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 제주대학교가 갑질 및 성희롱 파문으로 논란이 됐던 멀티미디어디자인전공 A교수를 파면하기로 결정했다. 학교 자체조사만으로 국립대학교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대반전'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멀티미디어디자인전공 4학년 학생들이 지난 6개월간 싸워온 결과다. 이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불의와 부당함에 저항했다. 개인주의와 파편화가 심했던 멀티미디어디자인과에서 이런 단합력은 일찌감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무엇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을까. 학생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학생들을 만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대학교 공학관2호 멀티학과의 한 회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났다.@사진 김관모 기자

◎"교수 파면 지금도 믿기지 않아"

"사실 믿기지 않았어요."

송석헌 제주대학교 총장이 A교수 파면을 발표하는 순간, 현장에서 이를 지켜봤던 학생들은 새삼 믿기지 않는다며 소회를 털어놓았다. 6개월간 교수 파면을 부르짖으며 활동했지만, 정말 그것이 이뤄질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학생들은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서 함께 부둥켜안으며 웃고 울었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가 하나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학생들은 19일부터 시작되는 졸업전시회 작품
준비를 위해 여념이 없었다. 위의 사진은 제주대
멀티미디어디자인전공 졸업작품전시회 포스터

이제 학생들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는 11월 19일 졸업작품전시회를 앞두고 있어서 학생들은 졸업작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럼에도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학생들은 쾌히 응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언론 담당을 맡았던 양민주 학생을 비롯해 송민석 학생과 임진섭 학생이 함께 했다. 임진섭 학생은 고된 일정으로 피부가 많이 상해있어서 마스크를 끼고 인터뷰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학생들에게 졸업작품전 준비가 잘 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웃으면서 "밤새고 있죠"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번 졸업작품전은 학생들에게는 큰 의미다. 

이전까지 멀티미디어디자인전공의 졸업전시회는 주임교수 3명의 각축전이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어떤 교수 담당의 작품을 앞에 내세울지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다.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것은 학생들이었다. 교수에게 컨펌을 받을라고 치면 위치를 옮기라고 지시했고, 교수들의 지시가 각자 달라 중간에서 난처한 경우가 많았던 것. 지금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된 방식으로 졸업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졸업평가 기준도 학생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한창 졸업작품전시회를 위해 졸업작품 준비 중인 학생들의 모습@사진제공 제대멀티
 

"평가를 외부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내부 교수님들이 한다고 해요. 그래도 교수님들이 평가 기준이 어떻게 되고, 면접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셨어요. 지난 4년간 이런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공정하게 평가가 진행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상당히 납득하고 있어요."(양민주 학생)

공정성과 존중. 그동안 학생들이 이 두가지에 얼마나 목말라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이런 순간이 학생들에게는 그저 꿈만 같다. 지금도 학생들의 A교수 파면이 현실감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학생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낙담할 때 많아"

▲송민석 학생

"사실 안 믿겼어요. 학교 내외부적으로 국립대에서 교수 파면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이 많았죠. 저희도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파면 결정이 나니까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그러다가 뭔가 가슴 속에서 울컥 북받쳐 올라오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다른 학생들도 모두 그랬어요. 이상하게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송영민 학생은 당시 소감을 덤덤하게 전하고 있었지만,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사실 학생들은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갑질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수를 파면조치한 적은 거의 없었으며, A교수는 제주도내 디자인계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닌 인물이었다. 대학교의 초기 반응마저 시큰둥했고, 언론에서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적었다.

