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또 한 분의 간호사가 귀중한 목숨을 버렸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 같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목숨인데, 이걸 버리려면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고뇌가 있었을 것인가!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돌이켜보면 유독 병원에서, 그 중에서도 간호 부분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몇 가지 원인이 있다.

그 첫째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다. 일제 강점기의 기록이나 그 시대를 다룬 소설들을 보면 얼마나 자주 가혹행위들이 지속적으로 행해졌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일본인들에 의한 학대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조선인끼리도 그런 일들이 무시로 일어났었다. 당시만 해도 항변이나 이의제기는커녕 싫어하는 기색만 보여도 더 가혹한 폭력이 가해졌으므로 그저 아무 말 없이 당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거기에다가 ‘이지메’라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까지 곁들였으니 우리 선조들의 고초는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일본의 잔재가 가장 오래 남았던 군대를 통해 얼마 전까지 이어져 왔다. 지금은 상황이 매우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둘째는 병원의 특성이다. 병원에서의 실수는 다른 곳에서의 실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병원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의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실수는 사소해 보여도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실수다. 혈관에 넣어야 할 주사를 척수강에 넣든가, 피하로 놓아야 할 주사를 혈관에 넣어 사람이 죽기도 하였고, 수술 중 동맥을 잡는 기구를 놓쳐 생명이 위독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또 인체는 사람마다 달라 임기응변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약 같은 경우는 소위 체질에 따라 약의 효능이 달리 나타나니 늘 긴장하여야 한다. 의사들인 경우 6년 교육 후 인턴을 거치면서 임상 경험을 할 시간적 여우가 그래도 좀 있고 전공의 과정을 겪으면서 점차 어려운 기술들을 익혀 나가나, 간호사들인 경우 4년 교육 후 면허를 따자마자 선배들과 같은 임무를 떠안게 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요즘은 환자 갑질이라 하여 환자나 보호자들이 엉뚱한 요구를 하는 일이 잦고, 자기들의 요구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간호사들에게 화풀이를 하니 신경이 이만 저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말도 있듯이 병원이나 의사에 대한 불만을 간호사들에게 분풀이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리저리 간호사 노릇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경우 노련한 간호사들은 그 동안 쌓은 인생경험으로 잘 대처해 나가나 신참인 경우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그럴 때마다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신참에게 더 자주 발생한다.

셋째는 우리나라 병원의 형편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국민개보험제도를 채택하고 있어서 의료수가를 국가에서 정하고 있으므로, 현재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상수가의 80%만 보장해 주고 있어서, 선진국의 병원들처럼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수가 없다. 의사들은 교대근무가 아니므로 시간 외 근무로 밀린 일을 처리할 수 있으나, 간호사들인 경우 대개가 3교대여서 인계인수를 제대로 하려면 제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해야 하니, 남의 어려움을 살펴줄 여유가 없다. 고참이 되면 직책이 부여되어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하니 시간적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듯이 여유가 있어야 주위를 살필 수 있는데 내 코가 석자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덜어주기가 어렵다. 오히려 한 팀에 일을 잘 못 하는 동료가 있으면 오히려 그 피해를 입게 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실수라도 하면 덤터기를 같이 쓰게 되니, 실수를 너그럽게 봐 주기가 어렵다. 덧붙여 병원의 간호사 정원은 선진국 수준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고, 간호 인력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니 면허를 가진 간호사들마저 취업을 기피하여 인력 부족을 부채질한다.

넷째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한경쟁의 환경 속에서 자라나서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모자라다. 더구나 핵가족 속에서 자라나 자기중심적이 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온실 속 화초처럼 길러져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자세가 모자라기 쉽다. ‘눈물 젖은 빵’이라든가 ‘젊어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라는 말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런 말을 하면 ‘꼰대’라든가 세대차이라는 말이 되돌아온다. 그런데 많은 해외교포들의 말을 들어 보면 우리나라처럼 좋은 나라가 몇 안 된다고 한다.

말이란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고 한다. 충고하는 말이라 해도 분위기에 따라 질책으로 들리기도 한다. 병원 가족들 모두가 ‘내부 고객이 만족해야 외부 고객도 만족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살려 명랑한 병원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환자나 보호자들께서도 간호사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슬기를 펼쳤으면 한다.

결국 병원에서의 태움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정신 교육과 함께 병원의 근로환경을 바꾸기 위한 의료수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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