훈을 전달하자는 목적의식이 지나쳐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인물의 성격이나 대립 구도가 누구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이게끔 단순해지고 말았다. 목적을 이뤘다고 기뻐하기에는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등장인물이 자신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사는 자율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돼 버린 게 무엇보다도 큰 손실이다.

이 작품의 교훈(이념)에도 시비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얘기한 대로 일과 놀이(노래 부르기)를 일방적으로 대립시켜 놓고서는 후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옳은가?

놀이를 들여다보자. 놀이 하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 ‘즐거움’ 같은 것들이다. 그 반대말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이 놀이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데 이 목록에는 ‘공부’, ‘일(노동)’, ‘효용성’ 등이 들어간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렸을 적에, 저녁도 거른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오자 어른들이 우리들에게 하시던 말씀이 놀이의 정수를 담고 있다. ‘쓸데없이 뭐 하러 돌아다니느냐?’

쓸데없다! 이것이야말로 놀이의 핵심을 이룬다. 방 한구석에 소중하게 모아 놓은 구슬, 딱지들을 어디에다 써먹겠는가! 어른이 보기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런데 쓸데없는 것이 즐겁다니? 쓸데없어서 즐거운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러이러해서 딱지가 필요하니 많이 따 와라. 이렇게 명령을 따라 하는 딱지치기는 놀이가 아니라 일(노동)이다. 따라서 즐겁기는커녕 괴롭기만 하다. 똑같은 행위인데도 그 목적에 따라서 아주 다른 것이 된다. 그 자체로 즐거운 것,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외부적인 목적을 갖지 않는 것이 놀이다. 요컨대 놀이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어서 쓸데없는데 바로 그래서 즐겁다.

그런데 정말 놀이는 즐겁기만 하고 쓸데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어른들은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있다.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공부만 하면 바보가 된다. 그러니 똑똑해지자면 놀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놀이가 꼭 필요하다는 정반대의 주장에 이른다. 그렇다. 얼른 보기에 쓸데없지만 바로 그래서 참말로 쓸데가 있는 것이 놀이다. 이러니 놀이를 더 살펴보아야겠다.

놀이에는 몇 가지 성질이 있다. 첫째로, 몸을 움직인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놀이도 잘 들여다보면 몸을 활발하게 활용한다. 젖먹이들이 손을 움직여 어떤 일을 하는 것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예를 들어, 뾰족한 것을 구멍에 맞게 끼우려고 애쓰는 것을 본 사람들은 안다. 끊임없는 노력과 실수의 반복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겨우 성공한다.

그런데 이 일을 잘할 수 있게 하려고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엄마에게도 할 짓이 아니다. 그런데 잘 놀면 쉽게 해결된다. 왜? 놀이는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고무줄놀이나 구슬치기를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놀이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즐거운 연습이다. 그렇다면, 놀이야말로 정말로 쓸데가 있는 공부가 아닌가!

둘째로,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여럿이 어울려서 같이 잘 놀자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누가 위반하면 놀이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 규칙 준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인 약속을 미리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놀이는 사회의 축도인 셈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같이 노는 친구의 의향을 헤아려야 해야 한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맺는다. 놀면서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익히는 것이다.

셋째로, 사실은 이것을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데, 놀이는 자유를 필수적인 사항으로 전제한다. 의무적으로 놀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 놀이가 아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어야 놀이고, 그래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겨운 일도 얼마든지 즐거운 놀이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좋은 대학과 직장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공부는 놀이로 바뀐다. 그러므로 일과 놀이가 대립적인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일은 놀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놀이처럼 즐겁게 일할 수 있다. 공부만 죽어라 억지로 하는 불쌍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일과 놀이의 조화로운 결합은 우리 어른들이 꼭 풀어야 하는 과제다. 지겨운 공부를 즐거운 놀이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요약하면, 놀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즐겁게 배우는 과정이다. 놀아야 행복한 사람이 된다. 열심히 일하고 나서 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평소에 놀아야 한다. 돈 많이 벌고 나서 놀자면 이미 늦었다. 잘 놀려면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다. 한꺼번에 몰아서 놀 수는 없다.

다시,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으로 돌아오자. 가난을 게으름과 바로 연결시켜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책임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사회적인 차원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분배나 복지 정책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죽도록 일해도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에게 저 우화에서 개미가 하듯이, 베짱이처럼 놀기만 해서 가난한 거라고 빈정댈 건가? 이들에게 이 우화는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일도 놀이도 다 필요하다. 그런데 어느 하나만 중요하다고 주장하면 우리 인간 본성을 무시하게 된다. 이러면 행복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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