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폭풍은 거세고 거칠다. “도지사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까지 등장했다.

‘녹지국제병원(이하 영리병원)개설허가’가 휘젓고 있는 돌개바람이다.

원희룡지사는 5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리병원의 개설‘을 허가했다. 일반의 생각을 뛰어넘은 조치였다.

제주도 숙의형 공론조사 위원회의(이하 공론위) ‘개설 불허’ 권고를 일축해버렸기 때문이다.

‘공론조사’는 원지사가 ‘전국 광역단체 중 처음 실시하는 숙의형 민주주의 모델’이라고 자랑해 마지않았던 제도다.

이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한 ‘대안민주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일각의 평가도 있었다.

공론위는 이를 통해 지난 10월 4일, ‘영리병원 개설 불허’를 지사에게 권고 했었다. 3차례에 걸친 여론조사 및 공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같은 달 8일 원지사는 공론위의 ‘개설 불허’ 권고를 “존중 하겠다”고 밝혔었다. 사실상의 ‘개설 불허’ 약속이었다.

그래놓고도 영리병원 개설을 허가해버린 것이다.

원지사는 정무 적 감각이나 정치 경험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똑똑하기로도 어느 정치인 못지않을 것이라는 평판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 뻔한 ‘영리병원 뇌관’에 불을 댕겨 버렸다.

영리병원 문제는 지난 10여 년 간 제주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논란 거리였다. 독감처럼 기침과 몸살을 동반했던 바이러스성 전국적 이슈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5년 6월 박근혜정부의 보건복지부가 중국 녹지그룹의 투자개방형 외국병원인 ‘녹지 국제병원’ 설립을 승인하기로 결정하면서 제주에 ‘찬-반 논란’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영리병원’ 논쟁의 핵심은 ‘의료산업 발전’과 ‘의료 양극화 현상’의 충돌이었다.

“국내 의료 기술 수준이 높다는 장점을 살려 투자 개방형 병원을 도입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의료관광객 유치 등을 통해 부가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다”는 게 찬성 쪽의 대체적 논거였다.

이에 반해 반대의 목소리도 격렬했다.

영리병원의 물꼬가 터지면 의료의 공공성이 무너져 국민 건강권이 민간 보험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결국 현행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것이었다.

건강권은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건강권 보장은 국가의 책무다.

이러한 논란 속에 문재인정부 보건복지부는 2017년 9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제주도에 전했다.

여기서 원지사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2015년 박근혜정부의 ‘영리병원 사업 승인’과 사업자의 ‘병원개원 준비완료’, 문재인정부의 ‘의료 영리화 정책 반대’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러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현실에서 ‘공론조사’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탈출구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원지사는 공론위의 ‘개설 불허’ 권고를 무시해 버렸다. 정반대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경우의 수가 있다. 먼저 ‘개설 불허 권고’를 수용했을 경우다.

이는 법정싸움의 불씨다. 정부의 승인을 받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병원을 짓고 의료 인력까지 고용한 상태에서 허가가 나지 않을 경우 사업자는 거액 손해배상 소송 등 각종 법적․행정적 소송에 나설 것이 뻔하다.

외자 유치정책과 관련한 국가나 지방정부의 신인도 추락과 이로 인한 외자 유치 사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도가 이런 일련의 과정이나 부담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영리병원 반대’의 돌팔매를 맞더라도 허가를 내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원지사가 ‘영리병원 개설 허가’와 관련해 “제주도가 직면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도민사회의 이해를 구한 것도 여기서 비롯됐을 터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원지사의 책임은 클 수밖에 없다.

먼저 이번 ‘영리병원 개설 허가’과정은 원도정에 대한 도민 적 불신만 키웠다. 심각한 수준의 도정 정책 불신이다.

공론조사위의 권고 사항을 수용하겠다고 해놓고 이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린 것은 지도자의 제1덕목인 신뢰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또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았던 ‘숙의형 민주주의’의 근간을 짓밟아 버렸다.

‘공론조사’를 “지방선거에서 불리한 국면의 여론을 피해보려는 정치적 꼼수로 악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때 ‘공론조사’는 원지사에게 ‘신의 한수’이거나 바둑에서처럼 ‘꽃놀이 패’였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결국은 죽음을 자초하는 ‘자충수(自充手)가 되어버렸다. 승부수로 던진 돌이 악수(惡手)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기에 원지사는 ‘영리병원 문제’의 모든 책임의 과녁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 설수도 없는 고단한 처지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인 것이다.

물론 책임소재의 일단은 지사에게 있다. 개설허가 결재를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지사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려야 하는 지에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그만 돌팔매를 맞아야 하는가.

여기서 중앙정부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중앙정부가 제주도를 ‘실험용 쥐’로만 여기는 비겁한 행태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정한 국가 정책의 만만한 실험대상으로 제주도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일례로 드는 주장도 있다

‘제주영리병원’도 그렇다. 2015년 정부가 ‘녹지 국제병원’ 설립 승인 때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법에서 경제자유 구역 내의 투자 개방형 병원 설립이 허용된 상황인 만큼, 녹지국제병원이 중요한 ‘테스트 배드(실험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 한다”고 밝혔다고 전해진다.

이는 바로 ‘제주도를 실험용 쥐로 활용 하겠다’는 고백을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국민의 건강보장과 의료 공공성 확립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중앙정부가 민감한 영리병원 문제에 뒷짐 지고 공문 한 장으로 제주도 당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함과 무책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제주가 지역구인 민주당 국회의원 세 명도 논란의 책임에서 비껴갈 수 없을 터이다.

영리병원 문제로 제주도가 엄청난 논란에 휩싸여 사회 갈등과 분열상을 보였는데도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다.

또 있다. 도정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도의회는 제대로 기능을 작동했는가. 목소리 큰 쪽에 빌붙어 뒤늦게야 도정을 비판하는 ‘하이에나 식 물어뜯기 도의원들’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그렇기 때문에 당초에 영리병원 승인을 해준 중앙정부와 제주지역구 국회의원, 대의기관의 제주도의회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책임의 중심에 원지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지사는 정치생명을 걸고 중앙정부와 지역구 국회의원, 도의회 등과 책임을 공유하여 혼란을 잠재워야 할 것이다.

‘허가’를 ‘불허’로 되돌릴 수 없다면 의료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행정적 보완 장치를 마련하고 이로서 ‘찬-반 그룹’을 설득하는 ‘사즉생(死則生)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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