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봉현/ 제주평화연구원장, 전 호주대사

얼마 전에 필자는 제주평화연구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2018년 11월 27일이다. 제주시 아라동에 집을 얻었고 중문에 있는 제주 평화연구원으로 출근한다. 사무실이 중문에 있어 집도 그 곳으로 얻을까 하였는데 중론은 제주시였다.

애조로를 지나 평화로로 들어서면 도회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풍광이 나타난다. 마치 내가 근무하였던 호주의 시골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산방산을 마주보면서 달려가면 바다가 나타나면서 시원한 수평선을 보게 된다. 아름답고 멋있다. 그리고 행복하다. 이곳에서 내가 일하게 되었다.

50여년 만의 귀향으로 설레던 마음이 가벼운 흥분과 기대로 바뀌어 간다. 제주를 떠날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던 아라동은 상전벽해가 되어 이 글을 쓰는 필자의 처소가 되었다. 세월의 흐름을 어찌 거역하리라 만은 제주는 변함없이 어머니의 품과 같이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세찬 눈발이 왔다 갔다 하는 날씨임에도 90을 바라보는 모친께서 형님의 도움을 받아 아라동 내 거처를 찾았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바로 눈앞에는 노지 감귤이 달려 있는 풍광에 안심이 되는 듯, 주름 가득한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올랐다. “집이 너르고 좋구나.”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의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서 중학생이 되자마자 나 혼자 남겨 놓고 다시 제주로 내려온 어멍의 마음이 어떠하였을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도 훨씬 지나 다시 마주한 어머니는 이제 내 눈썹에 내려앉은 몇 올의 흰 가닥에 속상해 하였다.

내 마음과 달리 제주는 많이 변해 있었다. 인구가 거의 70만으로 크게 늘고 관광객의 숫자도 년 1,500만이나 된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버리는 쓰레기가 큰 문제가 되고 있고,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가 열리던 광양은 이제 번화가가 되었다. 북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줄어들어 폐교의 위기에 있다는 동창생의 말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제주는 내 육신의 고향이고 마음의 고향이다. 육지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살고 근무하면서도 항상 마음속에는 어멍이 있는 제주를 그리워 해 왔다. 고향을 위해서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제주 사람들은 미안하게도 나를 존중해 주었다. 제주 출신 서울 공무원 모임인 제공회 회장직도 맡을 수 있었다. 제주국제협의회에도 조그맣게 관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느다란 인연의 끈이 오늘 내가 제주평화원장이 되도록 이끌어 준 것 같아서 제주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이러한 고향 제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마음에 새기면서 11월 말에 제주로 부임하였다.

제주가 내 어릴 적에 느꼈던 고향의 정취를 계속 간직하면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예전의 풍경이 변하고, 예전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도 크게 변했고,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제주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변화의 방향과 방식에 있어서 제주는 좀 달랐으면 하는 것이 내 마음이다.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과 그 문제들에 대한 접근 방식이 제주에 그대로 투영되는 것에 반대한다. 제주만의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변화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 것은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있고, 제주 사람들만이 느끼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도가 특별해 주었으면 하는 내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에 어떠한 해결책이 옳은 것인지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다수가 옳다고 믿는 것, 다수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쉽고 편리하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이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결책과 해결 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과학의 문제에서 특히 그러하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였을 당시에 그를 지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다수가 지지하여 선출된 대통령을 잘 못 뽑았구나 하고 후회해야 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한 두 명의 현자들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공산주의에 현혹되어 공산혁명을 일으킨 결과 엄청난 희생과 비용만 들었을 뿐 참혹한 실패로 끝난 역사적 현실을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만을 고집하는 것, 북한에 대하여 강경책으로 일관하는 것, 또는 유화책으로 일관하는 것 등 모두가 아슬아슬하다.

그러면 제주만의 해결방식은 어떠해야 할까? 그 것은 제주인들의 행동양식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자유롭게 각자의 자율성을 발휘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제주인들, 앞으로 나가는 과정에서도 자주 뒤를 돌아보면서 혹시나 힘겨워하는 사람은 없는지, 혹은 낙오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이들의 손을 잡아 주는 제주인들, 낯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배려해 주는 제주인들, 남을 속이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제주인들, 제주사람과 육지사람을 구별하지 않는 포용성과 다양성을 갖춘 제주인들로 행동할 수 있다면 제주만의 해결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행동양식을 가진 제주인들이라면 4·3의 문제, 강정마을의 문제, 제2공항 건설 문제 등에 있어서 육지사람들과는 다른 해결 방식을 가지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제주도가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하여도 공동의 인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이러한 제주인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것은 남을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고 신뢰를 중시하는 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태도들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하고, 그러한 행동이 쌓여서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습관이 확고하게 정착되어 확산되면 제주만의 독특하면서도 존경받는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 제주만의 독특한 문제해결 방식을 제공해 줄 것이다.

50년 만의 귀향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바로 이렇게 특별한 제주문화 형성에 기여해 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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