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곳들은 어디일까?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레가툼 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의 경우 탄탄한 사회복지로 국민들에게 최고의 생활환경을 제공하는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노르웨이로부터 뉴질랜드, 핀란드,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가 그들이다. 한국은 149 국가 중에 36위에 머물렀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대단하다. 자연환경 등 9개 항목 모두에서 10위 안에 링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7년 연속 종합 1위를 마크하고 있어서이다.

물론 이른바 레가툼 세계번영 지수로 알려진 위의 순위가 행복지수는 아니다. 번영을 구가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님은 많은 국민들이 행복해 하는 부탄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잘 산다’는 게 한편으로는 물질적 부유함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큰 걱정 없이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정신적 여유를 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레가툼 번영지수가 단지 물질적 척도만이 아닌 교육, 보건건강, 개인자유, 사회적 자본, 자연환경, 안보안전, 통치 등 비경제적 척도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분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레가툼 번영지수에 따르면, 2014년에 한국은 142개국 중 25위를 했다가 2015년에는 28위로 3단계 내려앉았다. 그리고 2016년에는 149개국 중 35위로 밀렸는데, 2017년에도 149개중 중 36위로 제자리걸음이다. 왜 좀처럼 한국은 30위 이하에서 맴돌고 있는 것일까? 레가툼 연구소의 측정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적 자본 항목에서 2015년 85, 2016년 94, 2017년 105로 계속 하향세다. 여기에다 자연환경 항목도 2016년 91과 2017년 90인가 하면, 개인자유 항목에서도 2016년 73이고 2017년 74로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다. 그래도 한국이 30위 중반을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과 보건건강에서 각각 2015년 20과 21, 2016년 17과 19 그리고 2017년에는 17과 15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레가툼 연구소의 한국 평가에서 악화일로에 있는 사회적 자본이란 무엇일까?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공동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구성원들의 공유된 제도, 규범, 네트워크, 신뢰 등 일체의 사회적 자산’을 지칭한다. 이른바 물질적 자본과 인적 자본에 이은 제3의 사회적 자산이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소홀히 하고 경시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보아 무방하다. 아마도 사회적 자본의 육성 없이는 한국의 미래는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할 것이고, ‘헬조선’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인간관계의 삭막함은 나날이 도를 더하고 있는 듯하다. 점점 더 의지하고 신뢰할 사람이 줄어드는 가운데 ‘각자도생’이 우리의 민낯이다. 이런 저런 모임과 친목이 많고 거기서 희희낙락하고 있지만, 각자는 여전히 홀로인 듯 살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들 열심히 교회와 성당 그리고 절에 나가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풍성한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따뜻하고 사해동포적인 공동체 감각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의 안녕과 행복만을 구하는 구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남을 돕지도 않지만, 남에게서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가려는 유아독존적 사고와 행태가 만연해 있는 것이 현금 한국인들 대다수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저 이기고 1등하고 나 혼자 배부르면 된다는 개인주의화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야 행복이 더 커진다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나만 괜스레 나눔을 펼치다 손해 볼 것만 같은 강박관념 때문인지, 여유 있게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마저도 생각과 마음만이지 몸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더욱이 사회복지 차원에서 재정을 이웃사람에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인색하다. 어려운 이웃이 공짜 밥이나 좋아하는 몰염치의 사람들로 치부하곤 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믿고 신뢰하고 같이 나누면서 공동체적 박애의 삶을 함께 하려고 할 수 있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제주도에는 도의회 조례로 ‘사회적자본육성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지만, 우리네의 이와 같은 분위기와 자기중심적 논리로 인해 그야말로 이름 만으로만 존치하여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정 책임자와 고위 담당자들이 사회적 자본을 바라보는 인식과 자세에서 변화가 없는 한. 사회적자본육성위원회가 할 일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한 레가툼 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번영지수에서 제주도 포함 한국이 좋은 성적을 받는 건 요원해 보인다. 필자가 부위원장으로 있어서 몇 번 개선책과 미래 방향을 얘기해도 소귀에 경 읽기이다. 그래서인지 초기에 위원들이 가졌던 열정과 기대도 어느덧 실망과 포기로 변해 버린 게, 작금의 사회적자본육성위원회의 현 주소이다. 어떻게든 환골탈태가 요청된다.

그래서일까. <한겨레21>, 1212호(2018년 5월 21일)에 실린 ‘너와 나를 잇는 50만원의 실험’ 결과가 크게 다가온다. “‘가욋돈’으로 생긴 기본소득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늘 팍팍하기 마련인 보통 사람들의 삶에 여유를 선물했다. 여유를 회복한 참가자들은 혼자만의 성을 쌓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도, 세상을 향해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자본을 육성해 나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기본소득은 “그리운 사람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고마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도 만들었다.” 보다 ‘넓어진 마음’으로 인간관계 회복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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