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마영삼/ UNITAR 제주국제연수센터 소장

제주공항에 내려서 렌터카로 시원스레 뚫린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기분이 '짱'이다. 통행량도 많지 않고, 제한속도도 80km/h로 안전감이 있다. 그런데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2018년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전국적으로는 줄어들었으나, 제주도는 오히려 늘어났다. 인구 1인당 사고율의 경우 2017년에 2.3%로 서울, 부산, 경기도보다도 높다. 면적으로 볼 때 제주도가 서울보다 3배 큰데 인구는 오히려 서울이 15배 많다. 인구밀도가 45배인 서울보다 제주도의 교통사고율이 높다는 것은 불가사의하다.

이런 통계를 들이대면 제주도민들은 억울해 할 것이다. 다수의 사고가 육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렌터카를 몰다가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여행을 와 뻥 뚫린 도로에서 환상적인 경치를 즐기며 자유를 만끽하다 순간의 부주의로 추돌사고를 내는 경우가 잦고, 속도위반 건수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운전경력이 짧은 청년들이 친구끼리 와서 무작정 렌터카를 빌리는 경우도 많아 운전미숙에 따른 사고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제주도 전체가 초보 운전자들의 도로주행 연습장이 돼 버렸다”는 자조적인 불평도 들린다.

그런데 제주도민 측은 문제가 전혀 없을까? 외지에서 온 필자의 눈에 비친 제주 사람들의 운전 습관에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첫 번째, 제주도에는 유럽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교차로(roundabout)가 제법 있다. 이곳에서는 어떤 차가 우선통행권을 가질까? 국제규정에 따르면 일단 이 원형교차로에 먼저 들어선 차량이 우선이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사거리교차로와 마찬가지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차량이 우선권을 갖는다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 외국 관광객이 운전하는 차량이 원형교차로에 들어서는 경우라면, 국제기준과 다른 운전 행태로 인해 사고 위험이 더 커지고 제주도민이 사고 책임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 번째, 제주도민은 방향지시등, 속칭 ‘깜빡이’를 켜는 데 매우 인색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방향지시등은 뒤 운전자에게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을 예고하여 혼란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있다가 좌회전 신호가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켜는 경우를 자주 본다. 차로 변경 시 아무 신호도 주지 않는 사례는 허다하고, 실상 도심을 벗어나면 깜빡이를 사용하며 운전하는 차량 수가 더욱 줄어든다.

세 번째, 우회전 차량이 보행자 건널목에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계속 주행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빨간 불에 우회전이 허용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 현행 방식이 교통소통에 도움이 되고 융통성도 있어 좋다. 하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도 꽤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빨간 불에 우회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너스로 허용되는 것이므로 보행자에게 우선순위를 양보해야 한다. 우회전 시 보행자 건널목 신호가 파란 불일 때는 반드시 정차하여 기다리고, 뒤차는 경적을 울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통법규에는 ‘지역관행’이라는 게 없다. 모두 국제적으로 인정된 표준법규다. 섬이기 때문에, 지방이기 때문에, 제주에서의 오랜 관행이라고 해서 예외로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제주의 교통문화를 국제표준에 맞게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통안전은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에 명시된 세부목표이기도 할뿐더러, 작년에 유엔교통안전신탁기금(UN Road Safety Trust Fund)이 출범하여 교통안전 확산을 위한 국제적 연대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제주도도 ‘세계평화의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동서양이나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운전 시 최고의 방어수단은 '방어운전'이다. 서로 교차하는 골목길에서 엇갈린 차량이 누가 우선권을 갖는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일을 동네에서 흔히 목격하곤 한다. 교통법규상 큰 도로 쪽 운전자가 우선권을 갖는다. 크고 작은 길을 분간할 수 없을 때에는 간선도로로 향하는 쪽의 운전자가 우선권을 갖는다. 그런데 이건 사고가 난 뒤에나 따지는 규정일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헷갈리기 때문에 그냥 안전하게 방어운전을 하는 게 최상의 대책이다. 사고가 나면 책임자의 보험으로 보상이 되긴 하지만 수속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몸이라도 다치면 보상이나 배상에 관계없이 여간 낭패가 아니다.

방어운전의 필수적 조건은 인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클랙슨에도 손이 자주 간다. 다행히 제주도민들은 육지 사람들보다는 느긋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다. 전국에서 가장 반듯한 운전 습관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제주도민이 앞장서자. 모두가 따르는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안전이 으뜸인 섬 제주를 만들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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