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서 6백회를 맞이했다. 글 제목과 걸맞게 계속 엇박자로 빗나가 위험 수위로 올라가는 한.일 관계를 쓸까 하는데 '그리운 제주 풍경 100'이 서귀포에서 왔다.

서귀포문화원에서 금년 12월20에 발행한 책이었다. 강명원 문화원장은 발간사에서, 제주의 풍속과 원풍경 100장면을 선정하고, 선정된 장면들을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 계절에 따른 제주의 풍속들을 동화적 분위기로 담아냈다고 했다. 

제주 풍경 100장면에 글을 쓴 김순이 시인은 '가난했으나 행복했던 원풍경'의 후기에서 "원풍경(原風景)이란 인간이 태어나고 살면서 의식, 무의식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죽을 때까지 간직하게 되는 서정적인 풍경을말한다."

"해녀들의 메역 해치, 꿩독새기 봉그기, 지냉이잡기, 고망낚시, 말방아, 포제 등 제주도의 원풍경은 특이한 가운데 순박하고도 서정성이 강렬한바 1970년도이후 현대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그 정서는 급속히 사라져 버렸다."

"제주도의 삼다 삼무의 이국적인 생활상 속에서 도둑, 거지, 대문이 없는 삼무는 제주인의 삶을 확연히 드러내 주는 키워드이다. 결코 넉넉한 삶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것을 넘보는 도둑이 없었고, 근면 성실했기에 끼니를 빌어먹는 거지가 없었다. 마을 전체가 서로를 믿고 이웃을 도우며 살았기에 대문은 있을 필요도 없었거니와 있다 해도 문을 닫지 않았다."

"가난했으나 인정과 믿음만으로 살았던 시대가 제주에는 엄연히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정말 가난하기만 했던 것일까. 아니었다. 순박한 정으로 살았던 그때, 눈부시게 빛나진 않았으나 은은한 행복이 가시덤불 속 산딸기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박혔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되살아나 지금 우리를 호명하고 있다."

가난했으나 가시덤불 속의 산딸기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박혔던 순간들이기도 했다는 김순이 시인의 과거 직시는 "모자람의 즐거운 시대"로서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이인동심(異人同心)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특히 본문 대화에 등장하는 제주어 표현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제주인의 정서를 실감나게 표현해 줌으로써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그 모습을 상상하며 저절로 미소짓게 하는 마력을 뿜어내는 문학적 가치가 보입니다. 또한 유네스코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된 제주어를 되살리고 전승하는 데도 기여하리라 기대됩니다."

강명원 문화원장의 이와 같은 발간사 글처럼 감질나는 제주어 표현은 김순이 시인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제주어 언어 구사로서 제주 풍속과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필자도 제주에서 태어나서 20년간 살았으니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제주 토박이로서 자부하고, 오사카에서는 악간 목소리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의 제주어 실력은 물론 세시 풍속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부분들도 있어서 솔직히 낯뜨거웠다. 한마디로 제주 헛살았다는 자격지심이 들곤 했다. 해녀의 여러 풍속에서도 그렇고 마을 젊은이들이 힘자랑하는 '등돌 들기' 중산간 마을에서 물을 간직하는 '촘항' 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여성이면서도 남성들의 제주 풍속에 대해서도 쓴 글에서는 감정 묘사까지 세심해서 놀랬지만 100장면의 제주 세시 풍속을 새롭게 들춰내서, 제주의 온고지신으로 부각 시킨 점은 김 시인은 물론 서귀포문화원과 김동연 화가의 삼위일체의 결실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특히 김동연 화가의 제주 민속화 그림은 김 시인 글의 주제를 그림 한장으로서 표현하는데 그 풍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응축 시키고 있었다. 실과 바늘처럼 그 글에 그 그림이었다.

고국 아니, 고향을 떠나 오늘의 고국과 고향이 아니라 기억 속에 신기루처럼 아련히 가물거리던 반세기 전의 고향 모습을 부활 시킨 '그리운 제주 풍경 100'을 오사카에서 읽고 있으니, 2018년 연말에 자화자찬이지만 600회 기념 연재로써 쓸 수 있어서 그 감개는 더욱 깊게 느껴지고 있다.

'그리운 제주 풍경 100'은 제주 어른이 읽을 동화임과 동시에 "제주 풍습과 제주어의 입문서"이다.  책에 실린 김순이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한라산>이다.

한라산

산은 가끔
내게로 옵니다

순결한 열정의
하늬바람으로 옵니다

탐라계곡 바위들을 타넘고
갈매빛 구상나무 숲 향기 묻히며 옵니다

풋풋한 맨살의 선작지왓을 지나
오백나한 거느리고 옵니다

울울한 원시림
발가벗은 야성의 혼으로 옵니다

산새소리 휘몰아
들꽃마다 입맞추며 옵니다

내게로 내게로
오로지 내게로
깊은 품 젖히며 달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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