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항, 토건 적폐 VS 지역 자기결정권의 대결

국토부가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 절차에 착수했다.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 검토위원회 활동 연장에 동의하지 않았던 국토부가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22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제2공항 기본계획 착수보고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지역주민들의 참석도 거부했다. 착수보고회 참석을 하려던 반대주민들과 반대대책위 활동가들은 이 과정에서 국토부 김용석 공항항행정책관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용석 정책관은 착수보고회를 연기할 생각도 없고 기본계획 용역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2공항 사전타당성 재조사 용역과 관련해 공개토론회를 하겠다고 말했다. 언론에 공개된 김 정책관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주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타당성 재조사 결과에 대해서 토론을 하자. (공개토론회는) 저희가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주는 격이다. 정말 국민들이 다 알 수 있도록 하자. 여러분 주장이 얼마나 허약한지 알려질 것이다.”

22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가 열린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반대대책위 주민과 국토부 관계자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사진=반대대책위 제공>

도내 주요 언론은 이날 김 정책관의 발언을 제주 제2공항 입지타당성 재조사 공개토론회 제안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영상을 보면 이런 김 정책관의 발언은 공식적 제안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이 국토부의 공식적인 제안이라면 형식과 내용 모두 적절하지 않다. 국토부는 이후 공식적으로 이 발언이 국토부의 입장이라는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주민들과의 언쟁 중 즉흥적인 제안일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발언 내용을 보면 국토부 고위 공무원의 오만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검토위원회 활동이 정상적으로 종료됐다는 인식이나 검토위에서 제기된 의혹이 모두 추정이라는 반응은 반대대책위 주민들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반대 주민들이 뭐라 하든 국토부는 행정 절차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의 사전타당성 조사용역과 재조사용역 모두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무오류’에 대한 확신이 놀라울 따름이다.

국토부, 국회의원 중재도 모르쇠 일관

제2공항 기본계획 착수보고회가 열리기 전 더불어민주당 소속 세 명의 국회의원들은 국토부와 주민들과의 면담을 추진했다. 착수보고회가 열리기 전 오영훈 의원 등은 국토부와 반대대책위 주민들과의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도내 언론들은 국토부와 주민들과의 면담이 예상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면담은 결렬됐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국토부 장관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이름으로 나온 성명서에는 불편한 심기가 담겨있다. “국토부의 착수보고회 강행처리에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이런 결정을 내린 국토부 장관에게 심히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허탈과 유감. 이것이 면담 결렬 직후 나온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반응이었다.

가뜩이나 착수보고회를 제주가 아닌 세종시에 한다는 사실 때문에 정부의 불통 행정을 지적하는 여론이 높았던 상황이었다. 지역 여론도, 여당 국회의원들의 중재도 국토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5년 제주 제2공항 완공’ 이것이 현재까지 국토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런데 반대대책위 주민들과 언쟁 도중에 항행정책관이 공개토론회를 하자는 것을 국토부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항행정책관은 일반직 고위공무원으로 국내 항공관련 정책을 총괄한다. 그 직위가 만만치 않다. 그만큼 발언에도 무게가 있다. 언쟁 중이라고 해도 항행정책관의 발언이라면 사실상 국토부의 입장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그에 맞는 절차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행정적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이제라도 국토부는 공개토론회 일정과 절차를 제주도민들과 상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런 움직임은 없다. 제주도 역시 이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이 없다.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도청 앞 현관에서 농성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정책 ‘무오류’ 맹신하는 관료주의

그렇다면 도대체 국토부는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 기본계획 수립 착수보고회를 강행했을 때 그것이 반대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몰랐던 것인가. 모를 리 없다. 사전타당성 재조사 용역 검토위원회 활동에 대해서도 19차례나 만나 의견을 조율했다면서 주민들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국토부다. 절차적 타당성, 그중에서도 주민들과의 소통이 충분히 이뤄졌음을 국토부는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22일 착수보고회가 비공개로 진행된 직후 반대대책위 주민들은 국토부의 태도에 강하게 반발했다. 반대대책위는 착수보고회 비공개 자체가 기본계획 강행에 명분이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토부는 제2공항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토부와 더 이상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타협 없는 투쟁을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다. 반대대책위는 국토부가 제2공항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가 직접 제2공항 갈등 해결을 위한 주체로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토부와 협상하지 않고 청와대와 직접 대화하겠다는 의사표시다.

국토부의 이런 태도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제2공항 논란과 관련해서 다소 미온적이었던 도의회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제주도의회는 제2공항 절차적 정당성 확보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23일 열린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38명 전원 찬성으로 결의안은 통과됐다. 촉구결의안 제안자이기도 한 김태석 의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제2공항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았다. 김 의장은 제2공항 관련한 갈등 속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적 정당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절차진행”을 강조한 김 의장은 발언은 국토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의견 표명으로 읽힌다. 촉구결의안에서도 이 같은 입장은 드러난다. 결의안에서는 국토를 겨냥해 “백년대계의 국가정책 결정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충분한 이해에 기반한 동의를 할 수 있도록 절차적 투명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적시했다.

제주도의회가 제2공항 절차적 정당성 확보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23일 제주도의회 김태석 의장이 단식 농성 중인 김경배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천막 단식 36째나 되어서야 나온 결의안에 대해 뒷북이라는 비판도 있다. 국토부를 향한 비판만 있고 제주도의회의 갈등해결 방안이나 노력에 대한 의지는 담겨 있지 않다. 제주도의회가 갈등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관전자를 자처하는 것 아니냐, 과도한 정치적 고려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국토부의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강행 방침에 대해 도의회마저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상황을 정리하면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한 찬반을 떠나 추진 과정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여론은 국토부에 유리하지 않다. 주민들도, 제주 출신 국회의원들도, 지역 도의원들도 절차적 정당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과정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이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여전히 제2공항 건설을 위한 행정 절차를 강행하고 있다.