일부에서는 더러 학생들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고, A교수는 언론을 통해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에 제보자를 고소하겠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경찰 조사마저 들어가면서 제주대학교의 결정이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예측마저 나왔다.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는게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사회에 나간다면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사실 그동안 제대멀티를 취재하면서 늘 궁금했던 게 있었다. 어떻게 22명의 4학년 학생들이 한마음으로 싸울 각오를 다졌던 것일까. 6개월간의 회유와 압박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올해 초에 지원금 지원받는 디자인 공모가 있었어요. 우리가 그 공모를 신청하면 해당 교수(K교수)에게 알람이 가는데 마감이 오후 6시였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그 시간에 맞춰서 지원을 했고 K교수에게 문자 알람이 왔나봐요. 갑자기 한 학생이 그 교수에게 전화로 욕을 먹었다는 거에요. '너희들이 뭔데 수업도 없는 저녁 시간에 교수에게 전화가 오게 만드냐'고. 그 학생이 다른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이런 욕을 먹어야 하냐'고 분개했어요. 그날 친구들이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이대로는 안된다고 해서 처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게 됐어요."

그 후 한달동안 학생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지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두려움과 걱정, 불안을 이야기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끝없는 토론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학생들도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기로 의지를 모았다. '낮은 단계에서부터 시작하며, 만장일치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처음 제대멀티의 행동강령이었다.

▲6월 12일 당시 제주대 공학관2호에 걸렸던 교수 파면 촉구 현수막의 모습@자료사진 제주투데이
▲6월 18일 제주대 본관 잔디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을 당시의 제대멀티 학생들의 모습@자료사진 제주투데이

"A 교수가 2학기에 일본으로 연수를 간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1학기만 버티면 2학기에는 수월하게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2학기까지만 버티면 되니 조용히 졸업하자면서 반대했었죠. 그런데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대로 있을 수 없었어요. 사실 반대하는 학생들도 누구나 그 교수에 대한 반감이 있었거든요. 저도 그 교수에 대한 트라우마로 디자인의 꿈을 접었고요. 그러다가 한 친구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이 일로 인해 떳떳하게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해보자라고 마음을 다잡게 됐어요."(송영민 학생)

하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두려움이 컸다. 6월 12일 대자보와 현수막을 붙이고, 6월 18일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학생들은 모두 떨고 있었다고 양민주 학생은 말했다. 

▲양민주 학생

"솔직히 너무 무서웠어요. 그때 저희는 몇 가지 행동규칙을 정해뒀었죠. 조교의 전화번호를 다 지울 것. 개인행동은 무조건 안된다. 2인 이상 짝지어서 다닐 것. 기자회견날에는 모두 모여있기로 했고요. 그래서 세곳으로 나뉘어서 친구들이 함께 있었어요. 휴대폰은 모두 모아서 책상에 올려두고 전화 와도 받지 않도록 서로 확인하고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전화 하나하나가 공포 그 자체였어요."

당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이 교수인지 조교인지 학교 관계자인지 기자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바람 앞의 촛불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이 일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정말 도우려는 관심인지 그저 볼거리로 여기는 것인지 알 수 없었어요. 무엇보다 금방 관심이 사그라지면 저희 힘이 약해지는 거잖아요. 항상 잠자는 와중에도 불안해서 깊게 잠을 자지 못했어요. 다음날 전화기를 보면 문자가 와있고... 불안한 날의 연속이었죠."

◎이기심을 극복하고 모두가 하나였던 순간

그래도 6개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마음을 다잡아주었기 때문. A교수와 관계되면 서로 피하기 바빴던 친구들이 서로를 다독이면서 도와주었다. 각자 아르바이트나 과제로 바빴지만, 함께 움직여야 할 때는 발벗고 나섰다. 22명 모두가 제대멀티 공동대표였으며, 같은 고통 같은 책임을 지고 있는 동지였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학생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을 갖게 됐다.

"우리의 목소리는 당신의 권력보다 강하다!" 이 말이 학생들을 묶어주는 키였다.

