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감귤농장을 개조한 제주시 영평동 갤러리2 중선농원에서 <박주애 이승미 이해강>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2 중선농원은 작년부터 제주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작업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박주애, 이해강과 오랜 대화를 통해 두 작가의 접점을 찾아내면서 또한 각자의 작업 세계를 보여주는 신작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 관람에 앞서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먼저 전시명은 <박주애 이승미 이해강>이지만, 이는 3인전이 아닌 박주애, 이해강 2인전이다. 그리고 두 작가는 15년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로 전시와 깊이 관련이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의 사이는 신작의 모티브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전시의 이유나 목적이 아니며 오히려 각자의 작업을 명확하게 드러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왜 전시명이 <박주애 이승미 이해강>일까? 박주애, 이해강은 ‘중간에 대한 탐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이 전혀 다른 주제와 형식을 추구하는 두 작가의 공통점이다. 이승미를 포함하여 박주애, 이해강 세 명은 오랜 친구다. 각자 하는 일은 다르지만, 작업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조언해주는 사이다. ‘이승미’라는 존재는 실제로 두 작가에게 있어 관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중간자’이면서 중간에 대해 탐구하는 박주애, 이해강의 작업 방향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박주애는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는 그는, 이야기는 구체적이지만 그림의 형상은 초현실적인 상반된 면을 보였다. 2017년에 뉴욕에서 잠시 작업을 할 수 있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리운 사람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인형 작업은 먼저 천에 그림을 그리고 채색한 다음 주변을 잘라내고 손바느질로 꿰매 솜을 채운다. 형태를 평면 위에 그려내는 작업에서 시작하는 인형 작업은 입체화된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서 박주애는 이해강을 인형으로 만들었다. 그는 친구이면서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료인 이해강을 예전부터 인형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친구지만, 애정하는 마음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동물과 섞어서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

이해강은 거대한 토끼가 되어 닥스훈트가 된 이해강을 끌고 산책하고 있다. ‘왜 토끼가 되었는가, 왜 닥스훈트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박주애는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른 동물, 번뜩이는 농담이었다고 대답했다.

온전한 인간도 아니며 동물도 아닌 반인반수의 강렬한 인상은 온라인상에서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짓거나 행동하는 동물, 동물의 표정을 닮은 사람들의 사진과 연결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공감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감정 말이다. 반인반수의 인형은 (자신을 포함하여) 박주애와 관계가 있는 주변인물들이 인형의 모델로 등장한다. 그의 인형 작업은 자신에게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실존 인물에 동물을 결합시켜서 사람이면서 동물인,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두 가지의 상반된 요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이해강은 자신을 ‘중간자’라고 말한다. 그래피티, 애니메이션, 현대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는, 구분짓기를 거부한다. 정해지지 않은 것, 모호한 것, 자의적인 것을 탐구하는 이해강은 어쩌면 자신이 처한 중간자의 위치를 찾는 것인지 모른다. 그에게 있어 박주애와의 ‘중간’은 친구 이승미다. 이해강은 일대일의 관계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금방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소 대립할 수 있는 관계를 지탱해 주는 것은 오히려 중간에 위치한 ‘제삼자’라고 말한다. 이승미는 박주애와 이해강의 관계를 지탱해주는 중간자이다.

‘중간’을 주제로 한 이번 작품은 ‘이해강’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이승미’, 그리고 ‘박주애’로 끝나는 끝말잇기를 시도한다. <이해강-강아지-지렁이-이승미-미조-조롱박-박주애>로 완성된 이 끝말잇기는 영어로 번역된다. 그리고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할 때 사용되는 애니메이션의 모핑(Morphing) 기법을 응용하여 단어와 단어를 연결한다. 세 명의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하는 이 끝말잇기가 말이 안 된다고? 맞다. 엉터리 끝말잇기다. 이해강은 논리적인 것 같은 공식에 의외로 비논리적인 부분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물 흘러가듯이 사는 삶”과 같이 물이 흐르는 자연현상을 삶의 방식으로 비유하는 것에 특히 열변을 토했다! 엉터리 끝말잇기의 결과는 캔버스 천 위에 검은색 페인트 스프레이로 재현했다. 페인트 스프레이를 사용한 것은 (재료의 목적은) 그래피티이면서 (구현되는 공간으로 인해) 그래피티가 아닌 속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해강의 작품은 문자인지
그림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유머러스하지만 곱씹어보면 사회의 규칙을 비꼬는 암호처럼 보이길 원한다.

박주애, 이해강의 작업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흔히 비교되거나 함께 나열될 수 없는 것들을 교배시킨다. 개념적인 혹은 양식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편견 없는 두 작가는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예술에 대한 가치 판단기준을 확장하고 관용을 불러일으킨다. 놀라운 환희의 순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하게 조화로운 것,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것, 단순하고 명확한 것을 하나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대한 ‘의심 없이’ 많은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박주애, 이해강은 명확한 결론짓기나 선형적인 발전보다는 급작스러우면서도 기발한 결합을 통해 세상의 표준화를 지연시키고 방해한다.

‘중간’에서부터 자라나는 그들의 작품은 정해진 방향이 아닌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