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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글쓰기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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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글쓰기는 즐겁다
  • 제주투데이
  • 승인 2018.12.1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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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글쓰기는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 ‘고통의 축제’를 응용하여 ‘즐거운 고통’(또는 ‘고통스러운 즐거움’)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 역설적인 현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첫째로 글은 생각을 만들어 준다. 막연한 상태에서 글쓰기는 시작된다. 미리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정성스럽게 자료를 준비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쓰기 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반드시 생긴다. 이걸 풀어 나가는 것이 글쓰기다. 그래서 답을 찾고자 고민도 하고 다른 책도 열심히 읽고 옆 사람과도 얘기를 나누게 된다.

이러면서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모른 채 그냥 지나쳤을 것을 발견하게 되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 물론 내 무식이나 펀견, 무관심을 확인하는 괴로움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고통은 나를 더 넓고 깊게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는 것이니까 즐거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다시 강조하자. 생각이 있어서 글을 쓰는 거야 당연하지만 이것만으로 좋은 글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쓰기 전의 생각은 아주 막연한 상태다. 이 씨앗을 크고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 주자면 글을 써야만 한다. 그러니 고민과 독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게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런 발견의 즐거움이 없이 기존의 생각을 그냥 저장만 하는 것이라면 왜 고통스럽게 글을 쓰겠는가!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가진 주체적인 인간을 만들어 준다.

둘째 글쓰기의 효과로 자기 객관화를 들고 싶다. 쉬운 말로 풀어 쓰면, 나를 남 보듯 하는 능력을 키워 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산다.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글은 이런 걸 조금씩이나마 줄여 주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부부 싸움을 얘기한다고 해 보자. 다들 자기 처지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기 바쁘다. 그런데 내 짝은 이 일방적인 주장을 옳다며 고스란히 받아들일까? 아니다. 그쪽에서도 얼마든지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갈등을 제대로 풀자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다 보면 내 잘못도 드러나는데 그걸 수긍해야 부부의 화목도 되찾을 수 있다. 내 흠을 흔쾌하게 인정하는 거 정말 어렵다. 괴롭다. 그렇지만 즐거움을 누리자면 이 아픔을 피해서는 안 된다.

글을 쓰다 보면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인데도 문장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제 길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놀라운 현상도 자기 객관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뛰어난 소설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인형처럼 마음대로 조종하지 않고 그 등장인물의 자유를 존중한다. 심지어는 처음 의도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가치관과 어긋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한다.

우리가 쓰는 글에도 이런 측면이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짧거나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원래의 계획을 살리자고 고집을 피우기보다는 내 생각을 고치는 것이 답이다. 글 자체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내 좁은 주관주의를 극복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를 완전히 객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나를 비판하면 여전히 아프다.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닌데도 그렇다. 그런데 글은 이 지나친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 준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끊임없는 수양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되자면 글을 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이, 마치 은총처럼 내게 가져다 주는 뜻밖의 생각, 글을 쓰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표현, 여기서 더 나아가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이 세상을 알게 해 주는 글의 힘! 글을 쓰다 보면 이런 게 덤으로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데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글은 실생활에서도 필요하다. 사회가 합리화되고, 민주주의가 진전될수록 취직과 승진 등에서 글솜씨를 꼭 필요한 능력으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에서 이런 효용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실용적인 기능(혹은 수단)을 벗어나서 위에서 말한 글쓰기의 궁극적인 효과, 즉 나와 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가끔씩이라도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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