▲지난 7월 12일 제대멀티 학생들이 제주시청 광장앞에서 자유발언 집회를 갖는 모습@자료사진 제주투데이
▲지난 7월 12일 제대멀티 학생들이 제주시청 광장앞에서 자유발언 집회를 갖는 모습@자료사진 제주투데이

"저희 과는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굉장히 강한 학과여서 단합이 절대 안되는 곳이었어요. 선후배간나 동기간에 유대도 전혀 없었죠. 하도 교수에게 시달리고 과제가 많다보니 자기 일 하기에도 버거웠으니까요. 그러다보니 각자 상황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학과의 구조적인 문제였고, 교수의 문제였어요.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바뀌기 시작했죠. 공동의 목표가 생기니까 서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관계도 끈끈해졌어요. 그제서야 '아, 이게 가능한 일이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양민주 학생)

"A교수의 과제를 하게 될 때는 며칠 전부터 밤새면서 준비해도 욕을 먹어야 했고, 항상 그 교수와 연락해야만 했죠. 그때 옆에 있는 친구들 외면하려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면서 저도 '나만 생각하면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 교수 하나 때문에 모두가 이기적이 되는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서는 그런게 하나도 없어요. 졸업작품 전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서로 도와주고 함께해요. 대학교에 처음 들어올 때 기대했던 것을 4학년 졸업할 때서야 느끼니까 뭔가 너무 이상하다는 느낌마저 들어요."(송민석 학생)

▲임민석 학생. 졸업작품 준비로 피로 때문에
피부가 좋지 않아 마스크를 하고 있다.

학생들의 유대가 가능했던 것은 끝없는 소통이었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갔다. 임진섭 학생은 "20여명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보니 생각이 안 맞을 때가 많았디만 그럴때마다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며 "소통을 통해 대안이 만들어지고 해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누구를 만나든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그저 남이었던 친구들이, 6개월의 시간만에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자 외부에서도 차츰 제대멀티를 도우려는 손길이 이어졌다.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는 물론 각 학과나 동아리 모임에서도 제대멀티를 지지했다. 녹색당이나 정의당 청년위원회 등 일부 정당에서도 제대멀티 학생들의 싸움에 연대 의사를 밝혔으며, 제주국제대와 제주관광대 총학생회에서도 연대를 위해 제주대학교를 찾기도 했다.

결국 오영훈 국회의원도 간담회에서 제대멀티 학생들과 만나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 10월 25일 제주대학교 국정감사에서 그 약속은 지켜졌다. 이날 신경민 의원은 송석언 총장에게 이 문제를 추궁했으며, 교육부에서 조사에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10월 31일 제주대 본관 앞에서 교수 파면을 외친 제대멀티 학생들. 그 옆에는 제주국제대와 제주관광대, 제주대 총학생회, 도내 청년단체들도 함께 참가해 연대했다.@자료사진 제주투데이

◎잠시 '꿈'을 잃었지만, 더 큰 '경험을 얻다

가장 큰 싸움은 끝났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는 앞으로 진짜 시작이다. 22명의 4학년 학생들은 그동안 부족했던 학점은 모두 채워져 졸업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

다만 이들 중 절반은 디자인이라는 꿈을 접었다. 이날 인터뷰를 했던 세 사람도 모두 디자인 분야에 취직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사회를 나가도 A교수 같은 직장상사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송민석 학생과 임진섭 학생은 이번 졸업작품전시회가 끝나면 자기 앞길을 다시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2학년 때 이미 디자인에 대한 꿈을 접었어요. 아직 어느 분야로 갈지는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 가장 크게 고민하는게 제 미래가 아닌가 싶네요. 막연하게나마 생각하는 것은 정말 좋은 사람들과 자기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송민석 학생)

양민주 학생은 광고기획 분야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양 학생은 이번 싸움에서 언론을 상대하고, 선두에서 제대멀티를 대표하는 등 어려운 일을 맡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싸움이나 보도자료, 전략 등을 기획하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

"학교 다니면서 교수 때문에 꿈을 접거나 자퇴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자기 스스로의 결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에 꿈을 접게 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걱정도 많지만 학생들은 밝았다. 길이 보이지 않던 일을 이미 이뤄낸 경험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은 혼자서가 아니라 모두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풀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올바른 일에 온힘을 다해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싸웠다. 그래서 그들은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부당한 일이나 합리적이지 않은 일에 이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그것을 못하고 4년을 지냈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숨지 않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대멀티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김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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