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이한 한국과 중국은 지금 최대 민족 이동이 전개되고 있다. 중국인은 7백만명이 설을 이용해 외국에 나간다는데 1위가 태국이고, 2위는 일본인데 한국은 10위 안에도 들까 말까라고 요미우리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2위 대상국인 일본은 유행성 독감에 걸린 환자 수가 220만명을 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중국이나 다른 외국 관광객이 주춤거리고 있다는 보도는 어디에도 없다.  설 연휴가 없는 일본은 정상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 전문업소는 대목을 노리고 있다.

고국의 설 풍경 소식들을 인터넷뉴스 속에서 향수에 젖어 보고 듣는 최근에 제주에서 한권의 시집이 왔다. 강방영 시인의 '그 아침 숲에 지나갔던 그 무엇'이었다. 독감은 아니지만 감기에 걸려 바깥 출입을 자제하던 필자로서는 '고향그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몇편을 소개한다.

'공중전화'

그많은 동전을 다 삼키고
수많은 목소리를 다 내보내고
결국 그쳐버린 대화들 모두 삼키고
너 늙었구나
나처럼

눈물 젖은 목소리
낭랑한 웃음소리
얼마나 많이 너를 찾았을까
결국 모두 허공에 사라지고
너 홀로 남았구나
나처럼

요즘 어린 세대들은 공중전화 사용방법을 모른다고 한다 어린이만이 아니고 늘 사용했던 필자도 잘 모른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공중전화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의 역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일상의 역사만이 아니고 사랑의 밀어와 역사적인 역사 대화까지도 다 수용하고 포용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고국에 돌아와서 지하철 승차권 사는 방법을 잘 몰라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몰라서 당연한 것을 서민 생활을 모른다고 사회는 엉뚱한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했다. 서민의 서민인 필자는 아직도 한국에 가서 지하철 표를 사는 방범을 몰라서 묻곤 한다.

  
'새 길, 옛 길'

부모님 사시던 고향집으로
내 이이들 품에 안고
기쁨 가득 달려가던 길

흐르는 삶은
가는 길을 넓히고
좌우로 곁까지들 뻗치니

산수국 피어난 이 여름
산딸나무꽃 별같이 숲을 밝히는데
부모님 떠나신 빈 집은 멀고

이슬 같은 눈물에 살짝 흔들려
일렁이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옛길

새로 난 넓은 길로
유월 꽃들 안으며
이제는 혼자 가는 길

고향집만이 빈집이 아니고 옛길이 사라져 새로 생긴 큰 길도 마음에 텅 빈 길이다. 신기루처럼 아물거리다 사라져버린 옛길을 반추하면서 이제는 부모 나이가 되버린 자신이 혼자 그 길을 걷고 있다.

'지는 여름 날'

지는 여름 무더워도 사위어 가고
뿌연 하늘에 노랗게 걸린
기운 없는 초라한 시골역

노인이 되신 어머니 홀로 사시는 집 나와
안녕히 계시라고 남기고 돌아오는 열차 역
삶이 덧없다는 세상

숲은 아직 푸르고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은 세차게 흐르는데

시간표 대로 온 기차는 다시 출발하고
삶의 일정표를 따라 나도 간다
어쩔 수 없는 것들 모두 뒤에 두고

'지는 여름 날'도 '새 길, 옛 길'과 문맥이 같은 고향 그리움이다. 즉 반추할 수 있는 인생의 되돌아봄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인에게 있어서 '역'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열차가 없는 제주에는 '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십대까지 교육을 받고 대학을 육지에 유학 가지 않으면 시골 역은 물론 도심지의 역의 운치를 경험할 길이 없다. 제주에서 성장한 문인들로서  '역'을 주제로한 작품들은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도 흥미를 끌었다.

그 동경의 시골 '역'을 고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서 과거 지향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골역에서 헤어진 풍경의 숲과 강물은 미래를 향한 힘찬 에네르기를 발산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 홀로 사는 어머니와의 이별의 인생은 그 반대 길의 안쓰러운 자연의 섭리를 표현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

당신 영결식 후 저녁
돌아오는 하늘 길
산도 구름도 모두 당신 표정

이별하고 오는
영원히 작별하고 오는
이 저녁

고기잡이 배들은 모두
어두워지는 바다에서
노랗게 큰 별들이 되고

당신으로 가득한데도
당신 없는 이 세상
별인 양 비행기는 어둠 속을 날고

당신으로 가득한데도/ 당신 없는 이 세상/ 내일의 삶을 위해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 배도, 내일을 위해 비상하는 비행기도 모두 당신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당신을 위한 별이었다는 영원한 이별의 모습은 시계의 초침처럼 빨리 돌아가는 삶에 포근한 공간을 안겨 주고 있다.  

'그 아침 숲에 지나갔던 그 무엇'

그것은 단지
바람이었을까,
일시에 숲을 흔들어
모든 나무들이 몸을 굽히고
모든 얖들이 뒷면을 보이며
은회색 꽃다받인 양
한꺼번에 절을 했을 때,

단숨에 그 절을 받으며
화르륵 숲을 밟고
지나서 갔던 그것은
오직 바람뿐이었을까,

바람을 타고 함께
어떤 기운이 지나서 갔기에
숲은 그를 알아차리고
나무들 온몸으로 나부끼며
빠르게 통과하는 그를 반겼기에

그 무엇이 지날 때
심해에 빛이 들 듯
거대한 숲은 스스로 쪼개져
일순간 길을 내었다가
다시 닫았던 것이 아닐까

거기에 있던 모든 존재가
맛보았던 예기치 못한 감동,
잊을 수 없고 해독 불가한 아픔.
흔적 없는 그 무엇이 사라지며
남겨 놓은 표현 못할 어떤 기억,

그것은 단지 바람 때문이었을까

시집 이름이  '그 아침 숲에 지나갔던 그 무엇'이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모든 잎들이 물결처럼 굽이친다. 살랑이며 한곳으로 기우는 숲 속의 잎 뒷편에는 햇빛이 고기 비늘처럼 빛난다. 시인은 이 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바람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은 바람에 스치우는 모든 대상들이 반응을 이르키고 흔드니까 나온 표현이다.  

바람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 그 바람은 무엇일까. 아무도 보지 못한 바람이 힘은 엄청나다. 이렇게 숲 전체를 고요한 한 순간에도 '흔적 없는 그 무엇이 사라지며/ 남겨 놓은 표현 못할 어떤 기억,/은 해독 불가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 79편이 수록되었다. 강방영 시인은 1982년 '시문학' 으로 등단. 7권의 시집과 1권의 시선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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