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지난 1년 간 서울 경기지역 중.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제주4.3 평화인권강의를 다녔다. 강의자료를 준비하던 중 4.3진상규명의 지난한 역사를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이 사진은 당시 제민일보 기자였던 김종민씨가 찍은 것이라는 걸 며칠 전에 알았다. 구정명절을 쇠러 제주에 갔다가 제주4.3평화재단에 들러 최근에 나온 전시도록을 보다가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 예로 많은 4.3의 사진들이 원 작가를 모른 채 흘러 다닌다. 이 사진은 MBC에서 캡춰한 것인데 도록을 보니 원래는 여성유족 옆으로 남자유족이 손을 뻗쳐 유골을 뿌리는 모습이 같이 담겨 있었다.

다랑쉬오름에서 유골이 발견된 1992년 3. 22일은 내가 큰애를 출산하고 두 달 쯤 되었을 때다. 그리고 노태우정권 말기로 여전히 공안당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다. 그 즈음 제주4.3연구소에서 4.3순례기행을 하는데 가장 열심히 참여한 분이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인가 안기부 소속 형사여서 황망한 적도 있던 그런 때다.

사진 속에서 그 당시의 구체적 상황과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바다에 유골가루를 뿌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44년의 한 맺힌 말들이 검게 그을린 중년여성의 표정 속에 터져나오고 있다. 동시에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박종철의 죽음, 그 아버지가 유골을 뿌리며 ‘종철아 잘가거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하시던 그 시대의 정황이 오버랩되는 것이다.

양성자/ 제주4.3연구소 이사, ‘육지사는 제주사람’ 회원

이 사진을 찍은 김종민씨는 발동선 배에 유족과 함께 올라탈 때도 경찰이 멱살을 잡고 읍장이 팔을 비틀고 저지하는 상황에서 유족들의 항의로 겨우 동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족 한 분은 어떻게든 안장을 하고 싶어 뼈가루의 1/11만이라도 달라고 했다고. 내가 서울에서 만난 한 유족은 불량위패 시비로 화형식을 할 때 자신이 몸이 그 속에서 타는 것 같더라고 했다.

사진 속 유족의 오열이 가슴을 후빈다. 뻣가루를 뿌리는 몸짓에는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가 원통한 마음으로 엉켜 거친 물살에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김종민씨는 발동선을 타고 갈 때는 잔잔했던 김녕 앞바다가 돌아올 때는 거센 풍랑으로 뱃전이 부서질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랑쉬굴의 시신을 처음 증언한 채정옥씨는 차라리 그때 좀 참고 나중에 발굴했더라면 수장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사진이 사실보다 더한 진실을 느낄 수 있게 할 때, 우연의 포착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사진은 11구 시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 당시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안장을 포기해야 했던 내밀한 고통을 안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해원되지 못한 수많은 4.3의 넋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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