제주 제2공항, 김해신공항 논란과 달라

국토부의 이런 태도에는 국토부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 그리고 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갈등을 지역이기주의로 폄훼하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갈등은 제주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부산 역시 마찬가지다. 국토부가 김해신공항 건설 건설계획을 발표하자 부산 지역의 여론은 들끓었다. 김해신공항은 단순한 공항 확장이라는 의견부터 국토부 관료들의 수도권 중심주의 발상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부산, 울산, 경남의 자치체장들도 김해신공항 건설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10년 동안 지속된 지역 현안 문제다. 그만큼 갈등도 적지 않다.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경합하면서 영남권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가 2016년 프랑스 업체의 용역 결과로 김해신공항 건설로 결정됐다. 이후 국토부는 2012년 착공, 2026년 완공 계획을 발표했다.

김해 신공항 건설은 지역과 중앙의 시각 차이가 극명하다. 부산, 울산, 경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 언론은 국토부의 김해 신공항 건설 계획에 대해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데 적극적이다. 반면 중앙언론은 지역의 반발을 지역 이기주의로 평가 절하한다. 이런 과정에서 국토부는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에 오류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국토부가 제주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보이는 입장은 김해 신공항의 경우와 동일하다. ‘기본계획에 오류는 없으며 공항 건설은 계획대로 추진 될 것이다.’ 이것이 국토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김해 신공항과 제주 제2공항의 사정은 다르다. 김해 신공항은 지역마다 입장이 다르다. 신공항 건설에 방점을 찍고 있다. 부산 지역에서 김해신공항 건설 계획에 반대하고 있는 주요 단체는 신공항추진 범시민운동본부이다. 신공항 건설은 필요하지만 군사 공항인 김해공항보다는 24시간 운항이 가능한 허브공항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덕도에 짓자는 것이 경남권의 여론이다. 제주 제2공항은 공항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거다. 공항 건설보다는 원점 재검토에 방점이 찍혀있다. 반대 논리도, 반대의 목적도 다르다.

사실상 ‘슈퍼 갑’ 국토부…정치권도 눈치만

하지만 국토부의 태도는 한결 같다. 김해 신공항이든 제주 제2공항이든 기본계획에는 오류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 주민들의 의견을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가거나 용역에 대한 몰이해로 치부한다. 정치권의 압박도 여론도 국토부 관료들의 벽을 넘기는 역부족이다. 국토부는 정부 부처에서 기재부와 더불어 가장 힘센 부서 중 하나다. 국토, 주택, 수자원, 교통, 물류, 항공 등 업무를 총괄한다. ‘국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 자리가 45개로 정부 핵심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나 기획재정부보다 많다. 예산 시즌이 되면 지역 예산을 따와야 하는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기재부와 국토부가 사실상 ‘갑’이 될 경우가 많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호통을 치고 뒤에서는 지역 예산을 따기 위해 로비 아닌 로비를 벌이는 경우도 많다.

2018년 12월 강릉선 KTX 사고가 나자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해 철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셌다. 철도공공성 강화는 철도전문가와 학계,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제기한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철도 공공성 확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경쟁과 효율성을 중심에 둔 철도산업 구조 전반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철도 구조개혁은 내부 반발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는 게 국토부 안팎의 평가다. 국토부 관료들이 원하는 연구가 나오지 않자 용역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는 철도 정책을 수립한 관료들이 자신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저항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료 집단의 오랜 관행 중 하나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4대강 사업. 25조원을 강바닥에 쏟아 부었다. 감사원 감사결과 사기, 담합 등 총체적인 부실 공사였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을 주도한 국토부 공무원들은 훈포장을 받거나 승진을 했다. 2013년 국회기획재정위원회 박원석 의원(정의당)과 환경운동연합이 이 같은 내용을 밝히면서 큰 화제가 됐었다. 당시 훈포장의 사유 자체가 무효가 됐는데도 훈포장을 받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중에 당시 국토부 고위 관료들이 대거 들어있었다. 4대강 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했던 국토부 관료들은 이후에 국토부 요직을 차지했다. 이쯤 되면 국토부 관료들의 자기 반성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인지 모른다.

제주도청 앞은 다양한 시민들이 천막촌을 형성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토건 적폐 관료들은 퇴출되었을까. 철도 민영화를 추진했던 국토부 관료들이 철도 공공성 강화를 가로막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여전히 국토부의 정책의 입안자이자 집행자이다. 자기반성 없는 관료집단은 부패 정치인보다 더 무섭다. 정치인은 4년마다 한 번씩 민심의 심판이라도 받는다. 하지만 관료들은 신분 보장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정년을 보장받는다. ‘정권은 유한하고 관료는 영원하다’는 관가의 오래된 속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제주 제2공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찬성과 반대를 넘어선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관료주의와 지역의 자기결정권의 대결. 이것이 제2공항 문제의 핵심이다. 선출 받지 않은 권력인 관료들이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재앙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공항항행정책관의 태도에 엘리트주의에 빠진 관료의 오만함이 비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발언의 속내를 짐작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반나절만 시간을 내면 (반대대책위) 당신들의 주장은 박살낼 수 있어. 전문 지식과 행정력을 어디 얼치기 주민들 따위가 감당할 수 있겠어.”

사족 : 김용석 항행정책관은 행정고시 36회로 성균관대와 영국 크랜필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정통 엘리트 관료다.(한국경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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