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중국의 고사(故事)다.

‘태산(泰山)이 떠나갈듯 요란하게 소리치더니 뛰쳐나온 것은 쥐 한 마리 뿐’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떠들썩하게 큰 소리쳤지만 결과는 보잘 것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국군 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이하 문건)’ 의혹을 수사해온 민․군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이 7일 발표한 ‘중간수사 결과’가 그렇다.

합수단은 지난 7월 출범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지지에 의한 것이었다. 파견됐던 수사 인력은 검사와 수사관 등 37명의 대규모였다.

이들이 1백일이 넘도록 관련자 287명을 조사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 기무사령부 등 모두 90개 기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청와대는 합수단 출범 전 계엄령 세부계획을 언론에 공개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등에 대해 내란 음모죄․친위 쿠데타 등을 거론하며 선동적 여론몰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남을 물어뜯기 좋아하는 ‘하이에나 언론’도 어깨동무로 게거품 물고 달려들었다.

“개명천지(開明天地)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겠느냐”고 ‘설마’하던 사람들도 이들의 집단발작 선동에 빨려들었다.

그래서 합수단의 수사결과 발표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합수단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는 허탈했다. 내용은 초라했고 형식은 아리송했다.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윗선 규명’은 뚜껑도 열지 못했다.

문서 작성의 핵심 당사자로 알려진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과 황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 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에겐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다.

박 전 대통령과 황 전 권한대행 수사과정에서 이들이 계엄령을 지시했다는 진술이나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참고인 중지’와 ‘기소 중지’는 핵심피의자의 신병을 확보 할 수 없을 때 사건 당사자들의 사법처리를 유예한다는 의미다.

이번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는 계엄 검토사실을 숨기려 허위 연구계획서를 작성한 실무자 3명에게 허위공문서 작성 죄를 적용했다.

내란 음모죄는 없었다. 내란죄 적용에 필요한 구체적 합의나 실질적 위험성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내란 음모․쿠데타 음모 등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떠들어대던 ‘계엄령 문건 의혹’이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의 불구속기소로 일단락 한 것이다.

‘결론 없음’이 중간수사 결과다.

37명의 전문 포경선원을 태우고 고래사냥에 나서 104일 동안 파도와 싸우던 고래잡이배가 고작 피라미 세 마리를 건져 돌아온 꼴이다.

그래서 한 편에서는 대통령 특별지시에 의한 합수단 조사 의도와 배경에 의문을 보이고 있다.

권력이 특정의도를 갖고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죽은 권력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건 노출 과정을 재구성 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문건(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은 2017년 3월 초 작성됐다.

이때는 3월10일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을 앞둔 때였다.

탄핵 인용이나 탄핵 기각 등 헌재 결정에 국내외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됐던 시점이다.

문서는 헌재 결정에 불복한 촛불 및 태극기 시위 격화로 인한 치안 또는 안보 위기 등 비상사태에 대비한 일반적 검토차원이었다는 게 기무사 쪽 주장이었다.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은 같은 해 3월 3일 관련 문건을 보고 받고 논의 종결을 지시했다고 주장 한 바 있다.

따라서 문건 의혹은 사실상 수면 아래서 소멸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헌재의 탄핵 결정 후에도 우려했던 격렬하고 폭력적 시위나 비상사태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로부터 1년도 훨씬 지난 7월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의원이 문건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후 7월20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바통을 이어받고 브리핑을 통해 관련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여기에 대통령도 가세했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라는 특별지시로 합수단이 출범했다.

그러나 내란 및 쿠데타 음모라고 청와대와 여당이 선동했던 ‘기무사 계엄 문건’은 100일이 넘는 합수단 수사에도 ‘결론 없음’이라는 중간 수사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논의가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던 관련 문건 의혹이 1년이 훨씬 넘은 시점에서 누가, 왜, 무슨 의도에서 불씨를 살려 냈는지가 궁금하다.

다행히 여야가 8일 문건 진상조사를 위한 국회국방위원회 차원의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는 여기서 국민적 의혹이나 궁금증을 해소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작성 경위와 의도,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 이유와 과정 등 국민적 궁금증은 한둘이 아니다.

비밀 해제가 안 된 비밀문서를 청와대 대변인이 어디서, 어떻게 입수해서 왜 공개했는가.

청와대-국방부-기무사 간 계엄문건 비밀문서 지정과 해제를 둘러싼 진실 공방과 의혹도 해소해야 한다.

지난 3월 문건 존재를 보고 받고도 국방구가 왜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는지, 지난 4월 청와대 쪽이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도 후속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는 의혹도 있다.

‘계엄령 의혹’은 문건 작성 훨씬 전인 2016년 11월, 당시 추미애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제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건 작성은 이듬해 3월 3일이었다. 문건 작성 100일도 훨씬 이전에 ‘계엄령 준비’를 언급한 추의원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는지 설명해야 옳다.

그리고 수면 아래에 있던 문건이 지난 7월 5일 여당의원의 공개로 돌출됐다. 7월 10일, 대통령의 특별수사 지시, 7월20일, 청와대 대변인이 기밀해제 안 된 문건 공개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고도로 기획된 특정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의혹과 궁금증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을 경우, 청와대와 여당 등이 정치적 정략적으로 문건을 침소봉대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관련 청문회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 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